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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
이장규·손병수·고성표·박유미 지음
중앙북스

“우리나라의 잘못된 정치풍토 하나가 ‘정치가 법 위에 있는 것처럼’ 생각한단 거다. 정치가 성역인가. 선거에 영향이 있다고 범법행위를 용납하란 것이 무슨 논리인지 저는 알 수 없다. 정치가 법 위에 있지 않다. 후보도, 선거도 법 위에 있지 않다.”

대선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재판 연기를 주장하고 이를 관철한 민주당을 향한 비판 같지만, 전혀 아니다. 이는 2007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이다. 마치 노무현의 이재명 비판처럼 느껴지는 발언이라 이달 초 SNS에서 많이 회자했다. 사실 이 동영상은 ‘청와대 정치공작설’을 주장한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청와대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데 대해 여야 정치권 모두 반대하자 노 대통령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한 말이다.

노무현은 곧잘 소환된다. 이번 대선도 그랬다. 김해 봉하마을을 찾은 이재명 후보는 눈물을 흘리며 노무현의 꿈을 잇겠다고 다짐했다. 이준석 후보는 노무현을 닮고 싶다고 했다. 재임 중에는 인기 바닥이었던 노무현이 지금 10년째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이다.

2006년 1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신년 연설을 하는 모습. [중앙포토]
중앙일보 전·현직 기자들이 지난해 9월부터 이달까지 온라인 유료 사이트인 더중앙플러스에 연재했던 노무현 시리즈가 책으로 묶였다. 온라인 기사는 시차를 두고 축약해 중앙일보 지면에 소개됐다. 책은 온라인 연재물을 원본으로 제작돼 지면만 봤던 독자들은 더 많은 내용을 볼 수 있다.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한 기록은 넘쳐난다. 노무현 자신의 미완성 회고록부터 윤태영(참여정부 대변인), 유시민 작가, 참여정부 정책실장을 지낸 변양균·이정우의 기록이 있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해찬 전 총리도 자신의 회고록 상당 부분을 노무현과 그의 시대에 할애했다. 심지어 노무현을 수사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의 책도 있다.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은 기존 자료를 꼼꼼히 참고하는 한편, 참여정부 인사를 중심으로 100여 명을 인터뷰해 이들의 증언을 충실하게 남겼다. ‘청와대 비서실’(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제5공 경제 비사’(전두환), ‘금고가 비었습디다’(김대중), 박근혜 회고록 등 중앙일보가 주력해온 ‘대통령 기록’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노무현의 경제관을 다른 진보 대통령과 비교한 대목이 흥미롭다. 만약 이재명 후보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에 이어 네 번째 진보 대통령이 되면 누구와 비슷할까. 문재인에 가깝고 노무현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는 게 저자들의 평가다. “이재명 정책의 트레이드마크는 현금 나눠주기”인데 “참여정부에서 ‘현금 배급’ 건의를 하는 장관이 있었다면 당장 목이 달아났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은 코스피 5000시대를 약속하지만 노무현은 “주가를 끌어올린다든지, 건설 경기를 활성화하는 방안 등은 아예 말도 못 꺼내게 했다.”

취재팀의 일원인 이장규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의 비공개 만찬 기록을 남겼다. 청와대에서 일부 신문사 편집국장들과 격의 없이 나눈 대화가 흥미롭다. 자신이 받은 정치자금 얘기(당시 검찰 수사 중)나 ‘그 시절 말단 세무공무원’이었던 형 노건평이 “어찌 모범시민이 될 수 있겠나”고 언론사 간부 앞에서 털어놓는 노무현의 소탈함이 놀랍다. 정몽준과 이회창에 대한 평가도 눈길을 끈다. 대선 관련해 노무현은 “김민석(당시 민주당 의원)이 탈당, 정몽준 쪽으로 가면서 내 지지층이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며 “김민석 아니었으면 나는 대통령 될 수 없었다”고 했다. 정몽준과의 공동정부는 애당초 생각지도 않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회창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설사 그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나라를 들어먹을 사람은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상대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곧 망할 것 같이 악다구니를 치는 지금의 대선판과는 분위기가 영 다르다.

노무현은 통합의 정치를 추구했던 ‘바보 노무현’이었고, 대국민 사과에 인색하지 않았던 ‘사과 선수’였다. 노무현은 과연 1등 대통령인가, 아니면 시대가 만들어낸 거대한 착시인가. 저자들의 질문인데 답은 독자의 몫이다. 책 에필로그의 제목처럼, 현재의 ‘뻔뻔한 정치판’이 끊임없이 노무현을 부활하게 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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