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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외국에 팔아 저렇게 높은 빌딩 지었구나"
해외 입양인들 한국서 눈물…배진시 몽테뉴입양연대 대표 등 3인 인터뷰


편집자 주
= 배진시 몽테뉴해외입양연대 대표와 같은 단체 이승훈 사무국장, 권희정 미혼모아카이빙과권익옹호연구소장의 공동 인터뷰 기사는 다섯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이번이 네 번째 기사로 주로 해외 입양아동들이 한국의 친생부모를 찾는 사연 등을 다뤘습니다. 이전에 송고된 세 건의 기사는 이번 기사의 아랫부분에 요약해 수록했습니다.

입양인 이은주 씨의 프랑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학급사진
[본인 제공]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나는 삼촌 등과 광주 또는 그 근처에 살고 있었다. 그러다 6살 때인 1974년 12월, 서울의 할머니 집에 며칠 놀러 갔다. 그런데 삼촌(불명확)이 올라와서는 나에게 밥을 사주고, 종로의 영화관에 데려갔다. 영화관의 상점에서 사탕도 사줬다. 그러고는 화장실에 다녀올 테니 기다리라고 하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화장실 문을 하나하나 모두 열어봤지만, 삼촌은 없었다. 나는 사탕을 샀던 가게에 가서 우리 삼촌 못봤느냐고 물었고, 가게 주인은 경찰에 연락했다.

나는 파출소, 아동보호소, 입양기관을 거쳐 프랑스로 입양됐다. 나는 갑자기 외모, 언어, 냄새 등 모든 것이 다른 곳에 왔지만,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착하게 살아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다시 버려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어도 6개월 만에 배웠는데,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성인이 돼서 한국을 방문했는데, 여러 기록을 찾아봤더니 나의 원래 이름은 김은주가 아닌 이은주였다. 입양기관 등을 거치면서 김은주로 바뀐 것이다. 한국은 나에게 묻지도 않고는 나의 이름과 국적을 바꿨다. 나는 6살 당시 살던 곳, 가족들의 이름을 말할 수 있었는데 그런 내용은 기록에 전혀 없다. 한국이 이런 식으로 처리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이는 프랑스 입양인 이은주 씨가 해외 입양인 증언 유튜브 채널 '몽샘책방'(대표 배진시) 등을 통해 증언한 내용이다,

배진시 몽테뉴해외입양연대(MOAA) 대표, 같은 단체 이승훈 사무국장, 권희정 미혼모아카이빙과권익옹호연구소 소장은 3월 12일부터 5차례에 걸쳐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이들은 "입양기관, 보육원 등에 의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수사를 해야 한다"면서 "입양인에 대해서는 부모 찾기를 도와주는 등의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또 "해외 입양인들은 외국에서 차별 등으로 인해 힘든 성장기를 보냈는데, 어른이 돼서 한국에 와서 보니 이렇게 잘사는 나라가 왜 자기들을 해외로 보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해외 입양 과정 인권침해 조사하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해외 입양인과 국내외 단체 대표들이 2025년 4월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황광모 기자 촬영]


<다음 아래 내용은 3인 공동 인터뷰 4차 기사 질문-답변>

※ 인터뷰이= 배진시 몽테뉴해외입양연대 대표, 같은 단체 이승훈 사무국장, 권희정 미혼모아카이빙과권익옹호연구소장

-- 국내 보육원에서 아이들이 자라는 것보다는 국제 입양이 낫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권 소장) 우리나라는 입양을 아동복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입양으로 헤어지는 원가족과 그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잘못된 믿음이다. 아동의 진정한 권리를 위해서는 아동의 원가족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취약한 임산부를 돕지 않은 채 그 아기만 입양 보내겠다는 것은 입양과 시설 중심의 복지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 시스템은 입양기관이 계속 이익을 얻고, 보건복지부는 원가족을 방치하는 것이다.

-- 1980년대 전후에 한국 보육원에 있었으면 성폭력, 구타 등을 당했을 것이고, 대학 진학도 불가능했기에 해외 입양이 더 나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 (권 소장) 해외로 입양 가서 성공적이었던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한다. 보육원 문제가 입양 문제를 상쇄하지 않는다. 이 두 분야는 해결해야 하고, 개선해야 할 문제를 따로따로 가진 별개의 영역이다. 1970년 이후에는 아기들이 많이 입양 갔지만 그전에는 4세, 5세, 6세의 아동이 많이 갔다. 이 정도 나이의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의 이름, 살던 동네의 모습, 경우에 따라서는 주소도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부모를 찾아주지 않고 입양 보낸 사례들이 꽤 있었다. 일부 입양인이 성공했다고 해서 이런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관행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리고 입양 가서 성공적이었던 사람은 일부분일 뿐이다. 한국 출신 미국 입양인 중에서 시민권도 얻지 못하고 불법 체류자가 된 사람이 적어도 2만명 또는 그 이상이 된다고 한다.

▲ (이 국장) 해외 입양이 더 나은지, 국내 보육시설에 남아 있는 게 더 좋은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다만, 우리는 해외 입양과정의 문제점을 고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해외 입양이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다른 나라들은 왜 적극적으로 입양을 보내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정부는 사과뿐 아니라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 의뢰도 해야 합니다"
이승훈 사무국장(왼쪽부터), 배진시 대표, 권희정 미혼모아카이빙과권익옹호연구소 소장이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진성철 기자 촬영]


-- 입양인들은 "부모님이 미치도록 그립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부모를 찾는 심정은 왜 그렇게 강렬한가.

▲ (권 소장) 자기 부모와 출생 정보를 모른다는 것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내 역사의 일부가 잘려 나가고 지워진 것이다. 거기에서 오는 답답함, 좌절감이 매우 크다.

▲ (이 국장) 내가 만난 입양인들은 부모님이 자기를 버린 것은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고 그걸 알아보려는 경향도 있었다.

-- 입양인들이 한국에 오면 입양기관 빌딩을 보고 운다고 하는데.

▲ (권 소장) 입양인들은 한국에 오면 놀란다.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왜 자기들을 외국에 팔았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입양기관의 높은 빌딩을 보고는 또 한 번 충격을 받는다. "나를 팔아서 저렇게 높은 빌딩을 지었구나"라고 하면서 운다고 한다.

프랑스 입양인 이은주 씨에 대한 경찰서 기록
1974년 12월 2일 서울 종로3가 파출소가 아이를 접수했고, 아이는 옷 보따리를 갖고 있었다고 적혀 있다. 아이의 이름은 이은주로 돼 있다.
[본인 제공]


-- 입양 서류가 조작됐다는 사례가 있다면.

▲ (이 국장) 프랑스 입양인 이은주 씨가 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한국에 와서 부모 찾기에 나섰다. 홀트아동복지회에 와서 문의했더니 당시 입양 기록이 있었다. 거기에는 1967년생 김은주로 돼 있었다. 그런데 경찰서와 적십자사 산하 센터 기록에는 이은주로 돼 있다. 원래 이름이 이은주인데 서울유실아동보호소, 언더우드 소녀의 집과 홀트아동복지회 등을 거치면서 김은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 성이 왜 바뀌었을까.

▲ (이 국장) 홀트아동복지회에 문의했으나 알 수 없다고 했다. 성만 바뀌었다는 점에서 단순 실수라고 보기 어렵다고 나는 판단한다. 서류 조작으로 보인다. 이렇게 이름이 바뀌면 입양인은 부모 찾는 게 매우 어려워진다.

홀트아동복지회의 이은주 씨 입양기록
이은주가 김은주로 바뀌어 있다
[몽테뉴 해외입양연대 제공]


-- 이은주 씨 고향은 어디인가.

▲ (이 국장) 그가 최근 해외입양인 증언 유튜브 채널 '몽샘책방'에서 증언한 내용이 있다. 그는 광주 또는 그 도시 근처에서 삼촌 등과 살다 서울의 할머니 집에 잠시 놀러 왔다고 한다. 그러고는 서울의 영화관에 버려졌고, 종로3가 파출소, 경찰서, 아동보호소, 입양기관을 거쳐 프랑스로 입양 갔다.

-- 영화관에 버려졌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 (배 대표) 삼촌으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종로3가의 영화관에 갔다고 한다. 삼촌이 영화관의 가게에서 사탕도 사줬다고 한다. 그런데 삼촌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올 테니 기다리라고 하고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는 화장실에 가서 모든 문을 열어봤지만, 삼촌은 없었다고 했다. 아이는 사탕을 샀던 가게에 가서 우리 삼촌을 봤느냐고 물었고, 가게 주인은 경찰에 연락했다. 이은주 씨는 당시 삼촌이 자신을 버리고 간 것으로 추정한다.

-- 경찰 기록에는 아이가 옷 보따리를 갖고 있었다고 돼 있는데.

▲ (배 대표) 그게 맞다면 삼촌이 아이를 버릴 작정으로 영화관에 데려온 것으로 볼 수 있다.

20대 초반 시절 이은주 씨
[본인 제공]


---그의 친부모님은 어떤 분인가.

▲ (이 국장) 엄마가 돌아가셨거나 이혼한 듯하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본인을 삼촌 등에게 맡기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했다. 아버지가 다른 여성과 함께 자신을 보러 오곤 했다고 한다.

-- 프랑스에서의 삶은 어떠했다고 하나.

▲ (이 국장) 그는 증언에서 어느 날 갑자기 외모, 언어, 음식, 냄새 등 모든 것이 다른 곳으로 왔는데, 또다시 버려지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프랑스어를 6개월 만에 배웠는데, 이 또한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의 과거를 갑자기 지우는 것은 폭력이라고 했다.

벨기에로 입양 간 구상필 씨의 입양 당시 모습
[몽테뉴해외입양연대 제공]


-- 부모를 애타게 찾는 다른 입양인의 사연이 있다면.

▲ (배 대표) 벨기에 입양인 구상필 씨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1967년생인데, 5살 때 입양 갔다. 비행기 안의 장면을 아직도 기억한다고 한다. 본인 외에 아이 4명 정도가 더 있었고, 그 밑에는 바구니가 있었는데, 아기들이 누워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 벨기에 생활은 어떠했다고 하나.

▲ (배 대표) 부잣집으로 입양됐고, 양부모의 사랑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 슈퍼마켓의 매니저로 일하다 다리에 관절염이 와서 지금은 쉬고 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싸움을 많이 했다고 한다. 친구들이 '신떡'이라고 놀리면 움츠러들지 않고 주먹질했다고 한다. '신떡'은 중국인을 비하하는 욕설이다.

-- 한국의 부모를 찾기 위한 그의 노력은 어떠했나.

▲ (배 대표) 그는 아동권리보장원(NCRC)을 방문해서 본인의 출생지가 어디인지 물었다. 부산 금정구라고 해서 그 서류를 보여달라고 해서 봤더니 부산이란 단어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료를 숨기지 말고 모두 보여달라고 요청했지만, 자료 조회는 1년에 한 번씩만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 1년에 한 번이란 것은 무슨 이야기인가.

▲ (이 국장) 아동권리보장원 내부규정인 듯하다. 워낙 많은 입양인이 찾아오는데, 일할 사람은 별로 없으니 그런 규정을 둔 듯하다.

벨기에 입양인 구상필 씨 현재의 모습
[몽테뉴해외입양연대 제공]


-- 구상필 씨의 부모 찾기는 거기서 멈췄나.

▲ (배 대표) 아니다. 부산 금정구라는 말을 들었으니 금정구 내 구씨 마을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그리고 주민센터와 성당, 교회 등의 게시판에 사람을 찾는다는 광고문을 붙였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A4용지 크기의 작은 전단지를 나눠줬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들에게 불어로 자신의 사연을 매번 이야기했다. 한국어도, 영어도 못 하니 불어로 말해야 했다. 나는 옆에서 통역했다. 비슷한 이야기를 100번 이상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 전단지를 뿌려서 부모를 찾는 것은 힘든 일인 듯하다.

▲ (배 대표) 힘들지만 구 씨는 이런 과정을 통해 마음이 치유되는 듯했다. 나름대로 한풀이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우울증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 경찰이 마음만 먹으면 컴퓨터 조회 등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 (이 국장) 그래서 경찰서에 찾아간 적이 있다. 무연고 입양인에게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 무연고 입양인은 어떤 사람을 말하나.

▲ (이 국장) 부모, 친척 등 가족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양 간 사람을 말한다. 해외 입양인의 70%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입양인은 현재까지도 가족 확인이 어렵다.

"저를 찾고 계실지도 모를 부모님을 찾고 있습니다"
[배진시 몽테유해외입양연대 대표 제공]


-- 벨기에 입양인 이상진 씨도 애타게 부모를 찾고 있다고 했는데, 그는 어떤 사람인가.

▲ (배 대표) 그는 1974년에 입양기관인 한국사회복지회를 통해 벨기에로 입양 간 사람이다. 1971년 6월 1일에 태어났으니 당시 만 3세였다. 그의 양부모가 이혼해서 본인은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 1971년 6월 1일 태어난 것을 어떻게 알았나.

▲ (배 대표) 입양기록에 그렇게 돼 있다고 한다. 다른 양부모들은 대체로 입양기록을 주지 않는데, 자기 양부모는 줬다고 한다. 양부모는 자녀가 과거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 너그러운 분들이었다고 한다.

-- 그는 학력도 높다고 하던데.

▲ (배 대표) 한국의 카이스트(KIST)에 해당하는 벨기에의 유명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다. 그는 벨기에에서 컴퓨터 관련 일을 해서 돈도 어느 정도 벌었다고 한다. 입양 자체는 슬펐지만, 그것이 자신한테 불행의 원인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벨기에 입양인 이상진 씨의 젊은 시절 모습
[몽테뉴해외입양연대 제공]


-- 이상진 씨는 부모님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 (배 대표) 그는 남원의 용성초등학교 앞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기록에 그렇게 나와 있다. 그래서 남원에 내려가 사람들에게 탐문했더니 엄마가 노래하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 그는 입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배 대표) 본인은 어린 시절에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모든 입양인의 삶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불행의 원인을 입양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다만 국제 입양보다는 국내 입양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국제 입양인은 인종 차별로 많은 고통을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외 입양인은 성인이 돼서 일자리와 집을 구할 때도 차별을 받는다고 했다. K-팝이 알려지기 전에는 여자친구를 사귀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 일자리와 집을 구할 때 차별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인가.

▲ (배 대표) 어떤 집 주인은 자신에게 임대를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데 똑같은 조건으로 어떤 백인이 와서 임대를 요청하자 수락했다고 한다. 벨기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도 똑같은 조건이면 백인을 뽑는다고 한다.

-- 그는 국제 입양을 '아동 매매'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 (배 대표) 돈 때문에 아이들이 납치된 점, 유럽에 도착했을 때 인종차별을 당한 점, 많은 아동이 학대당하고 무시당한 점, 입양인들의 자살이 많이 일어난 점, 입양인은 마음의 장애를 안고 산다는 점,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2008년 8월 몰리 홀트 여사의 모습
홀트아동복지회의 몰리 홀트 이사장은 2008년 8월8일 당시 일각에서 제기된 '해외입양 중단' 주장에 대해 "아직도 적잖은 신생아들이 버림을 받고 보육원에서 자라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시기상조'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사진]


-- 과거에 미아들이 해외로 입양 간 사례가 많았다고 하던데.

▲ (권 소장) 입양인마다 케이스가 다르다. 미아가 발생하면 경찰서, 임시보호소, 보육원으로 갔다가 일부는 입양기관을 통해 해외로 가게 된다. 입양 전에 일정 기간 공고를 해서 부모를 찾아줘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안 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1982년 서울 시립아동상담소에 미아 종합신고센터가 설치됐는데, 이 센터의 일은 그날그날 발생한 미아의 명단과 실종신고가 들어온 아동과 대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기능은 마비됐고,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러 기관을 거치는 가운데 아동 관련 기록이 조작되는 일도 있었다.

-- 입양기관들은 아이를 확보하기 위해 사실상 영업행위를 했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인가.

▲ (권 소장) 과거에는 4대 해외 입양기관이 연간 30억∼60억원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입양기관들은 병의원, 조산소 등을 다니면서 영업까지 했다고 한다. 신생아 1명당 7만∼9만원의 돈을 병원에 줬다고 한다.

-- 이런 내용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 (권 소장)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이 아기를 해외에 판다고 외국 언론이 비판하니 한국 정부가 감사에 들어갔다. 위의 내용은 그 감사 결과다. 입양기관은 고아원을 비롯한 사회복지시설에 매년 1억∼2억원을 주고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시켰다고 보도됐다.

-- 과거의 입양 문제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 (권 소장) 이미 여러 차례 말했지만,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가 필요하다.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인터뷰 4차 기사 끝)

건강할 때의 장성탄 씨와 부인 로리안 시몬 씨
[부인 제공]


<인터뷰 1차 기사 요약>

[삶] "국가가 보낸 입양아 죽어가는데…국가 수수방관, 말이 되나요"(2025년 3월17일 송고)

마티유 성탄 푸코(38·한국이름 장성탄)씨는 1986년 12월 한국 익산시(당시 이리시)에서 태어났고. 4개월 만에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프랑스로 입양됐다. 장씨는 잠 못 자는 질병을 앓고 있다.

부인 로리안 시몬 씨는 이 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효율적 치료를 위해서는 남편 친부모의 유전자 검사 결과가 필요하다고 하소연한다. 그렇지만 한국의 아동권리보장원은 입양특례법상 친부모의 동의 없이는 인적 정보를 줄 수 없다고 했다. 인적정보는 전화번호, 주소지 등을 말한다.

국가가 입양 보냈는데, 그 아이가 성장해서 죽어가고 있다. 국가가 이걸 방치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좀 더 적극적으로 입양인의 입장에서 법률을 해석해야 한다.

서양에서는 부모의 비밀보다는 입양인의 인권을 중시하는 쪽으로 법률이 바뀌고 있다. 1975년 영국은 입양아가 18세가 되면 자기 출생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아동법에 명시했다.

미국이나 캐나다는 주마다 다른데, 입양아가 원하면 친생부모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곳이 더 많아졌다. 유엔(UN)도 친생부모의 삶보다는 아동의 알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천명하고 있다. 한국도 입양특례 법령을 비롯한 관련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인터뷰 2차 기사 요약>

[삶] "서양 양아빠, 한국자매 6년간 성폭행…일부러 뚱뚱해진 소녀"(2025년 3월31일 송고)

해외로 입양 간 아동은 정서적 학대, 신체적 학대를 겪는 경우가 있다. 양부모에 의해 성폭력을 당하는 사례도 있다.

한국인 3자매가 있었다. 중산층의 유럽 가정으로 입양을 갔다. 첫째 아이가 13살이 되자 양아빠는 성폭행을 시작했다. 둘째 아이가 성장해서 그 나이가 되자 양아빠는 둘째도 성폭행했다. 둘째 아이는 "내가 못생겨지면 아빠가 덜 건드릴 것"이라면서 매일 초콜릿 크림 1∼2통씩 먹었다.

양아빠는 그 지역에서 신망 있는 전문직 종사자였고, 동양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입양해 잘 키운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는 집안 행사 때 자기가 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여러 사람 앞에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어떤 아이는 미국에 입양 가자마자 오줌을 쌌다고 한다. 적응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목사였던 양아빠는 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것은 훈육이 덜 됐기 때문이라면서 몽둥이로 마구 때렸다고 한다.

<인터뷰 3차 기사 요약>

[삶] "큰길 양편에 서서 얼굴만 보자 하네요, 친엄마가"…입양인 눈물(2025년 5월12일 송고)

프랑스로 입양 가서 그곳에서 성장한 40대 딸은 친엄마가 보고 싶었다. 딸은 입양기관을 통해 간신히 엄마를 찾아냈다. 딸은 2005년 입양기관 사무실에서 15분 정도 친엄마를 만났다. 너무 아쉬웠기에 다시 보고 싶었던 딸은 2010년 친엄마한테 연락했다.

그런데 친엄마는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딸이 서울 동대문의 큰 도로 건너편에 서 있으면 자기는 도로의 반대편에서 얼굴을 보고 가겠다고 했다.

입양인의 비극에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입양기관에 허가를 내준 주체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입양기관에 대한 관리와 감독 책임도 갖고 있지만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의 아기와 아동을 해외로 보내는 것에 대한 허가도 내줬다.

장관급 위원장을 두고 있는 독립조사기구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최근에 해외 입양과 관련해 정부가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홀트아동복지회를 비롯한 4대 입양기관의 불법행위가 있다면 당연히 이에 대한 수사를 의뢰해야 한다. 해외입양인에 대한 피해보상, 부모 찾기 지원 등도 절실하다.



<인터뷰이 소개>

인터뷰에 참여한 배진시 몽테뉴해외입양연대(MOAA) 대표는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철학 박사학위를 위해 2005년 프랑스에 유학하러 갔는데, 그곳의 대학교 등에서 한글을 가르치다 많은 한국 출신 입양인을 만나게 됐다. 귀국 후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입양인들을 돕기 시작했다. 부모를 찾는 해외 입양인들을 위해 지방 곳곳을 함께 다니며 통역을 해주기도 했다. 작년 1월에는 몽테뉴해와입양연대(MOAA)를 창립해 입양인에 대한 도움을 확대하고 있다. 그는 몽테뉴인문학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집필과 강연도 하고 있다.

이승훈 MOAA 사무국장은 약대를 졸업한 후에 한약국을 운영하는 시민이다. 입양인들이 한국에 오면 직접 승합차를 운전해 이동시켜주고, 특정 지역 방문과 행정기관 서류 처리 등을 돕고 있다.

권희정 미혼모아카이빙과권익옹호연구소 소장은 2008년부터 5년간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초대 사무국장을 지냈다. 그는 미혼모 문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작년에 현재의 연구소를 창립했다. 미혼모 문제에 대해 18년간 연구하고 글을 쓰다 보니 입양 문제에 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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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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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76 “엔비디아, 中 시장 겨냥 저가형 블랙웰 출시 예정” 랭크뉴스 2025.05.25
47775 [속보]김문수·이준석, 단일화 '1차 시한' 넘겨 랭크뉴스 2025.05.25
47774 [속보] 김문수 “대통령의 당내선거·공천 등 당무 개입 금지, 당헌 명시” 랭크뉴스 2025.05.25
47773 사법농단 대책 미루다···이재명 판결 후 개혁안 봇물, 민주당의 '지연된 사법개혁' 랭크뉴스 2025.05.25
47772 대선 후보들 해법 있나…치킨집·식당 이어 카페도 첫 감소 자영업의 '비명' 랭크뉴스 2025.05.25
47771 [속보] 김문수 "대통령의 당내선거·공천 등 당무개입 금지, 당헌 명시" 랭크뉴스 2025.05.25
47770 60초 싸움 승자는…이재명·김문수, 표심 흔들 TV 광고전 본격화 랭크뉴스 2025.05.25
47769 대법 “‘주민자치회’ 위원도 선거법 적용… 불법 경선 운동하면 처벌” 랭크뉴스 2025.05.25
47768 에겐남? 테토녀?... 요즘 MZ는 MBTI 대신 '이것' 본다 랭크뉴스 2025.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