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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단속 후폭풍

겁먹고 두문불출… 외출·쇼핑 등 꺼려
씀씀이 컸던 빅브랜드 매출 곤두박질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6일 새벽(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남부 파라마운트의 홈디포(Home Depot). 수십명의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주차장에 모여든 히스패닉(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 출신) 건설노동자들을 무차별 체포하기 시작했다. 건설자재와 공구 등을 파는 대형 할인매장인 홈디포의 주차장은 새벽마다 건설 일용직 노동시장이 열리는 곳이다.

이날 ICE의 홈디포 급습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LA 이민 단속 항의 시위는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3주째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자 주요 도시에서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쇼핑몰과 식당, 술집, 할인점, 백화점 등의 매출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국 경제에서 히스패닉이 아예 사라지고 있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체포에 겁 먹은 히스패닉 주민들이 집에만 머무르자 이들 거주 지역 내 상가들은 손님이 거의 없어 유령의 집을 방불케 한다”고 보도했다.

이민자 검거 선풍에 직격탄을 맞은 빅 브랜드가 속출하고 있다. 미국 내 매출의 상당 부분을 히스패닉 주민들로부터 벌어들이는 코카콜라는 지난 1분기 매출이 직전 분기에 비해 3% 감소했다. 코카콜라는 히스패닉계의 소비력이 연간 2조1000억 달러에 이른다는 분석까지 내놓으며 비상 경영에 돌입한 상태다. 존 머피 코카콜라 최고재무책임자(CFO)는 WSJ에 “히스패닉 주민들을 잃는다는 것은 우리 같은 소매 브랜드에는 치명타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LA 시위 사태가 촉발됐던 홈디포와 또 다른 건설자재 대형 판매점 로우즈(Lowe’s)가 받는 타격은 매출 급감만이 아니다. 매출은 평소의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졌다. 또 이들 매장의 야외 주차장은 이민자 검거에 나선 ICE 요원들과 시위대가 거의 매일 충돌하며 전쟁터로 바뀌었다.

일용직 노동시장 문 닫을 지경

주택 건설업과 농업의 피해 규모도 상상을 초월한다. 히스패닉 이민자들의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해온 두 업종에선 일용직 근로자를 아예 구하지 못해 문을 닫을 지경에 처한 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다.

저가 중고차 시장도 냉각됐다. 자동차부품 도매 상점인 오토파츠와 중고차 업체들은 대대적인 할인에도 부품과 중고차가 안 팔려 울상이다. 치약과 식용유를 파는 브랜드인 콜게이트-팜올리브도 상당한 수준의 매출 감소에 시달리고 있고, 코로나 맥주 제조 업체 모데요는 이달 들어 매출이 10%나 하락했다.

주말마다 외식하러 나온 가족 단위 고객들로 붐비던 다운타운의 식당들과 쇼핑 인파로 가득했던 식료품점, 대형 할인마트에서도 한산한 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불법 체류자 추방과 체포가 집중되는 곳이 바로 이런 상점가이기 때문이다. 불법 이민자가 아니더라도 단순 서류 미비자나 영주권자, 미국 시민권자마저 ICE 요원의 불심 검문을 피하기 위해 외출을 삼간 채 집에만 머문다는 얘기다.

멕시코 패스트푸드 체인인 타코벨과 치킨 체인 칙플라이, 윙스탑, 엘폴로, 로코 등 외식 브랜드들도 매출이 급감하는 중이다. 히스패닉 인구 비중이 높은 캘리포니아·조지아·텍사스·플로리다·애리조나 등 남부 주에선 편의점과 주유소 매출마저 크게 떨어지는 형편이다.

신발 소매 체인점인 JS스포츠의 레지스 슐츠 최고경영자(CEO)는 WSJ에 “고객 영수증을 전량 분석한 결과 12개 주 매장에서 히스패닉 주민들의 신발 구매가 심각할 정도로 줄었다”며 “트럼프가 야기한 이번 사태의 악영향은 앞으로 더 선명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WSJ는 “미국 경제에 드리운 암운은 관세나 인플레이션 문제만이 아니다”며 “보금자리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 미국 인구가 급증하면서 소비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고 진단했다. 안 그래도 건설업 등의 일자리 감소로 소득이 줄어든 히스패닉계가 이번 사태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까지 갖게 되면서 소비 지출의 문을 닫아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지지층 이탈에 지침 완화
밀짚모자를 쓴 농부 차림의 한 미국인이 지난 14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위치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마러라고 사저 근처에서 열린 ‘노 킹스(No Kings)’ 시위에 참가해 찢어진 성조기를 들고 서 있다. 노 킹스 시위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생일인 이날 수도 워싱턴DC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벌이자 ‘당신은 왕이 아니다’는 구호와 함께 미국 전역에서 벌어졌다. AFP연합뉴스

ICE의 대규모 이민 단속은 트럼프 지지층 일부를 반트럼프 전선에 합류시키는 반작용도 낳고 있다. 이민자를 고용해 사업을 유지해온 백인 소규모 사업자와 자영업자, 농장주들이 지지 대열에서 이탈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에는 열혈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층이었던 이들이 ICE 요원의 사업장 출입을 막으며 이민자 종업원을 보호하는 쇼츠 영상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또 “내가 표를 준 사람이 내 사업을 망쳤다” “이민자 검거는 농업을 죽이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영상들도 업로드돼 엄청난 조회수를 올리고 있다. 지난 14일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 시위에 트럼프 주요 지지층인 ‘레드넥’(Red Neck·백인 블루칼라)들이 가담한 모습도 방송에 잡혔다.

그러자 트럼프는 부랴부랴 이민 단속 지침을 바꾸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행정부가 농장과 호텔, 식당 등지에서의 이민자 단속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면서 “ICE의 무차별 단속이 자신의 핵심 지지층에게 피해를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ICE 지역 담당자들은 “양식업과 육류 가공공장, 식당, 호텔 등에 대한 작업장 조사와 (체포) 집행을 중단해 달라”는 이메일 지침을 받았다고 NYT에 전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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