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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1990년대 중반. 필립 테틀록 교수는 UC버클리에서 심리학과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학자, 비평가 등 전문가들이 1980년대와 1990년대 일어난 세계적 사건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적 전환점으로 기록된 대형 사건인 소련의 몰락, 일본 부동산 거품, 걸프전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는 오랜 기간 실증적 연구를 마치고 2005년 ‘전문가의 정치적 판단’이란 책을 내놨습니다.

결론은 전문가들의 예측이 동전 던지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지요. 특히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패널들의 예측이 많이 빗나갔다고 했습니다.

테틀록은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의 ‘고슴도치와 여우’의 비유를 빌려 전문가 유형을 설명합니다. 고슴도치는 거대 담론, 핵심 아이디어에 집착하는 스타일입니다. 카를 마르크스 계급투쟁, 프로이트 무의식, 말콤 글래드웰 티핑포인트 등이 그것입니다.

반면 여우는 많은 사소한 정보를 수집하고 다양한 접근을 시도합니다. 또한 뉘앙스의 차이와 복잡성 등을 수용하는 스타일입니다. 고슴도치는 큰 먹잇감 하나를 노리는 사냥꾼, 여우는 무언가를 부지런히 수집하는 채집가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방송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할까요. 당연히 고슴도치류입니다. 명쾌한 프레임이 있기 때문에 어떤 사안에도 순발력 있고 과감한 발언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여우는 신중합니다. 많은 경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닐 수 있고,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다’고 답하며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고슴도치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중요한 변수들은 제거될 확률도 높아집니다. 예측의 흐름이 한 방향으로 갈 때 그에 반하는 주장을 하기란 더욱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사회의 예측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고슴도치가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함정은 ‘이념적 당파성’이라고 테틀록 교수는 주장합니다. 이념에 빠지면 정보는 오염되고 객관성은 사라집니다. 자기 신념을 강화하는 근거만 찾게 됩니다. 미국의 통계학자 네이트 실버가 ‘신호와 소음’이란 책에 이 스토리를 잘 서술해놨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대통령 선거 본투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고슴도치와 여우’는 단지 예측의 메타포만 머물지 않습니다. 통치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고슴도치형 사고는 사회를 순식간에 파괴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권력이라는 물리적 힘이 신념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고슴도치형 권력자가 이끄는 국가의 풍경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정치는 국가와 국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 출발은 문제의 발견입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여우의 채집정신입니다. 네이트 실버는 말합니다. “여우는 자신의 자료가 소음에 물들어 있는지, 가짜 신호를 좇는지도 안다.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고슴도치보다 훨씬 더 잘 안다.” 그래서 투자전략가나 의사도 여우형을 선택하라고 조언합니다.

문제를 발견하는 것은 흙탕물에 빠진 반지를 찾는 것과 비슷합니다. 손을 휘저으면 반지는 진흙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듭니다. 훌륭한 전략가는 조용히 흙이 가라앉길 기다립니다. 물이 맑아지고 반지가 보일 때를 기다립니다. 냉철함과 인내심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차기 대통령이 해결해야 하는 숙제는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조기 대선을 치르게 한 정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경제문제는 더 구조적이고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우선순위가 중요하고, 대통령이 첫 번째 사인하는 서류와 첫 지시가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경제사회 문제 중 의료 정상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사안은 없기 때문입니다.

자영업 붕괴 대책도 시급합니다. 구조적 해결책이 아니더라도 12·3 사태 이후 피폐해진 내수에 대한 대책이 없으면 다른 경제 공약은 공허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또 청년들의 무기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높은 실업, 구직 포기 등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는 수십만 청년들에게 줄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찾는 것은 중차대한 숙제입니다.

문제를 파악하는 눈은 맑아야 하고, 그 해결을 위한 정책은 과감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있는 정치 행위는 신중해야 하고, 스스로에게는 엄격해야 하며, 국정 운영은 깊은 사유의 뿌리 위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권력자의 품격이란 그런 것입니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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