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불법주차, 법으론 강제처분 가능…실제론 6년간 단 4건
소송 부담에 현장에선 '유명무실'…"보호 장치 시급"


골목길 소방차 전용도로 불법 주차 (PG)
[장현경, 이태호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박형빈 기자 = 최근 음주운전 의심 차량이 119안전센터 출입구를 가로막은 채 3시간 넘게 방치된 사건이 발생하면서 공분을 샀다.

문제는 이 차량 때문에 소방차 출동이 두 차례 지연됐다는 점이다. 생사가 갈리는 긴급 상황에서 '불법주차 한 대'가 화를 키운 것이다.

당시 소방 당국은 차량을 치우는 대신 차량 소유자에게 여러 번 연락을 시도했고, 결국 견인차가 도착한 건 약 3시간 40분 뒤였다. 많은 시민은 "차를 밀고 갔어야 했다"며 분노했지만, 정작 법과 현실 사이에는 큰 괴리가 존재한다.

소방 당국은 불법 주정차 차량이 소방차의 통행을 방해할 경우 이를 강제로 이동시키거나 불가피한 경우 파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 같은 조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지 법적 근거와 제도의 현실을 검증해봤다.

규정 있어도 현장에선 유명무실…6년간 강제처분 '4건'
소방기본법 제25조는 '소방본부장, 소방서장 또는 소방대장은 소방 활동을 위해 긴급하게 출동할 때는 소방 자동차의 통행과 소방 활동에 방해가 되는 주차 또는 정차된 차량 및 물건 등을 제거하거나 이동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라 소방 당국이 강제처분을 했을 경우 합법적으로 주차된 차량이 손상됐다면 별도의 손실보상 심의위원회를 통해 보상받을 수 있다. 반면 불법 주정차 상태였다면 보상 대상이 아니다. 소방서 주변, 소화전 인근, 좁은 골목 등에 불법 주차된 차량은 밀거나 파손해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이 손실보상 규정은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를 계기로 이듬해 보완됐다. 당시 불법 주차 차량으로 인해 소방 굴절사다리차의 진입이 지연되면서 29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치는 등 피해가 커졌다.

개정 전에도 강제처분과 손실보상에 대한 규정은 있었지만, 이를 보다 구체화해 정당한 보상을 실질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강제처분에 대한 근거를 명확히 세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에도 실제 현장에서 강제처분이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8년 6월 개정안 시행 후부터 지난해까지 소방차 출동 방해 차량에 대한 강제처분은 단 4건이다. 지난해에는 한 건도 없었다.

불법 주차 차량에 막힌 제천 현장 출동 소방차
(제천=연합뉴스) 조현후 인턴기자 = 지난 21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에서 소방차의 진입을 가로 막고 있던 불법 주차 차량이 옮겨지는 장면이 인근 상가 CCTV에 기록됐다. 2017.12.22
[email protected]


법적 근거가 있음에도 실무적으로 강제처분을 꺼리는 이유는 민원에 대한 부담 탓이 크다. 처분 이후 소방관이 겪을 민형사 소송과 그에 따른 인사상 불이익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국립소방연구원이 2020년 현장 소방관 1만4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강제처분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91.6%가 필요하다고 응답했지만, 응답자의 74.5%는 강제처분의 현장 적용에 대해 '잘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42.5%가 '사후 처리 과정상 행정적·절차적 부담'을 꼽았다. 강제처분 행위자에 대한 신분상 불이익을 우려하는 답변도 20.4%였다.

강제처분 절차가 비효율적이라는 점도 문제다.

소방청의 '강제처분 처리 매뉴얼'에 따르면 주정차 차량으로 인한 통행 장애가 발생한 경우 먼저 이동 조치를 요구하고, 이동이 불가능할 시 강제처분에 나선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이후 지휘 대장의 지시 등의 체계를 거쳐야 한다.

한 현직 소방관은 "현장에서 불법 주정차 차량을 파손하고 지나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진입이 어려우면 수관을 끌어오거나, 우회로를 찾아 다른 경로로 화재 현장으로 이동한다"고 말했다.

화재 골든타임 '5분'…"소송 지원·배상책임 제한 검토해야"
화재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서울연구원이 펴낸 '서울시 화재 사고 현장 대응성 강화를 위한 소방력 운용 개선방안'(2016)에 따르면 소방차가 5분을 넘겨 현장에 도착하면 5분 안에 도착했을 때보다 사망자가 2배 이상, 재산 피해는 3배 이상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5명의 사망자와 125명의 부상자를 낸 의정부 아파트 화재 사건 당시에도 출동한 소방차가 아파트 진입로 양옆에 늘어선 20여대의 불법 주차 차량 때문에 10분 이상 현장 진입이 지연돼 피해가 커졌다.

해외에서는 빠른 화재 진압을 위해 주정차 차량을 파손하고 출동하기도 한다.

영국은 2004년부터 소방관이 화재진압과 구조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차량 소유주의 동의 없이 차량을 옮기거나 파손할 수 있는 '화재와 구출 서비스법'을 시행하고 있다.

광주 동부소방, 불법 주차 강제처분 훈련
(광주=연합뉴스) 광주 동부소방서는 상가 화재 출동 상황을 가정해 불법 주정차 차량을 돌파하거나 파괴하는 등의 강제처분 훈련을 실시했다고 8일 밝혔다. 사진은 전날 소화전 옆 불법주차 차량의 창문을 깨고 소방호스를 연결하는 훈련을 하는 모습. 2022.12.8 [광주 동부소방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mail protected]


국회입법조사처는 '소방차 화재진압 시 불법 주정차 차량 강제처분 제도의 한계와 향후 과제'(2024)에서 "소방기본법상 강제처분 근거 규정이 마련됐지만, 최종적으로 책임을 면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소방공무원이 일차적으로 소송에 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여전히 강제처분의 장애 사유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방공무원의 직무수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송을 '공무원 책임보험', '행정종합배상 공제' 등 제도에 명확히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공익을 우선하는 직무수행을 장려하기 위해 공무원 개인의 배상책임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해외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공무원의 직접적인 배상책임은 제한하는 사례가 많다"고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연합뉴스 팩트체크부는 팩트체크 소재에 대한 독자들의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이메일([email protected])로 제안해 주시면 됩니다.>>

연합뉴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52345 코뚜레에서 피가 철철 나도…‘억지 싸움’ 동원되는 싸움소들 랭크뉴스 2025.06.26
52344 트럼프, CNN 기자에 “개처럼 내쫓아야…핵시설 보도 거짓” 랭크뉴스 2025.06.26
52343 민주당 정권 ‘부동산 악몽’ 엄습…금리인하·공급절벽 ‘첩첩산중’ 랭크뉴스 2025.06.26
52342 “헌재 방화” “초등생 살해” 온갖 협박글 올린 20대 남성, 구속 송치 랭크뉴스 2025.06.26
52341 김민석 “공적 책임 다해왔지만, 국민 눈높이에 여전히 미흡할 대목들에 송구” 랭크뉴스 2025.06.26
52340 ‘기재부의 나라’로 불렸지만 조직 개편에 수장 공백으로 입지 흔들 랭크뉴스 2025.06.26
52339 유시민 “李정부서 공직 안 맡을 것”…이유는 랭크뉴스 2025.06.26
52338 진짜 별이 된 ‘은마아파트’…강남만의 리그 [서울집값탐구]① 랭크뉴스 2025.06.26
52337 정부 뾰족수 없어 집값 불안 확산…단기 수요억제? 근본대책? 랭크뉴스 2025.06.26
52336 파월 "관세, 인플레이션 영향 예측 솔직히 어려워" 랭크뉴스 2025.06.26
52335 '약물 운전' 이경규 소식에…정신과 전문의 "가뜩이나 편견 높은데" 랭크뉴스 2025.06.26
52334 민주당 정권 ‘부동산 악몽’ 또 엄습…금리인하·공급절벽 ‘첩첩산중’ 랭크뉴스 2025.06.26
52333 트럼프 “이란과 다음주 대화 가질 것” 핵 합의 재개 뜻 랭크뉴스 2025.06.26
52332 트럼프 “이란과 다음 주 대화 가질 것” 랭크뉴스 2025.06.26
52331 [중앙시평] 이 대통령의 상대는 ‘5년 후 이재명’ 랭크뉴스 2025.06.26
52330 "기초연금 늦추면 노인 경제적 불안정↑…저소득층엔 직격탄" 랭크뉴스 2025.06.26
52329 또 세계 찢었다!…K-감성 듬뿍 담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 랭크뉴스 2025.06.26
52328 美 엔비디아 주가, 역대 최고가 경신…첫 150달러대 마감(종합) 랭크뉴스 2025.06.26
52327 "미국 MZ 600만 명 '신불자' 될 판"…대체 무슨 일? [글로벌 왓] 랭크뉴스 2025.06.26
52326 '내란 2인자' 김용현 추가 구속‥특검 수사 탄력 랭크뉴스 2025.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