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거리’로 불리는 서울 용산구 ‘백빈 건널목’. 최미랑 기자
서울 용산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저층의 낡은 주거지와 좁은 골목길 사이로 복고 감성의 카페와 상점이 빼곡히 모인 지역이 있다. ‘MBTI 빵’으로 유명해진 빵집 ‘왓어브레드’와 드라마 <나의 아저씨> 촬영 장소인 ‘백빈 건널목’이 위치한 이곳은 지금 ‘용산정비창 전면1구역’으로 불린다.
이 일대는 부동산 경기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절정에 달한 2000년대 중반부터 주요 재개발 대상 지역으로 꼽혀왔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개발이 좌초되며 갖은 부침을 겪다 마침내 ‘초대형’ 개발에 시동이 걸리는 모양새다.
공사비가 1조원에 가까운 전면1구역 시공권을 놓고 이달 HDC현대산업개발과 포스코이앤씨가 맞붙는다. 높은 공사 원가와 경기 침체로 대형 건설사들이 웬만한 재개발 사업에는 함부로 뛰어들지 않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보기 드문 경쟁이다.
그 ‘배후’에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있다.
포스코이앤씨 vs HDC현대산업개발
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용산정비창 전면1구역 재개발사업조합은 오는 8일 HDC현대산업개발과 포스코이앤씨가 참여하는 합동설명회를 열고, 22일에 조합원 총회를 열어 시공사를 선정한다.
용산정비창 전면1구역은 용산구 한강로3가 일대 7만1901㎡ 부지에 아파트와 오피스텔, 상업 및 업무시설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총 공사비는 약 9558억원이다.
포스코이앤씨가 용산정비창 전면1구역 재개발 조합에 제시한 사업 조감도.
2021년 7월에 조합이 설립된 이래로 포스코이앤씨가 수주에 공을 들였고, 용산역에서 바로 연결되는 아이파크몰을 짓고 역세권 개발을 벌여온 HDC현대산업개발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두 회사 모두 수주에 사활을 거는 모양새다. 두 회사가 조합에 거듭 ‘파격적’ 조건을 제시하면서 업계에선 ‘적자를 감수한 경쟁’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포스코이앤씨는 입찰에서 ‘오피스 책임임차’를 제안해 화제가 됐다. 업무시설에 공실이 생기면 시공사가 책임지고 임차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이주비 지원에다 담보인정비율(LTV) 160%를 내세운 점도 파격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한남6구역에 삼성물산이 제안한 LTV 150%를 뛰어넘는 조건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용산에 일본 도쿄의 롯폰기힐스 같은 초대형 랜드마크를 세우겠다고 제안했다. 용산역과 신용산역 지하까지 복합 개발해 분양수입금을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조합원당 최저 이주비를 20억원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한남4구역에서 삼성물산이 제안한 12억원보다 훨씬 높은 조건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용산정비창 전면1구역 재개발 조합에 제시한 사업 조감도.
‘안전’ 문제가 영향 미칠까
공교롭게도 두 회사 모두 안전 관련 리스크가 있다. 시공사 선정을 한 달여 앞둔 지난달 16일 서울시가 HDC현대산업개발에 영업정지 1년 행정처분을 내렸다. 2022년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로 중대재해를 일으킨 책임을 물은 것이다.
영업정지 처분을 받으면 해당 기간 동안 전국 현장의 신규 사업을 수주할 수 없다. 하지만 행정처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면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집행을 미루는 게 가능하다. HDC현대산업개발은 2021년 광주 학동 붕괴사고와 관련해서도 영업정지 처분을 받아 소송을 벌이는 중이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 4월11일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터널 붕괴 사고와 관련해 경찰 등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 국토교통부도 건설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사고 원인을 밝히는 조사를 진행 중이다. 조사위 활동 기간은 오는 16일까지인데 연장될 가능성도 있다. 인명 피해가 발생한 만큼 조사가 끝나면 과징금이나 영업정지 등의 처분이 내려질 가능성이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영업정지 처분을 소송으로 미루는 게 관행화된 상황이다. 전면1구역 조합 관계자는 “두 회사 모두 (영업정지 처분이) 이 사업에는 영향을 주지 않게끔 하겠다고 장담하고 있는 만큼 시공사 선정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경쟁의 ‘배후’…50조 규모의 ‘용산정비창’
용산정비창 전면1구역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용산정비창 부지와 맞닿아 있다.
서울시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소유의 용산정비창 부지에 국제업무지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정비창 부지에 ‘100층 랜드마크’를 세운다는 구상이다. 총 사업비는 약 51억1000억원으로 추정된다.
건설사들이 ‘출혈경쟁’을 감수하고라도 전면1구역 개발을 따내려는 것은 정비창 부지까지 개발되면 수익성이 폭발적으로 커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조합과 건설사 모두 국제업무지구 사업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정비창 부지와 전면1구역의 연결성 문제도 주요 관심사다. 현재 정비창 부지와 전면 1구역 사이를 가로지르는 기찻길이 보행을 통한 자유로운 이동을 막고 있어서다.
용산정비창 부지(왼쪽)과 전면1구역(오른쪽)을 가르는 선로. 최미랑 기자
지난달 22일 서울시는 철도 위에 데크를 깔아 보행로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이 구역의 보행 단절을 해소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연구용역을 통해 철도 상부 공간에 ‘공중 정원’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50조원 이상 투입되는 대규모 개발 사업에 일반 시민도 투자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업무지구 용지 일부를 리츠(부동산투자회사) 방식으로 개발해 시민들에게 우선 청약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과거 한 차례 추진하다 부도가 난 전례가 있는 용산국제업무단지 개발을 무리하게 다시 추진하면서 시민들까지 끌어들이려 한다는 것이다.
‘용산정비창 개발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국공유지인 용산정비창 부지는 민간에 매각해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할 것이 아니라 공공임대주택 공급 등으로 공공을 위해 써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