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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영 코레일 기관사·홍보실 대리가 지난 15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 앞서 서울역 플랫폼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소녀는 언니를 보고 자랍니다. 여기 선배가 된 언니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이정표이자 버팀목이 되는 [여자, 언니, 선배들]의 일·커리어 이야기를 플랫이 전달합니다.

아, 내가 정말 이 일에 만족하고 미쳐있구나. 미쳐서 눈이 돌아있구나. 저는 이게 좋은 의미라고 생각해요. 뭔가 하려면 좀 미쳐야 하잖아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공식 유튜브 영상에는 “이 누나 눈이 또 돌아 있네”, “혹시 협박을 받고 있다면 당근을 흔들어 주세요” 등의 댓글이 달린다. 기관사로 입사해 홍보실에서 일하며 ‘미스 기관사’라는 활동명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강하영 대리(29)의 이야기다. 영상 속 강하영 대리는 기관사 정복을 입고 춤추고, 연기하고, 때때로 망가진다. 어딘가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일명 ‘맑은 눈의 광인(맑눈광)’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여성 기관사는 여전히 드물다. 회사 홍보를 이렇게까지 ‘내려놓고’ 할 수 있는 직원은 더 드물다. 이처럼 희귀한 교집합을 가진 강하영 대리가 풀어줄 ‘일 이야기’가 궁금했다.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지난 15일 서울 중구 코레일 서울본부에서 그와 만나 지하철 운전대를 잡은 순간부터 유튜브로 고객과 소통한 이후까지의 경험을 들었다.

그의 이력은 다소 독특하다. ‘어릴 때부터 기관사가 꿈이었겠군’ 짐작했지만 이전 직업은 간호사였다. 인기 ‘챌린지’와 ‘밈’을 잘 소화하는 걸 보니 원래도 소셜미디어를 많이 했나보다 싶었지만 평소엔 사진도 잘 찍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의외’라는 즐거움을 안고 쭉쭉 달려 나가는 그의 커리어 열차에는 ‘열정’이 실려 있었다.

뛰어들다: 새로운 일의 세계로

코레일 유튜브 갈무리


-코레일에서 그동안 거쳤던 일과 현재 맡고 계신 업무를 소개해 주세요.

“2020년 기관사로 입사해 구로승무사업소에서 1호선 기관사로 일했어요. 3년차가 지나 2023년 12월 홍보실로 왔습니다.”

-예전에 간호사로 일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전혀 다른 방향으로 커리어를 바꾼 계기가 무엇인가요?

“변화는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오는 것 같아요. 큰 계기는 아니었어요. 2019년 평소와 똑같이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러 갔는데 제 눈에 기관사가 딱 들어왔어요. ‘나는 왜 지하철을 매일 타면서도 기관사라는 직업을 생각해 본 적이 없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운전과 여행을 좋아하니 저 일이라면 간호사보다 더 맞지 않을까 싶었죠. 어느 날 문득 눈에 들어왔던 거죠. 저도 신기해요. ”

-여성 기관사(철도·전동차)는 대략 한 자릿수로 아직 많지 않은데요. 이에 관해 고민은 없었나요?

“도전이 무서웠다기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하자, 물음표에서 느낌표가 됐어요. 아담한 체형이다 보니 ‘이렇게 큰 지하철에 수천 명을 태우는 걸 내가 할 수 있을까’ ‘여성 기관사라고 차별을 받거나 승객들이 불안해하진 않을까’란 생각도 했었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오히려 승객들이 멋있다, 고생 많다고 해주세요. 현장에 오니 격려를 더 많이 받아요.”

-어릴 적 꿈도 기관사였나요?

“간호사였어요. 직업의 다양성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그는 아픈 언니를 돌보고 싶었다고 다른 강연에서 언급한 적 있다). 그런데 꿈은 계속 바뀌잖아요.”

파고들다: 세상을 굴리는 기관사

코레일 유튜브 갈무리


-3년간 기관사로 일한 경험은 어땠나요?

“처음 운전대를 잡았을 때는 무서웠어요. 승객이 탄 열차를 끌다니,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정해진 시간에 운행해야 하니까 가게 되더라고요. 승객으로 뒤에만 타다가 운전실에 탄 느낌이 신기했죠. 승객으로 탑승하면 (열차) 옆을 바라보잖아요. 기관실에서 앞을 보는 풍경이 훨씬 아름다워요. 눈이 내릴 때 앞에서 교행하는 열차가 눈을 옆으로 촥 펼치면서 오거든요. 그런 풍경에 한국이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였구나 느껴요.”

-실제로 일해보니 상상과 달랐던 것이 있나요?

“수천 명의 고객들과 몇 시 몇 분에 만난다는 약속이 돼 있거든요. 처음에는 나만 안전하게 운전하면 이 약속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관제, 전기, 시설, 역무, 차량 같은 모든 직렬이 다 같이 약속을 잘 지켰기에 고객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3년 간 일하면서 느꼈죠.”

-기관사로 일하던 당시의 보람은 무엇이었나요?

“새벽에 운행을 시작하면 출근하는 분들 수천 명이 탑승하세요. 그분들을 어디론가 모셔다드리고 열차에서 딱 내릴 때, 그때 ‘이 세상이 돌아가는 데에 내가 보탬이 됐구나. 이 많은 분을 안전하게 출근 시켜 드렸구나’ 싶었어요. ‘이분들이 오늘 한국을 책임지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 보람을 느꼈어요. 보통 하루 12시간 정도 근무했는데 그동안 아무 사고 없이 운행을 마쳤을 때 가장 뿌듯했고요.”

-간호사로 일했던 경험이 유용했던 적이 있나요?

“2021년쯤 한 승객이 쓰러지는 일이 있었어요. 저는 4년 동안 침착하게 응급처치를 하고 대처하는 법을 배웠다 보니 바로 상체를 돌리고 호흡과 맥박을 확인했어요. 열차 돌발 상황에도 침착하게 조치하는 위기 대처 능력을 많이 배웠죠.”

마주치다: 새로운 나, 미스 기관사

코레일 유튜브 ‘켄드릭 라마에 빙의된 기관사’ 갈무리


재밌는 영상이 넘치는 유튜브 세계에서 굳이 철도 공기업의 홍보 영상을 찾아볼 이유는 ‘철덕(철도 덕후)’이 아닌 이상 별로 없다. 그럼에도 강하영 대리가 출연한 영상은 수만에서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특히 ‘B급’을 표방해 짧으면서도 정보를 담고 있는 영상이 조회수가 높은 편이다. 그가 실제 기관사인 점도 메시지 전달에 한 몫 한다.

대표적으로 ‘켄드릭 라마에 빙의한 기관사’는 신차 출고를 알리려는 목적이고, ‘KTX-청룡 세계로 가!!!’는 새 열차 운행을 홍보한다. ‘미스 기관사 돈 안 내고 도망’은 코레일의 ‘섬섬옥수’(당일 열차표 소지 고객에게 무료로 손톱 관리를 제공하는 청각·지체장애인 일자리 사업) 서비스 체험이다. ‘지상 최악의 공무원’에서는 충주-판교 KTX 개통을 기념해 ‘충주맨’ 김선태씨와 협업했다. 강하영 대리는 이러한 성과의 배경에 팀워크가 있다고 강조했다.

-회사 내에서 직무를 전환하셨는데요. 어떤 계기 때문이었나요?

“3년 정도 일하다 보니 권태기가 오더라고요. 회사에 만족도가 높아서 그만두고 싶지는 않은 거예요. 어떻게 해야 더 즐겁게 다닐 수 있을 것인가 생각했고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뒤져봤어요. 그러다가 직원 크리에이터 모집 공고문을 발견했어요. 저는 SNS를 안 했거든요. 안 했던 걸 하면 재밌겠다 해서 지원했어요.”

-끼가 많아 보여서 원래 SNS 홍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줄 알았어요.

“사진도 잘 안 찍어서 한 번도 휴대폰 용량을 꽉 채워본 적이 없어요. 저도 제 영상을 보고 놀라요. (찍을 땐) 어색했는데 제가 되게 즐거워하더라고요. 저도 저를 발견한 것 같아요.”

-영상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나요?

“주 1회 정도 기획 회의를 해요. 평상시 재밌게 본 것, 인기 급상승 동영상(인급동)에 뜬 것 중에 해보면 좋겠다 하는 것들을 공유하고요. 코레일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죠. 기획, 촬영, 편집을 저희 팀이 다 해요. 인급동을 웬만하면 다 보려고 해요. 많이 보는 영상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으니까요. 그래야 유행도 따라갈 수 있고요. ”

강하영 코레일 기관사·홍보실 대리가 지난 15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 앞서 서울역 플랫폼에서 ‘켄드릭 라마에 빙의된 기관사’ 영상을 재현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그 과정에서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요.

“아이디어만으론 안 되고 회사가 홍보해야 하는 사업, 정보와 접목을 시켜야하니 자칫하면 재미없고 딱딱해질 수 있어요. 그렇게 되지 않게 잘 풀어나가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제일 많아요. 어떻게 해야 더 재밌을까, 내가 이걸 살려볼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이 저희 팀 4명 모두에게 있어요. 유행을 바로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메시지 전달이 필요하니까요. 주말에도 카카오톡이 불타요.”

-이러한 홍보 활동의 의의는 무엇인가요.

“고객님들이 알아야 하는 꿀정보, 기차를 이용하는 꿀팁은 무조건 홍보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맘편한 코레일’이나 ‘코레일 짐배송’ 같은 서비스가 있어요. 시청자들은 정보를 얻으려고 영상을 보진 않을 거예요. 얼마나 또 B급 영상을 만들어 왔을지 궁금해서 클릭하면 결국 정보를 알게 되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회사에 이런 좋은 사업이 있다는 것을 저도 알아가고 있고, 직접 알려줄 수 있어서 좋아요.”

-이 일을 할 때 자신만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기관사) 정복인 것 같아요. 특수한 직업이기도 하고 여성 기관사가 많지 않다 보니까 이 정복과 기관사라는 캐릭터가 매력이 큰 것 같아요. 또 제게 잘 맞는 업을 찾은 것 아닐까 싶어요. 팀장님이 저한테 ‘하영아 너는 행복 바이브가 있어서 그런 걸 잘 전달한다’고 해서 그런 쪽으로 찍는데, 제가 춤추며 우스꽝스러워지는 부분을 사람들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표정보면 ‘눈이 돌아 있다’고 하시는데 카메라 켜지면 집중을 하니까 그렇고요. 내가 이렇게 밝구나, 돌아있구나 하는 건 (이 일을) 안 했더라면 몰랐을 거예요. ‘눈이 돌아 있다’라는 댓글이 달리면 ‘아 이 영상에서도 내가 제대로 전달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망가지는 게 두렵다기보다는 저로 인해 누군가 한 번 웃었다면 그걸로 됐죠.”

빛나다: 두 개의 길, 나만의 길

강하영 코레일 기관사·홍보실 대리가 지난 15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 앞서 서울역 플랫폼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강하영 대리는 홍보실에 온 뒤로도 가끔 열차를 운전한다. 기관사로서 구간인증을 주기적으로 받아야 해당 구간을 운전할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당분간은 기관사와 홍보 담당이라는 두 선로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 그 둘을 오갈 수 있다는 점은 그만이 가진 무기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기관사를 꿈꾸는 사람, 특히 여성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요? 기관사가 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나요?

“철도안전법 시험에 통과한 후 해당 교육기관에 들어가 철도차량운전면허증을 땄어요. 코레일 체험형 인턴을 거쳐 시험을 통해 정식 입사했습니다. 너무 좋은 직업이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도전하세요.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언젠가 다시 기관사로 돌아간다면 어떤 기관사가 되고 싶은가요?

“지금 영상에서 보이는 제 모습이 우스꽝스럽거나 가벼워 보일 수 있어서 ‘이 사람을 믿고 열차를 타도 되나’ 보일 수도 있어요. 누구보다도 안전에 대해선 자신이 있기 때문에 책임감 있게, 가장 안전한 열차를 운행하는 기관사가 되고 싶습니다.”

-일과 권태기에 빠진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권태감이란 익숙함, 생활의 반복에서 오는 것 같거든요. 주변에 있던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고 일상에 살짝만 변화를 줘도 그 변화가 제 인생을 바꾸더라고요. 익숙함에서 살짝 멀어지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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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영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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