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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노동자, 나는 '가짜 사장님']
<하> 방송계 프리랜서
고 오요안나 사건, 프리랜서 문제에 뿌리
정규직보다 프리랜서가 더 많은 방송사
MBC 프리랜서 71%가 '근로자'로 판명
직원처럼 지시받으며 일하고 얽매이지만
수당·주52시간·최저임금 등 적용 못 받아
"방송 2·3개 맡아도 월 200만 원 못 쥐어"
'직장 내 괴롭힘' 끝에 지난해 9월 15일 사망한 MBC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씨의 어머니 장연미씨가 19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규탄'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 오열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직장 내 괴롭힘' 끝에 지난해 9월 15일 사망한 MBC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씨의 어머니 장연미씨가 19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규탄'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 오열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감독 결과 보고 기절했어요. MBC는 딸을 공채로 뽑아놓고 일은 프리(랜서)로 부려먹었습니다. 근로자가 아니라 '사장'인데 선후배를 따지고, 잘했네 못했네 따지나요. 국장이 컨펌(확인)하고, 팀장이 컨펌하고 모든 업무를 다 터치(관여)하면서도 근로자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 어불성설 아닙니까."

'직장 내 괴롭힘' 끝에 숨진 MBC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씨의 모친 장연미씨는 지난 19일 목 놓아 울면서 이렇게 외쳤다. 고용노동부가 오씨 사건과 관련 '괴롭힘 피해는 있었지만 근로자는 아니다'라는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해서다. 오씨는 '프리랜서'였기에, MBC에 피해자·가해자 분리 등 괴롭힘 피해와 관련한 조치 의무가 없었다는 결론이었다.

오씨뿐 아니라 방송계에 넘쳐나는 '가짜 사장님'은 노동법 보호를 받지 못한다. 기상캐스터, 방송작가, AD, FD 등 직종 역시 불문한다. 일은 방송사에 종속돼 하는데, 서류상 3.3% 사업소득세를 떼는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뿐만 아니라 연차·각종 수당·주 52시간·해고 제한·최저임금 등 근로기준법상 '최저 노동권' 보호망 밖으로 쫓겨나는 것
이다.

오염된 그 단어 '프리랜서'

한국일보는 3월 14일 방송작가 3명을 만났다. 방송국에 매여 근로자처럼 일하는 '무늬만 프리랜서'를 경험한 이들은 아플 때 쉬고, 쉬운 해고 안 당하고, 인간 대접을 받고 싶다고 했다. 전부 근로기준법 보호를 받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다. 왕태석 선임기자


"한국에서 제일 오염된 단어가 '프리랜서'예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프리랜서 하면 투잡하면서 돈 많이 벌잖아' 하지만, 일이 많아서 꿈도 못 꿔요. 일하는 게 프리(free·자유)한 게 아니라 '해고'가 프리한 게 방송작가들 현실입니다."

20년 가까운 경력의 보도국 방송작가 홍아란(가명)씨는 토로했다. 보도국 방송작가는 뉴스 프로그램에 맞춰 업무시간이 쳇바퀴처럼 돌아가고, 메인PD 등 제작진에게 수시로 지시를 받으면서 여느 직장인과 비슷하게 일한다. 하지만 보통의 '정규직 직장인'이면 생애 한두 번 경험할까 말까 하는 해고를, 방송작가는 쉴 새 없이 겪는다. 아란씨는
"프로그램 폐지로 잘리고, 방송국 높은 분 마음에 안 든다고 잘리고, 출연자가 사고 쳐서 덩달아 잘리고 해고 경험은 셀 수 없다"
고 말했다.

고용부 '방송산업 비정규직 활용 실태조사 2021'에 따르면 당시 지상파 3사 시사교양국·보도국 내 프리랜서는 1,125명으로 정규직(1,078명)보다 많았다.
프리랜서 비율이 방송작가는 97.4%, 아나운서는 92.9%, PD는 85.7%에 달했다.
방송사가 '비정규직 백화점'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그래픽= 송정근 기자


물론 진짜 프리랜서도 있겠으나, 상당수가 '프리랜서의 탈을 쓴 노동자'였던 점도 함께 드러났다. 2021년 지상파 3사 내 방송작가 근로감독 결과, 조사가 이뤄진 작가 363명 중 152명(42%)의 근로자성이 인정됐다. 오씨 사건을 계기로 이뤄진 이번 MBC 근로감독에서도,
보도·시사교양국 내 프리랜서 35명에 대한 근로자성을 조사하자 25명(71%)이 근로자로 확인
됐다.

아예 정규직 뽑지 않은 직군 둬



애초 고용 형태가 기형적이다. 기자나 소수의 PD, 아나운서를 제외하면 방송작가, 기상캐스터 등 특정 직군은 정규직 채용 자체가 없다. 보도국 뉴스 캐스터로 일하는 설인혜(가명)씨는 "극소수의 아나운서를 빼면 모든 방송사가 프리랜서 채용만 한다"면서 "너희는 ○○ 방송사 소속이니 품위 유지를 하라면서, 마음에 안 든다 싶으면 바로 잘라버리는 식"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인혜씨는 '최저임금 적용도 안 되는 열악한 처우'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방송을 두세 개씩 해도 실수령액은 월 200만 원이 안 됐고, 어떤 방송사는 입사 후 한 달간 교육을 무급으로 진행
하기도 했다. 그는 "방송사 임원이 바뀔 때면 '선호하는 얼굴이 아니다'라는 황당한 이유로 전체 물갈이를 하기도 한다"며 "노예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방송국 개편 때마다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게 정상이냐"고 반문했다.

방송작가 김서윤(가명)씨는 외주 프로덕션(제작사)에서 일하다가, 메인 작가의 말 한 마디에 바로 '부당 해고'를 당한 경우다. 복직을 원했지만 3.3% 프리랜서 계약을 했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이후 부당해고 구제 신청으로 어렵게 지방노동위원회에서 '근로자'인 점이 인정됐지만, 이번에는 제작사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복병 때문에 법적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일한 경기 고양시 소재 외주제작사는 직원이 20명이 넘었지만, 조연출 2명을 빼면 전부 다 '프리랜서' 신분이었다. 즉, 서류상으로는 근로자가 2명뿐이라 '부당 해고 금지' 등 규정을 적용할 수 없는 5인 미만 사업체인 것이다. 처우도 당연히 열악했다. 서윤씨는
"최저시급으로 세후 월급 203만 원을 받았는데, 일은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8시, 9시, 10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며 "오히려 예전에 (근로자로) 일한 공공기관보다 훨씬 더 종속돼서 일했다"고 했다.

문제 생길 때만 일회성 근로감독뿐



방송계 프리랜서 문제는 벌써 십수 년도 된 문제지만,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고용부는 일회성의 특별근로감독에 나설 뿐 구조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데는 힘을 쏟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직장갑질119 대표인 윤지영 변호사는 "고용부가 제 역할을 안 하니 현재는 개별 노동자가 소송으로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서
"근로자성 입증 책임을 노동자에게 지우는 게 아니라 근로자성 부인에 대한 입증 책임을 회사에 지울 필요가 있다"
고 제언했다. 또 윤석열 정부에서 사라진 '비정규직 처우개선' 내용을 방송통신위원회 지상파 재허가 조건에 다시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방송 비정규직·프리랜서 단체인 엔딩크레딧의 진재연 집행위원장은 "직장 내 괴롭힘 조항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뿐 아니라 프리랜서 등을 포괄할 수 있도록 개정돼야 하며, 근로자의 개념 자체도 더 확장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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