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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GDP 5% 국방비 시대

러시아 위협·테러리즘 대응 명분
국방비 GDP 5%까지 증액 약속
주요국 군비 천문학적 증가 전망

병력보다 무기·장비 구매 가능성
사실상 美 방산기업들 최대 수혜
복지예산 삭감 등 유럽 국민 부담

핵심 의제 누락 헤이그 공동성명
'평화 메시지'로 해석할 문구 전무
"트럼프 장단에 맞춰 춤을 춘 것"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및 초청국 정상들이 지난달 25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나토 사무국 제공


지난달 24, 2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는 사실상 ‘글로벌 군비 경쟁’을 선언한 자리였다. 나토 회원국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권대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5% 국방비 시대’를 공개 약속했다. 안보예산을 지금의 2배 수준으로 대폭 늘리는 명분은 러시아와 테러리즘이었다. 트럼프는 나토 회원국들의 국방비 대폭 증액 약속을 ‘기념비적 승리’로 평가한 뒤 “서구 문명 전체의 큰 승리”라고 반겼다.

하지만 유럽권 나토 회원국들의 국방비는 이미 러시아의 10배 이상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이번 나토 정상회의 직전 발간한 투자보고서에서 방위산업을 “역동적 성장산업”이자 “향후 투자 추세를 주도할 거대한 힘”이라고 치켜세웠다. 미국은 글로벌 무기 수출시장의 43%를 점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첨단기술은 신무기 개발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왔다. 트럼프는 나토 정상회의 말미에 국방부의 명칭을 ‘전쟁부’로 변경할 뜻을 내비쳤다. ‘테크경제’와 ‘전쟁경제’의 모호한 경계마저 허물어질 분위기다.

유럽 재무장에 美 방산 최대 수혜



나토 32개 회원국은 이번 정상회의 공동성명을 통해 2035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5%까지 늘리기로 했다. 전력 증강 목표 달성을 위해 연간 GDP의 최소 3.5%를 무기·장비 구매와 병력 확충 등에 사용하고, 최대 1.5%를 인프라 보호·네트워크 방어·방위산업 기반 강화 등에 투입하는 내용이다. 2014년에 합의한 현행 목표치 2%를 향후 10년 내에 2.5배 늘리기로 한 것이다. 직접 군사비 3.5%와 간접비용 1.5%를 합친 ‘5%’는 트럼프가 요구한 바로 그 수치다.

그래픽=이지원 기자


공동성명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이라 5% 목표 달성을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토 회원국들이 역대 최대 군비 증강에 나설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영국은 이번 나토 정상회의 기간에 공중 핵전력 포기 정책을 뒤집겠다고 선언하면서 미국으로부터 F-35A 핵무장형 전투기 12대를 구매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독일은 지난 3월 신규 부채를 GDP의 0.35% 미만으로 제한한 ‘부채 브레이크’를 완화하면서 국방비에 한해선 아예 한도를 없앴다.

무엇보다 연평균 GDP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수준을 보수적으로 잡더라도 나토 회원국들의 국방비 규모 자체가 천문학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네덜란드의 비영리 싱크탱크 초국적연구소(TNI)에 따르면 2030년까지 GDP 3.5% 수준으로 국방비를 늘릴 경우 지출 총액은 13조4,000억 달러(약 1경8,000조 원)에 달한다. 현 수준을 유지할 경우(9조1,000억 달러)보다 4조3,000억 달러나 많다. 전 세계 국방비 총액의 55.6%를 차지한 나토의 지난해 국방비는 1조5,000억 달러 규모였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더 심각한 문제는 늘어나는 국방비의 사용처다. 직접적인 군사력 증강(3.5%)과 관련해 병력을 늘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지출이 무기와 장비 구매에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은 위기감이 고조된 나토 회원국들의 군비 증강을 직간접적으로 요구했고, 트럼프는 올 초 취임 직후부터 노골적으로 이를 압박했다. 결국 나토의 국방비 증액의 수혜는 사실상 전 세계 무기 수출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미국과 미국의 방산기업들이고 최종 부담은 유럽 국민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는 러우전쟁에서 충분히 확인(3월 8일 자 13면 ‘러우전쟁 3년, 미국은 몰래 웃었다’)됐다.

TNI 측은 글로벌 방산기업들이 유럽항공우주방위산업협회(ASD) 같은 로비단체를 통해 유럽 국가들의 국방비 지출 증가를 종용해온 사실을 거론하며 “그들은 군사안보를 유럽연합(EU)의 최우선 목표로 만들어 연구개발(R&D)과 관련 산업 지원을 명분으로 거액의 공공 자금을 확보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토가 가장 걱정하는 안보는 방산업체들의 안보인 듯하다”고 쏘아붙였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포괄적인 방위 대책(1.5%) 관련 지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공산이 크다. 사이버전쟁 능력을 포함한 사이버안보 분야, 송유관·가스전·원자력발전소 보호 및 방어 능력, 글로벌 안보 관련 정보수집 기능 등에서 압도적인 미국의 역량을 배제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방위산업 기반을 강화하는 데도 미국 국방부 및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다르파)의 중장기 전략과 주요 방산기업들의 노하우가 절대적이다. ‘전쟁시대’에는 국방예산에 첨단기술 투자의 성격이 배가된다.

흐릿해진 평화… 복지·원조 뒷전



유럽권 나토 회원국들의 국방비 증액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 때도 있었지만, 지금 같은 재무장 기류는 아니었다. 당시 상황은 두 달여 만에 마무리됐고, 크림자치공화국이 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러시아에 군 투입을 요청했던 만큼 국제법 위반 논란도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유럽 주요국들이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2022년 2월 러우전쟁이 발발한 후엔 사뭇 달라졌다. 특히 당장의 안보 위협에 더해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급등과 공급 차질 등에 따른 경제적 타격으로 위기감이 가중됐다. 여기에 트럼프의 ‘GDP 5% 국방비’ 압박은 ‘자강론’의 명분을 더 뚜렷하게 만들어줬다. 영국과 독일에서 핵무기 관련 주장이 공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등 일부 경쟁적인 움직임까지 엿보인다.

다만 회원국 간 경제·사회적 여건과 정치적 입장의 스펙트럼이 넓어 공동 행보가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경제 규모가 큰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GDP 대비 재정적자 비중이 EU 기준(3%)보다 훨씬 높아 유럽중앙은행(ECB)의 경고를 받은 상태다. 스페인을 비롯한 일부 회원국들은 미국의 압박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기도 했다. 물론 전체적으로 군비 증강 쪽으로 내달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브뤼셀=로이터 뉴스1


문제는 한정된 예산의 배분이다. 국방비를 늘리기 위해선 다른 분야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5%를 수용한다면 2035년까지 국방에 3,000억 유로를 추가로 지출하기 위해 보건과 교육예산을 삭감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가장 손쉬운 타깃은 복지예산이다. 벌써부터 “유럽은 이제 복지(welfare)국가가 아니라 전쟁(warfare)국가가 됐다”는 자조가 나온다. EU는 65세 이상 노인층 비율이 20%를 훌쩍 넘는 만큼 복지예산 축소에 따른 반발과 갈등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해외원조 예산도 국방비 증액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영국은 지난 2월 국방비 증가분 충당을 위해 원조 예산을 1999년 이후 최저 수준인 국민총소득(GNI)의 0.3% 수준으로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독일·벨기에·캐나다·네덜란드·프랑스 등도 원조 예산을 많게는 40% 가까이 줄였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 국제개발처(USAID)를 폐지하며 다른 나라들에 비용 지출을 요구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겨우 425개 단어로 채워진 헤이그 공동성명에는 국방비 증액만 부각됐을 뿐 핵심 의제들은 줄줄이 누락됐다. 특히 국방비 증액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전쟁 피해자 우크라이나’를 독립적인 의제로 다루지 않는 심각한 모순을 드러냈다. 트럼프로부터 ‘나토 공동방위’를 확약받기 위해 러시아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도 극도로 자제했다. 국방비의 GDP 5% 목표나 러시아·테러 위협의 급증에 대한 근거 역시 담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헤이그=AP 뉴시스


본질적으로 러우전쟁 종전 협상을 포함해 ‘평화’의 메시지로 해석할 만한 대목은 전혀 없었다. 유럽의 재무장이 글로벌 군비 경쟁을 자극하거나 극우세력의 준동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도 엿볼 수 없었다. 이를 두고 미국 외교안보 싱크팅크 애틀랜틱카운슬의 필립 디킨슨 부소장은 “이번 헤이그 선언은 트럼프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춘 것”이라고 촌평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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