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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었음 청년 80만] <중> 사라진 기회
20대 신규채용 5년 새 25만 개 증발
기업 채용 담당자 7명의 분석 들어봤다
채용 비용·실패 가능성 낮아 경력직 선호
고용 경직성에 신입 채용 더 신중해져
코로나19 때 채용 중단…이후 채용병목
쉬었음 청년 줄이려면 "경기 회복밖에..."
23일 인천 부평구 한국폴리텍대학 인천캠퍼스에서 열린 뿌리기업 채용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피고 있다. 뉴시스


지원자는 이미 300명을 넘어섰다. 채용 예정 인원은 한 명뿐이었지만, 원서 마감 일주일 전인 20일에도 구직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대기업 경력직 채용도 아니었다. 직원 수 30명 남짓인 스타트업의 주니어급 인사담당자(HR 매니저) 경력 채용이었다. 100억 원에 가까운 투자금을 유치한 유망 스타트업이지만, 이 회사 경영지원팀장 A씨도 이런 상황이 낯설었다.

“지원자들 이력도 화려해요. 흔히 말하는 ‘고스펙’은 물론이고, 실무 경력 10년 이상인 분들도 있어요. 요즘 경기가 확실히 안 좋은 거죠.”

그는 '쉬었음' 청년 증가 원인 중 하나로 ‘비자발적 퇴사’를 꼽았다. 최근 경기 침체라고 정의할 수 있을 만큼 시장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스타트업 투자가 뜸해졌기 때문이다. 수익 구조가 불완전한 스타트업은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 경영 악화 상황으로 이어진다. 이 탓에 언제든 이직할 수 있는 ‘경쟁력 우위자’가 아니라면 조직의 흥망성쇠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하고, 스타트업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비자발적 퇴사자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있는 사람도 내보내는 판에, 회사들이 신규채용에 나설 리도 없다.

"스타트업일수록 대졸 신입사원을 뽑지 않아요. 평균적으로 한 해 6명 정도 뽑았는데, 대졸 신입 채용이 아니었어요. 퇴사 인력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경력 채용이었죠. 즉각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인재를 채용하는 스타트업이야말로 경력직을 더 선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벤처스타트업 SW개발인재 매칭 페스티벌에서 구직자들이 기업 채용정보 현황판을 보고 있다. 뉴시스


쉬었음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사용하는 공식 용어다. 만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비경제활동인구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지난주에 주로 무엇을 했습니까?"라는 질문에 이들은 '그냥 쉬었다'고 응답한다. 구직 의사도 없고, 특별한 이유 없이 쉬었다는 뜻이다. 그런 '쉬었음 청년'이 올해 2월 80만 명(39세 이하)을 넘어섰다.

이들은 왜 쉬었을까



한국일보는 스타트업부터 청년들이 선호하는 대기업까지 채용 담당자 7명에게 청년들의 쉬었음 현상을 들어봤다. '일자리 미스매칭'이라는 1차적 원인에는 동의하면서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된 진단은 조금씩 달랐다. △경기 위축 △대내외적 불확실성 확대 △고용경직성 △저출생·고령화 등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과 구조적 문제들을 언급했다. 소위 'MZ세대'의 성향을 주목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픽 = 신동준 기자


우선 청년들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20대 이하 일자리 수는 코로나19 확산 시작 시점인 2019년 4분기 326만 개에서 지난해 4분기 297만 개로 8.8% 감소했다. 특히 신규채용 일자리는 같은 기간 166만 개에서 141만 개로 25만 개(15.0%) 줄었다. 20대 이하가 점유하는 일자리는 점차 사라지고, 기업들도 새로 뽑지 않았다는 얘기다. 특히 급여·복지·워라밸 등 두루 충족하는 '좋은 일자리'는 급감했다. 300인 이상 기업의 20대 신규채용 일자리는 2019년 47만 개였지만, 2023년에는 40만 개로 15.6%나 쪼그라들었다.

그래픽 = 신동준 기자


대기업 인사팀장 B씨는 신입 채용이 축소된 배경으로 악화한 경기 상황을 지목한다. 그는 "신입 채용을 통해 내부에서 인재를 육성하자는 추세는 바뀌지 않는다"면서도 "최근 몇 년 새 경기 상황이 안 좋아져 채용 규모를 줄인 건 맞다"고 털어놨다. 실제 현재 경제 상황은 1998년 외환위기 시절에 비견된다. 지난해 2분기 마이너스(-)0.2%라는 역성장을 시작으로 3분기 0.1%, 4분기 0.1%, 올해 1분기 -0.2% 등 4분기 연속 0.1% 이하 성장에 그쳤다. 신규채용은 언감생심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국내 100인 이상 기업 500개 사 중 올해 신규채용 계획이 있다고 답한 기업은 60.8%였다. 2022년(72.0%) 이후 3년 연속 하락이다.

"내일을 모르는데 어느 기업이 직원을 뽑겠나"



기업은 '불확실성'을 두려워한다. 위험에 대비하지 않으면 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인력 운영도 보수적으로 바뀐다. 이재명 정부 출범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은 다소 해소됐지만,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촉발한 '무역전쟁'과 중동 위기 등 대외 불확실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B씨는 "사업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대기업들은 이에 극도로 민감하다"며 "인사 담당자는 사람을 뽑자고 건의하지만, 대외환경 변화 탓에 채용이 무산되는 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청년을 이미지화한 모습. 한국일보


코로나19 확산 이후 청년들의 취업은 더 어려워졌다. 이 당시 기업들은 채용 문턱을 높였고, 기회가 없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은 켜켜이 쌓였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나서 기업들이 줄어든 일자리를 상쇄할 만큼 신규채용을 늘리지도 않았다. 경쟁자는 많아지고 신규채용 일자리 수는 제자리걸음을 걸어 경쟁은 더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채용 담당자들은 코로나19 이후 구직자들의 스펙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말한다. 고스펙 청년들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병목구간에 정체돼 있다는 얘기다.

한 금융회사 인사팀장 C씨는 "특히 코로나19 이후부터 스펙 상승 현상이 두드러졌다"며 "출신 대학도 좋았고, 고학점은 기본인 데다 공인재무분석사(CFA) 등 자격증까지 갖춘 다양한 지원자도 많았지만, 이들을 다 뽑을 순 없었다"고 말했다.

기업이 경력직을 선호하는 이유



규모를 떠나 기업들의 눈은 경력직으로 향한다. 무엇보다 '가성비'가 좋다. 경력직은 수년간 거쳐온 이력이 있어 평판 조회가 쉽고, 즉시 업무 투입도 가능하다. 채용 실패의 불확실성을 줄여주고, 신입사원 육성 비용도 절감할 수 있어 경제적이라는 얘기다. 신입사원이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높을 거라는 믿음이 깨진 것도 한몫했다. 이러니 사회로 첫발을 내디뎌야 하는 청년의 취업문은 더 좁아진다. 반복된 구직 실패는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지고, 노동시장 이탈의 원인이 된다.

통계로도 확인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한 채용 플랫폼에 올라온 올해 상반기 채용공고 14만4,181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경력직 채용 공고 비율이 82.0%에 달했다. 신입·경력 모두 뽑는 공고는 15.4%, 신입 직원만 뽑는다는 공고는 2.6%에 그쳤다. 청년 구직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서 가장 많은 응답자(53.9%)가 첫 번째 진입장벽으로 '경력 중심의 채용'을 꼽았다.

또 다른 금융회사 인사팀장 D씨는 "업무역량을 키우려면 더 매달려 일하고 배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신입사원들이 많아진 것을 체감한다"며 "기업 입장에선 이 리스크를 감수하는 게 부담이고, 가르치고 적응시키는 것도 쉽지 않아 검증된 인력을 뽑는 게 유리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임원 승진 못한 부장들이 나가지 않는다"



쉽게 해고할 수 없는 고용 환경도 쉬었음 현상을 부추기는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영 불확실성은 높아지는데, 고용 경직성은 커 신규채용 규모를 유지하기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또 회사에 '남는 자가 승자'라는 인식이 확산돼 부장급들이 정년까지 일하려 하면서 청년들의 취업문은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대기업 임원 E씨는 "과거엔 임원 승진에 밀린 부장급들이 협력업체 임원으로 이동하거나 사업체를 차리는 등 회사를 떠났고, 이들 자리를 메우는 승진과 신규 인력을 뽑는 선순환이 가능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부장급들이 나이 어린 팀장 밑에서 팀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져 신규채용 여지가 좁아졌다"고 말했다. 정년을 채우는 부장급들이 늘고 있는 현상은 고용 안정성이 높은 공기업에서 더 자주 나타난다는 후문이다.

채용 담당자들은 'MZ세대' 성향을 주목하기도 한다. 대부분 4년제 대학을 졸업하지만, 이에 걸맞은 양질의 일자리는 한정돼 있어 눈을 쉽게 낮추지 않더라는 인식이다. 또 다른 스타트업 인사팀장 F씨는 "대부분 대학 나와 대기업만 취업하려는 경우가 많고, 스타트업은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선택한다"며 "적응을 잘하는 신입들도 적지 않지만, 만족하지 못해 퇴사하는 친구들은 눈을 낮추지 않아 쉬었음으로 밀려나는 것 같다"고 봤다. 조선업체 인사팀장 G씨는 "신입공채 경쟁률이 여전히 높긴 하지만, 깨끗한 일, 있어 보이는 일을 선호하는 청년 세대에 조선업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며 "지방에 내려와 정착해야 하는 것도 서울 주요 대학 출신들에겐 매력적이지 않은 포인트다"라고 말했다.

회복이 해결책...그래도 인력은 타이트하게



쉬었음 청년이 증가하는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채용 담당자들이 언급하는 해결방법은 명료했다. 경기가 회복돼 기업 실적이 좋아지면 된다는 것이다. 다만 저출생·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 글로벌 경쟁 심화 등으로 우리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고 언제든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는 상황에서 반전은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이들은 말한다. 대기업 인사팀장 B씨의 말이다.

"결국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돼요. 규제도 풀어주고 불확실성도 해결해 줘야 기업들이 채용에 나섭니다. 그렇게 돼도 일할 사람이 넘치도록 경영하는 회사는 없을 거예요. 언제든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해 인력을 부족하거나 타이트하게 운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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