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유품 헤더
의뢰인은 경매 낙찰자였다.
소름 끼치는 사연이었다.

주변에서 종종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는 걸 본다.
채무나 체납 때문에 집을 압류당하고 결국엔 소유권까지 넘기는 경우다.

의뢰인은 32평 아파트를 낙찰 받게 된 사람이었다.
원래 집주인은 84년생.
그 정도 입지에 그 정도 평형치고는 젊은 사람이었다.

낙찰자는 소위 ‘경매꾼’이라고 하는 전문가가 아니었다.
자신이 직접 살기 위해 집을 마련하다가 경매가 싸다는 소리를 듣고 물건을 구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권리분석’이니 ‘점유’니 하는 골치아픈 문제와 해결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시세보다 싼 값에 집을 마련했다고만 생각한 것이다.
이사 전에 인테리어를 하러 집에 갔더니 이전 집주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얼굴을 마주보고 상황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젊은 남성은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전 집주인이 대화 자체에 응하지 않자 의뢰인은 현관문에 메모를 붙이기 시작했다.
낙찰자가 취할 수 있는 법적인 조치가 있지만 그냥 ‘상식적으로’ 해결하고 싶었다고 한다.

2, 3일에 한번 방문해 메모지로 퇴거를 호소한 것이다.
갈 때마다 메모지는 사라져 있었다.
젊은 남성이 보긴 봤다는 이야기다.

다만 그것이 전부.
응답도 없고 메모지만 떼어갈 뿐이었다.
두 달여에 걸친 지루한 메모지 호소전.

이지우 디자이너
그러다 어느날부터인가 메모지가 현관에 그대로 붙어있었다.
그제서야 불현듯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집을 비웠으면 뭐라도, 욕이라도 한 줄 남겼을 텐데….

의뢰인은 그때부터 온갖 안 좋은 상상이 가지를 치며 공포에 침식당하기 시작했다.

‘그가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의 집을 빼앗았기 때문에 그가 죽었다.
나 때문에 죽은 것이다…

내가 사람을 죽였다.

의뢰인의 잘못이 아니었다.
집을 빼앗은 것도 아니다.
원래 집주인이 여기 저기 빚을 지고 안 갚아 타인의 재산을 빼앗은 것이고, 의뢰인은 그의 빚을 대신 갚아주는 대가로 그 집을 얻은 것이다.

그랬을 뿐이다…라고,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싶었지만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단다.
가족의 신고가 있거나 특이사항이 있어야만 집 내부를 수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 소유의 집인데도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렇지만 분명 그는 죽었을 거란 죄책감에 얼굴도 모르는 젊은 남성이 밤마다 꿈에 나타났다.
악몽이 겁나 잠도 못 이루고, 심신이 피폐해져 밥도 안 넘어갔다.
혹시나 싶어 다시 집을 찾아가면 나만 아는 죽음의 현장을 들여다보는 범죄자가 된 기분까지 들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패닉의 시간이 2주나 지났다.
그제서야 봉쇄된 문이 열렸다.
이웃의 악취 신고였다.
경찰이 문을 열기로 했다.

그제서야 집주인인 자신에게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때 처음 들어간 ‘내 집’은 지옥 같았다.

(계속)

20대에 32평 아파트 구매, 수십 번의 해외여행.
유복했던 남자는 왜 40세에 스스로 삶을 끝냈을까. 김새별 씨는 5톤 쓰레기 더미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를 파멸로 이끈 충격적인 '로또'의 정체,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31928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또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미친개' 아들에 질려버렸다…엄마가 죽고 5년뒤 생긴 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20739

아빤 6년 만에 고독사했다, 엄마 이혼시킨 두 딸의 고백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5891

“내 삶 찾고싶다” 이혼 1년뒤, 전남편 울린 그녀의 약봉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59207

한여름, 어느 의사의 고독사…친형은 외제차 타고 나타났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28749

남친과 절친의 ‘잘못된 만남’…바퀴벌레 속 그녀의 일기장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4338

중앙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52093 6월 3일 대선날 택배기사들도 쉰다…쿠팡 로켓배송은? 랭크뉴스 2025.05.24
52092 [샷!] "택배노동자도 투표하고 싶다" 랭크뉴스 2025.05.24
52091 "합치면 이길지도?..." 국힘 공동정부 제안에 이준석은 버티기... 몸값 높이려 '밀당' 신경전 랭크뉴스 2025.05.24
52090 버스정류장서 13살 여아 허벅지 만진 70대, 징역 2년에 집유 4년 랭크뉴스 2025.05.24
52089 USTR, 외국의 약값 억제 사례 조사 착수…韓도 대상 포함 가능성 랭크뉴스 2025.05.24
52088 金 "법카로 일제 샴푸, 유죄받아"…李 "무작위 조작 기소" 랭크뉴스 2025.05.24
52087 '진짜 대한민국' 이재명, '정정당당' 김문수…슬로건 탄생의 비화 [대선 인사이드] 랭크뉴스 2025.05.24
52086 "지하철 요금 200만 원 나왔다?"…청년인 척하던 '50대' 남성의 최후 랭크뉴스 2025.05.24
52085 경매낙찰 아파트 시신 나왔다…해외여행 다니던 84년생 비극 랭크뉴스 2025.05.24
52084 경찰, 윤 비화폰 서버 기록 확보…판도라 상자 열리나? 랭크뉴스 2025.05.24
52083 슬기로운 캠핑, 이것만은 조심! 랭크뉴스 2025.05.24
52082 [단독] 경찰, '비화폰 서버' 이어 '尹 업무폰'도 확보… '판도라 상자' 열리나 랭크뉴스 2025.05.24
52081 내 귀가 왕이 될 귀인가…귀의 귀함에 대하여 랭크뉴스 2025.05.24
52080 치킨값 다시 오르나…브라질산 닭고기 일부 수입 허용[Pick코노미] 랭크뉴스 2025.05.24
52079 대서양 무역전쟁 먹구름…트럼프, 내달부터 EU에 50% 관세 위협(종합2보) 랭크뉴스 2025.05.24
52078 [대선 D-10] 후반 레이스 돌입…지지율 격차 축소 속 단일화 변수 주목 랭크뉴스 2025.05.24
52077 "한마리는 방에, 한마리는 부엌에…우리 집 강아지 두마리" [김성칠의 해방일기(21)] 랭크뉴스 2025.05.24
52076 “미국, 주한미군 4,500명 괌 등 다른 지역으로 이전 검토” 랭크뉴스 2025.05.24
52075 '1위 이재명' 맹추격하는 김문수, 이준석도 상승세... 보수 총결집에 대선판 '꿈틀' 랭크뉴스 2025.05.24
52074 '관세충격' 없는걸까, 한∙중∙일 4월 글로벌 수출 늘어난 이유 랭크뉴스 2025.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