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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아이스박스 속 응급재료 ‘달걀’
| 정연주

캠핑 브런치에 가장 어울리는 달걀 레시피는 페스토 달걀 프라이다. 달걀에 허브 페스토를 둘러 천천히 익히면 향기와 감칠맛이 배가된다. 이렇게 만든 달걀 프라이는 크림치즈 베이글과 환상궁합을 이룬다.


외국에서 놀러 온 관광객을 안내할 계획을 세운다. 동선을 짜고, 화장실 위치를 확인하고, 비건 식단과 알레르기 유무도 체크한다. 혹시라도 트러블이 생길까 봐, 국내 병원에 데려갈 경우 필요한 서류까지 미리 검색한다. 그렇게 준비하다 보면 이미 지쳐 있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지금이야 사방팔방 MBTI 성격유형검사가 알려져서 좋게 말해 ‘계획형이네요’라는 평을 듣지만, 이런 성격을 타고난 집안에서 자라며 서로에게 자조하듯 던지는 말은 조금 달랐다. ‘걱정이 없으면 만들어서 한다.’ ‘돌다리 두들기다 깨부순다.’

세상에 완벽한 대비란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지금은 준비할 만큼 하고 나면 나머지는 조금 포기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내 준비할 만큼의 기준이 남들로 하여금 없던 걱정을 같이하게 되거나 유난이라는 핀잔을 들을 정도라는 건 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물러날 수는 없다. 걱정이 아무 쓸모 없는 것이라면 유비무환이라는 말은 왜 있겠어!

캠핑 장비를 마련할 때 가장 유비무환의 자세로 준비한 것이 있으니 구급상자다. 아니, 사실 우리 캠핑카의 입구 바로 옆 손 잘 닿는 수납함에 넣어 둔 구급상자는 상자가 아니라 천으로 된 수납용 백인백(Bag in bag)이다. 형태가 고정된 딱딱한 상자로는 내 걱정을 달랠 수 있는 각종 구급 용품을 전부 수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수납함을 열어보고 이게 뭐냐고 기겁을 했지만, 하나도 줄일 수는 없었다. 캠핑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그걸 당장 처리해야 하는 건 우리니까.

그냥 신혼부부로 살 때까지는 집에 구급약품을 둔 적이 별로 없었다. 아플 때 샀던 약이 남으면 가지고 있다가 급할 때 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니 상황이 달라졌다. 영유아는 새벽에도 고열이 오르는 것이 일상인데, 약국도 닫아서 선택지가 응급실밖에 없는 시간에 해열제가 똑 떨어지면 그것만큼 눈앞이 새까매지는 일도 없다. 해열제 종류가 여러 개라 교차 복용이라는 이름으로 번갈아 먹어야 한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그런데 응급실에 당장 달려가기도 도심보다 여의치 않은 캠핑장에서 아프기라도 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약국을 탈탈 털어올 수밖에.

그래서 슈퍼 걱정쟁이의 캠핑용 구급상자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일단 고열에 대비해 성분이 다른 해열제와 진통제 두 종류를 꼭 챙긴다. 그리고 우리 집 같은 경우는 성인은 주로 어깨 뭉침으로 인한 두통으로 진통제를 먹기 때문에 소염진통제도 따로 있어야 한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무엇에 긁혀서 어디에 생채기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소독약, 그리고 반창고도 여러 크기가 필요하고 가벼운 화상에 대처할 수 있는 화상용 반창고도 있으면 좋다. 돌돌 감아서 쓰는 붕대형 반창고도 있으면 마음이 아주 편하다. 또 이건 정말 응급 시를 위한 약인데, 자연 속에서는 피부가 붓고 간지러워지는 등 몰랐던 알레르기를 갑자기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알레르기 대처를 위해 항히스타민제도 항상 갖고 있는데, 이건 해외여행 시에도 무조건 지참한다.

그리고 특히나 여름 캠핑장의 원수 같은 존재, 모기! 모기약은 모기기피제와 일반 벌레를 퇴치하기 위한 에프킬라, 평소에 피우는 모기향은 당연하고 모기에게 물렸을 때 피부에 바르는 물파스처럼 생긴 약도 갖고 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모기에게 잘 물리기도 하고 한 번 물리면 모를 수 없을 정도로 띵띵 부어오르는데, 그걸 보면 모기를 전부 박멸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혹시라도 설사를 할지 모르니까 지사제, 고기 등을 과식하고 속이 불편할 수 있으니까 소화제, 주중의 긴장이 풀려서 아픈 경우가 가끔 있으니까 감기약… 어느 것 하나 빼기에는 걱정이 앞서는 상비약이고,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주눅이 들었다가도 가족 누군가가 모기에게 물리고 두통에 시달리고 어딘가에 베이면 냉큼 구급상자를 꺼내 의기양양하게 내민다. 미리 사놓길 잘했지? 하고.

캠핑에 생달걀을 들고 가기 불안하다면 튼튼하고 위생적인 달걀 케이스를 하나 구비하자.


풀어서 오믈렛·삶아서 샐러드

볶아서 스크램블이나 볶음밥

밋밋할 땐 페스토 달걀 프라이

식재료 부족할 때 ‘구원투수’ 역할


이런 상비약은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사놓는 것이 특징인데, 캠핑 걱정쟁이가 혹시 이번 캠핑에서 가족이 굶을까 봐 필요하지 않아도 가져가는 응급 재료를 꼽자면 달걀이다. 달걀을 처음 챙겨간 것은 인터넷으로 캠핑 장비를 구입했더니 사은품으로 달걀용 케이스가 함께 왔을 때였다. 마트에서 파는 달걀은 이미 전용 용기에 담겨 있는데 ‘케이스가 왜 필요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냉장고의 달걀 수납함에 달걀을 보관하는 집은 전용 용기가 잘 없고, 캠핑용 달걀 케이스가 훨씬 튼튼하고 위생적이다.

일단 달걀을 가져가면 밥걱정이 없다. 캠핑에서 새로운 요리를 시도할 때도 있고 가져간 식재료가 부족할까봐 불안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 ‘급하면 달걀이 있으니까’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라면이 있잖아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라면은 일단 캠핑 중에 한 끼니로 이미 고정되어 있어서 마음이 편치 않다.

그에 반해 달걀은 일단 단백질이 풍부한 건강식품이기도 하고, 온갖 형태로 먹어 치울 수 있다. 별사건이 없어서 남으면 라면에 풀기도 하고, 버섯과 크림이 남은 날에는 달걀 여러 개를 풀어서 오믈렛을 하고 버섯 크림소스를 만들어 대학 시절에 프랜차이즈 전문점에서 먹은 버섯 크림 오므라이스를 재현하기도 했다. 삶아서 으깨면 달걀 샐러드로 간식 겸 안주가 되고, 스크램블드 에그로 아침 식사를 완성하거나 여기 찬밥을 넣어서 달걀볶음밥으로 아이 한 끼를 뚝딱 끝내기도 한다. 세상 이보다 더 든든한 구원투수가 없다.

그중에 제일 만만한 것은 역시, 달걀프라이다. 기름을 두르고 달걀을 깨 넣어 익히기만 하면 되는 달걀프라이. 쉬운 만큼 취향에 맞춰 아주 섬세하게 구분할 수도 있어서, 가끔 조식 뷔페에서 달걀프라이의 익힘 정도를 고르는 취향만 봐도, 성격 테스트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반숙인가요, 완숙인가요? 한 면만 익히는 서니 사이드업인가요, 뒤집어 살짝 익힌 오버 이지인가요? 노른자를 익히는 방법에도 아예 깨서 넓게 퍼지게 하거나 서니 사이드업인 채로 뚜껑을 닫아 위쪽까지 익히는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다만 가끔 아쉬워지는 단점이 있다면 맛이 약간 밋밋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간장달걀밥으로 만들거나 비빔밥의 추가 고명으로 얹는 것처럼 양념하지 않으면 이것만으로는 캠핑장 음식이라기에는 조금 심심하다. 급할 때 꺼내는 재료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는 걸 너무 티 내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할까?

그럴 때는 틱톡에서 유행하는 달걀프라이 레시피가 제격이다. 토마토 스튜에 달걀을 넣어 익히는 에그인헬이라고 불리는 ‘샥슈카’나 페타 치즈나 파르메산 치즈, 허브 소스 등과 함께 달걀프라이를 부치는 레시피가 유행한 지도 벌써 몇년이 되었다. 그중에 캠핑 브런치에 가장 어울리는 방법은 기름과 함께 허브 페스토를 둘러서 달걀을 깨 넣고 약한 불에 천천히 프라이를 부치는 페스토 달걀프라이다. 허브 향기와 감칠맛이 강화되어서 베이글과 크림치즈에 이보다 더 어울리기도 힘들다. 천천히 익혀서 허브가 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포인트!

아주 간단하게는 식용유 대신 고추기름에 프라이를 해보는 것도 좋다. 간장달걀밥을 단번에 독특하게 만들어 주니까. 달걀은 구급상자만큼이나 ‘안 가져왔으면 어떻게 할 뻔했어?’ 하고 걱정쟁이를 뿌듯하게 만드는 고마운 존재다.

■정연주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요리 전문 번역가.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요리 잡지에서 일했다. 주말이면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맛캠퍼로 ‘캠핑차캉스 푸드 라이프’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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