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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순천에서 차로 한 시간, 남쪽 끝자락 전남 고흥에 닿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고흥은 여행객에게 장벽이 높은 곳이다. 도시화의 파도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조용히 자기 속도로 흘러가는 땅이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일 것이란 편견은 의외의 ‘다정함’에서 무너졌다. 도시의 분주함에 지쳤다면 다정함이 풍경함이 되는 곳 고흥으로. 전남 지베르니 ‘금세기정원’
쌀과 정원을 나눈 기업가
전남 고흥의 금세기정원. 사진=고흥군청
전남 고흥군 동강면 장덕리.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불리는 고흥의 초입에서 처음 만난 것은 정원이었다. 이름은 ‘금세기정원’. 누군가는 이곳을 고흥의 벚꽃 명소라 부르고 누군가는 프랑스의 ‘지베르니’를 닮았다고 말한다.

정원의 시작은 한 기업인의 손에서 비롯됐다. 죽암그룹의 창립자 고(故) 김세기 회장은 경남 마산에서 쌀장사를 하다 1960년대 고흥 죽암지구의 간척사업에 뛰어들었다. 포클레인 같은 중장비도 없던 시절 리어카로 돌을 나르고 물막이 공사를 하며 땅을 일궜다. 남해안의 지도를 바꾼 죽암간척지 개간 사업이다. 그가 직접 개발한 간척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이곳을 찾았을 정도.
전남 고흥의 금세기정원은 기업가 고 김세기 죽암그룹 창업주의 손에서 시작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땅은 오랫동안 고흥 지역민에게 쌀과 일자리를 안겨준 ‘죽암농장’이 되었고 이후 아들 김종욱 회장의 손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됐다. 그는 선친을 기리기 위해, 그리고 축사 주변을 녹화하기 위해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목적은 소박했지만 30여 년이 흐른 지금 금세기정원은 고흥을 대표하는 고즈넉한 숲이자 열린 공간이 되었다.
전남 고흥의 금세기정원. 민간정원이 개방됐다.
우중에도 관광객이 지베르니를 닮았다고 감탄한 전남 고흥의 금세기정원.

금세기정원은 2018년 전라남도 민간정원 제4호로 지정됐다. 면적은 약 3380여 평(1만1169㎡). 한반도 지형을 본뜬 수변공원, 잔디광장, 소나무숲과 메타세쿼이아길, 장미꽃밭까지 곳곳이 섬세하게 다듬어져 있다. 동백과 단풍, 유채와 수국, 장미와 백일홍 등 123종의 수목이 사계절을 수놓는다.

문화해설사 강춘애 씨는 금세기정원과 죽암농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우석기념관에서 “이곳은 알려지지 않은 벚꽃 명소”라고 힘주어 말했다. 봄이면 벚꽃길만 따라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 반이 걸린다고 했다. 그는 벚꽃뿐 아니라 유채, 수국, 장미까지 사시사철 피어나는 꽃과 나무들이 장관을 이루는 이 정원을 “고흥에서 가장 볼 만한 곳”으로 꼽았다.

그의 말에는 이 정원을 민간에 개방한데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배어 있었다. 김 회장은 코로나19 이후 정원을 모두에게 개방했다. 매주 목요일이면 전남도 관광 프로그램인 ‘남도한바퀴’의 버스가 이곳을 찾고 주말이면 타지에서 찾아온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농장 출입 시 가축 질병 방지를 위한 방역을 거쳐야 하기에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곳은 죽암농장의 비밀스러운 정원에서 ‘누구나 걸을 수 있는 정원’이 되었다. 이날 수변공원에서 사진을 찍던 관광객은 이곳이 마치 프랑스의 ‘지베르니’를 꼭 닮았다며 감탄했다.

죽암그룹은 이 정원을 더 넓게 쓰는 법을 고민 중이다. 순천만정원박람회의 축소판처럼 고흥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키울 계획이라고 전했다.

⸻ 금세기정원 정보 ⸻
주소|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죽암로 244-27
정원 면적|총 5만4258㎡ / 녹지 면적 4만3588㎡
운영 시간|09:00 ~ 16:30 (예약제 운영, 일요일 휴무)
※ 농장 내부 방역을 위해 사전 예약 필수

한국의 고양이섬 ‘쑥섬’
숲을 열고 마을을 살리다
전남 고흥 쑥섬.
전남 고흥 쑥섬.
전남 고흥 쑥섬.
전남 고흥 쑥섬.
전남 고흥 나로도항. ‘한국의 고양이섬’이라 불리는 쑥섬을 향해 배에 오르기 전 기대는 섬보다 고양이에 더 쏠려 있었다.

고양이 캐릭터가 가득 그려진 배에 올라 바닷바람을 맞고 있으니 선장이 말했다. “쑥섬에 다 왔습니다.” 3분. 짧은 항해 끝에 작은 섬 애도(艾島)에 도착했다.

섬에 발을 딛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해변을 따라 곧게 뻗은 무지개 도로다. 제주 유명한 무지개 도로를 옮겨놓은 듯하지만 이곳에 앉아 있으면 고양이들이 다가와 얼굴을 치댄다.
그 옆으론 고양이를 위한 쉼터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고 그 뒤로 섬 주민들의 소박한 삶터가 이어진다. 고양이와 사람이 나란히 살아가는 풍경. 쑥섬은 그렇게 조용한 첫인사를 건넨다.

섬의 중심엔 400년 넘게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당숲이 있다. 햇볕조차 스미지 않는 이 난대림엔 후박나무, 푸조나무, 육박나무, 돈나무가 울창하다. 과거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당제가 이 숲에서 열렸고 개나 닭이 울기만 해도 제사를 다시 지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을 만큼 신성한 공간이었다.

이 숲이 외부에 개방된 건 2016년. 1970년대 70가구 400명이 살던 섬은 이제 주민 12명이 남았다. 절반 이상이 80대 이상 고령자다. 마을의 유일한 배편마저 끊길 위기에 처하자 쑥섬의 국어교사 김상현 씨와 약사 고채훈 씨 부부가 나섰다. ‘쑥섬지기’를 자처한 두 사람은 10년 넘게 주민들을 설득했고 마침내 섬은 세상에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 놓인 표지판이 눈에 띈다. 하나하나 쓴 듯한 안내문엔 이 섬을 사랑한 쑥섬지기 부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원 나무’로 불리는 푸조나무엔 “여기까지 와서 날 보는 네가 고마워. 선물 하나를 줄게. 이 나무에서 사진을 찍으면 쭉쭉 잘나가게 된단다.” 2003년 태풍 ‘매미’에 쓰러졌다가 다시 싹을 틔운 육박나무 앞에는 “이렇게 우리는 살아 있잖아? 너에게 강인함이란 보석을 선물하고 싶어.”

쑥섬의 가장 높은 지점 해발 80m에는 하늘정원이 있다. 두 사람이 손수 가꾼 이 정원엔 300여 종의 꽃이 계절 따라 흐드러지게 핀다. 다도해의 수평선을 배경으로 수국, 장미, 매화가 꽃길을 만들고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고요한 숨결이 밟힌다.

전남 제1호 민간정원으로 등록된 이곳은 사람의 손길이 닿되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도록 만든 ‘지붕 없는 미술관’이다. 특히 6~7월은 수국의 계절. 섬 전체가 형형색색의 꽃으로 덮이며 가장 화려하게 빛난다.

⸻ 쑥섬(애도) 방문 정보 ⸻
위치|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나로도항길 120-7
운항 시간|07:30 ~ 15:30 (5~8월은 연장 운영)
탐방 소요|도보 기준 약 1시간 30분~2시간
주의 사항|반려견 동반 금지
(쑥섬은 고양이의 섬! 생태 보호를 위해 취식·야영도 제한됩니다)

“유자만 보고 지나칠 순 없잖아”…현지인이 꼽은 고흥 맛집 ‘유자’와 ‘우주’의 고장으로만 고흥을 알고 있었다면 반쪽만 본 셈. 고흥의 진가는 산해진미에 있다. 현지인에게 직접 추천받고 발품까지 더해 모은 검증된 맛집 리스트를 공개한다. mkr커피 — 진짜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전남 고흥 식도락 여행.
2017년 고흥에 첫발을 디딘 mkr커피. 호주에서 커피를 배운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이곳은 에스프레소 기반의 정통 스페셜티 바다. 녹동항 장어거리 한복판, 커피 한 잔을 위해 일부러 찾는 이들이 있을 정도.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진짜 커피 한 잔, 고흥에선 이곳이다. 특히 진하고 묵직한 풍미 위로 부드러운 크림이 완벽한 균형을 잡는 아인슈페너를 추천한다. 깔끔한 뒷맛이 일품이다.
갈매기카페 — 인생 버거와 쑥라떼의 조합
전남 고흥 식도락 여행.
전남 고흥 식도락 여행.
“인생 햄버거를 고흥에서 만날 줄이야.” 고흥 쑥섬의 갈매기카페는 수제버거 하나로 입소문을 탄 맛집이다. 섬 개방 이후 관광객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쑥섬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재료 하나하나 아끼지 않은 수제버거는 단골들 사이에서 “다시 먹으러 오는 맛”으로 유명하다. 섬 이름의 유래가 된 쑥으로 만든 쑥라떼도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시그니처 메뉴. 풍경은 힐링, 맛은 확신. 쑥섬에 간다면 이 조합 무조건.
고흥 하모 샤브샤브 — 생각나는 그 맛
전남 고흥 식도락 여행.
전남 고흥 식도락 여행.
서울에 돌아와서도 계속 생각난다. 고흥에서만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제철 별미 하모(갯장어)다.
사방이 청정바다인 고흥은 하모 산지 중에서도 손꼽히는 지역. 민물장어나 붕장어보다 느끼함은 덜하고, 담백한 감칠맛이 오래 남는다. 하모 샤브샤브는 그중 백미. 뼈를 바른 하모 살에 촘촘히 칼집을 낸 뒤 하모 뼈로 우린 육수에 살짝 데쳐낸다. 뜨거운 육수에 들어간 하모는 꽃처럼 피어오르는데 ‘딱 열을 세고’ 건져야 가장 부드럽고 고소한 식감이 살아난다. 특히 고흥 맛집으로 소문난 장수식당은 뼈를 깔끔하게 발라내 거슬림이 없고 부산에서 고흥으로 터 잡은 사장님의 음식 설명이 기가 막히다. 하모의 생태부터 손질법, 육수에 담그는 타이밍까지 설명을 듣는 동안 입맛은 더 깊어진다. 눈과 입이 모두 즐거운 제철 요리. 여름 고흥에 간다면 하모는 무조건, 무조건이야~♬
다정한 숙소 ‘숲속의 바다’
전남 고흥 식도락 여행.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면 잡지 마세요. 15일밖에 살지 못하거든요.”
“입구 길에서 고라니 가족을 만나면 잠시 차를 세우고 기다려주세요. 곧 제 갈 길로 가요.”

고흥 동일면에 위치한 펜션 ‘숲속의 바다’.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고흥에 정착한 김희찬·정혜련 부부의 숙소 안내문엔 단순 가이드뿐 아니라 자연과 도시민이 공존하는 방식이 담겨 있다.
전 객실 오션뷰. 창밖으로는 다도해가 펼쳐지고 창 안으로는 조용한 휴식이 스며든다. 펜션 앞 바다에선 체험비 1000원을 내고 문어통발 체험도 가능하다.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숨 쉬고 싶다면 이곳의 하루를 추천한다. 속도를 늦추고 자연과 어우러질 수 있는 다정한 숙소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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