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현대차 울산 전기차 공장 기공식 모습. 현대차 제공
기업과 언론의 관계는 오묘하다. 자신에게 필요한 대로만 알리려는 쪽과 사실을 더 확인하려는 쪽의 팽팽한 힘겨루기 속에도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것이다.
규칙이 흐트러졌다고 느낀 것은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고 나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관세 전쟁’에 돌입했고, 지난 2월 15일, 모든 수입차에 25% 관세 부과를 4월부터 실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취재 전쟁도 시작됐다. 현대자동차가 선적 일정을 조정해 4월 이전에 최대한 많은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해 놓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그 즈음이었다.
현대차 쪽에 진위 확인을 요청했다. 돌아온 답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자동차 선적 일정은 수개월 전 결정되기 때문에 미리 정해진 일정을 갑자기 바꿀 수 없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런데 지난 4월 1분기 실적설명회에서 밝혀진 사실은 달랐다. 이승조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부사장)은 “3월 말까지 최대한 선적을 추진해 완성차는 3.1개월치 재고를 비축했다”고 말했다. 올 초 자동차 수출 물량이 많았던 것은 관세 부과를 피하기 위한 ‘재고 쌓아두기’였는데, 그동안 현대차 설명만 보면 자동차 수출이 잘 된다는 ‘착시’를 불러일으킨 셈이다.
같은 현대차그룹 계열인 현대모비스도 사실과 다른 설명을 반복했다. 미-중 갈등 속에 불거진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는 중국 정부의 전략과 전 세계 공급망 상황을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였다. 이를 취재하다 현대모비스가 최근 중국 상무부로부터 희토류로 만든 영구자석에 대한 수입 승인을 받을 것을 확인했지만, 회사는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뒤늦게 잘못 설명했음을 인정한 회사 관계자는 “상무부로부터 소량 허가를 받긴 했지만, 아직 해당 물량이 선적 전이었다. 추가 신청 건에 대해서는 승인 여부를 기다리는 중이라 예민한 상황”이라고 변명했다.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큰 시기이기에 기업이 몸을 사리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중국 정부가 갑자기 입장을 바꿔 수입 승인을 내주지 않거나 미국이 눈을 흘길까 걱정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이 ‘NCND’(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음)를 넘어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개인 투자자 등 시장 참여자의 경제 판단을 왜곡할 수 있는데다, 제대로 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아 통상 협상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악화하면, 협상 당국자들이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교섭력을 갖기가 어렵다. 감추기에 급급하다간 소탐대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