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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역~여의나루역 구간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승객들이 선로를 통해 대피하고 있다. 뉴스1

“범인이 객실 한가운데서 기름을 뿌리고 휴지에 불붙여 던지는 걸 봤어요.”

31일 오전 8시44분쯤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마포역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의 최초 신고자 오창근(29)씨의 목격담이다. 초밥 가게로 출근 중이던 오씨는 파란색 상의 차림의 방화 피의자 A씨가 객실에서 휴지를 빌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어 A씨는 바닥에 인화성 물질로 추정되는 노란색 액체를 뿌렸다. 놀란 승객들이 자리를 뜨는 찰나, 불이 나면서 열차 안에 검은 연기가 퍼졌다고 한다.

혼비백산한 승객 틈바구니에서 오씨는 119에 “공덕역으로 향하는 5호선 열차에서 불이 났다”고 신고했다. 이후 비상호출벨을 계속해 눌렀는데 열차가 멈추지 않아 이대로 죽는 건가 싶던 순간, 다행히 열차 속도가 천천히 느려졌다. 열차 문을 열고 어르신, 여성 등이 약 1.5m 아래 있는 터널로 뛰어내리는 것을 다른 남성들과 도운 뒤 오씨도 대피했다고 한다. 오씨의 바지에는 터널에서 묻은 녹물 자국이 선명했다. 오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불을 지르더라. 지하철 타는 게 무서워졌다”고 말했다.

31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마포역에서 발생한 방화로 다친 승객들이 마포역 2번 출구 앞에서 소방으로부터 응급처치를 받고 있다. 이영근 기자

경찰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60대로 추정되는 A씨를 여의나루역에서 오전 9시45분 체포했다. 경찰은 현장 감식과 함께 용의자를 상대로 정확한 방화 수단, 범행 경위 등을 조사 중이다. A씨는 방화를 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범행 동기는 밝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에 따르면 화재는 객실 네 번째 칸에서 발생했다. 오전 9시4분 소방이 도착했을 때는 기관사와 승객들이 소화기로 불을 진압한 상태였다. 승객들은 터널을 통해 대피해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소방은 전 객실에는 총 400여 명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 중이다. 이 중 연기호흡, 찰과상 등 가벼운 부상으로 병원에 이송된 인원은 21명이다. 130명은 현장 처치를 받은 뒤 귀가했다. 김진철 마포소방서 소방행정과장은 현장 브리핑에서 “최근 열차는 불연재로 제작돼서 불이 크게 번지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모(75)씨는 31일 오전 지하철 5호선 방화 사건에서 대피하는 중 신발을 잃어버렸다. 이영근 기자

이날 대피한 승객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포역 2번 출구 앞에는 대피 과정에서 다친 승객 20여 명이 산소호흡기 등을 착용한 채 응급처치를 받고 있었다. 새것 같은 삼선 슬리퍼를 신고 있던 이모(75·여)씨는 “사람들이 막 뛰어다니길래 칼 든 강도가 쫓아오나 싶어서 보니까 불이 났다고 소리를 지르더라. 같이 휩쓸려서 밀고 그러다가 겨우 터널에 내렸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신발도 잃어버리고 양말만 신고 뛰었다. 목이 아직도 칼칼하다”고 말했다. 김모(66)씨는 “칸마다 사람들이 엉켜서 늦게 나왔는데 너무 겁이 났다. 살아 나올 수 있어서 그래도 감사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서울교통공사는 여의도역∼애오개역 간 열차 운행을 한때 중단했다. 열차 운행은 오전 10시6분부터전 구간 재개된 상태다. 공사는 “모방 범죄 등 유사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6월 3일까지 공사 관할 전 역사와 열차를 대상으로 경찰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 특별경계근무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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