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기 미 조지아대 명예교수 페이스북 캡처]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1960년대까지만 해도 기차를 타면 나무 침목 위에 짧은 레일 여러 개를 이어 붙인 탓에 '덜커덩 덜커덩' 소리가 났다. 콘크리트 침목과 장대(長大)레일을 도입해 이 소리를 없앤 권기안(權奇顔) 전 서울지방철도청장이 지난 17일 세상을 떠났다고 코레일 퇴직자 모임인 철우회 등이 27일 전했다. 향년 92세.
1933년 충북 청원에서 태어난 고인은 교통고 토목과,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뒤 1957년 교통부에 들어갔다. 1963년 철도청 분리 후 설계사무소장, 철도건설국장, 대전지방철도청장, 서울지방철도청장을 역임한 뒤 1983년 퇴직했다. 이후 궤도공영 사장, 강원산업 상임고문, 서영기술단·삼성기술 고문으로 일했다.
고인의 주된 업적은 콘크리트 침목 개발, 보선(선로 보수)작업 기계화 착수, 장대레일 도입 본격화 등이다.
이중 콘크리트 침목은 1962년 교통부 보선과 계획계 조사주임일 때 정부 방침에 따라 실행 계획을 만들고 관리했다. 회고록 '철도와의 한평생'에서 "1958년부터 중앙산업이 독일 기술을 도입해서 만든 PS 콘크리트 침목을 시험 부설하고 있었으므로 비교적 자신 있게 (실행) 계획을 세웠다"고 적었다. 콘크리트 침목 생산은 한국 콘크리트 제품 공업의 효시가 됐다.
보선과 특수계장 때는 장대레일 필요성에 관한 책을 써서 돌린 끝에 관련 예산을 확보한 뒤 1967년 시흥-안양 사이 1천200m 구간에 장대레일을 도입했다. 이후 장대레일이 퍼지면서 레일 이음매가 없어진 덕분에 철도 고속화가 가능해졌다. 고인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앞으로 레일이 장대화되면 열차가 달릴 때 '달그락 달그락' 하는 낭만적인 소리는 사라지지만 선로 강도가 높아지고 열차의 고속화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1968년 보선과 계획계장 때는 '보선기계화에 대한 연구'라는 책을 발간해가며 예산 확보를 설득한 끝에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철도차관 중 100만 달러로 보선장비를 구입, 기계화에 착수했다. 1973년 보선과장 시절에는 철도 관련 각종 종이 도면을 마이크로필름에 담았다.
배경엔 고속철도를 향한 집념이 있었다. 고속철도라는 게 있다는 걸 국내에 처음 소개한 것도 고인이었다. 1963년 일본국철 초청으로 일본 도쿄-오사카 사이에서 시험 운행된 신칸센에 탑승한 뒤 정부에 탑승 보고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정부가 발간한 '한국고속철도 20년사'는 이 보고서에 대해 "이 신칸센 경험이 우리에게 고속철도 기술을 소개한 계기"라며 "당시는 우리나라 최초 고속도로인 경인고속도로(1969년 개통)도 착공 전이었으므로 고속철도는 훗날을 위한 검토과제로 남겨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평했다.
1970년대 말 철도청 설계사무소장 시절 영등포-수원 전철 복복선이 논의될 때는 경부고속철도 건설의 계기를 만들려는 욕심에 구로 부근에서 갈라져 안양 뒷산을 넘어 수원역까지 연결되는 대안 노선을 제안했지만 무산됐다.
1983년 이임사에서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가 되려면 서울-부산간 2시간, 서울-목포간 1시간30분, 서울-강릉간 1시간의 고속철도를 건설해야 한다"며 "나는 이제 물러나지만,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책임이 여러분의 어깨에 달려있다. 언제, 어디서, 어떠한 형태로든 뒤에서 돕겠다"는 말을 남겼다.
퇴직 후인 1994년 이카리 요시로가 지은 책 '고속철도로 가는 길 : 일본 신간센의 경험'을 번역 출판했다.
'한국고속철도 20년사' 집필 책임자인 이용상 우송대 철도경영학과 교수는 "1960년대 선로 보수의 근대화 방안으로 보선 작업의 기계화를 처음 도입했고, 장대레일의 도입, PC(콘크리트) 침목의 도입 등 철도의 근대화에 크게 기여한 분"이라고 말했다.
[코레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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