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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지난 13일 대구 중구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항상 어려운 길을 자청했다. 저는 노 (전) 대통령과 정책적인 면에선 좀 다를 수 있겠지만, 정치적 자세에 있어선 닮으려고 노력해왔다.”(5월 12일 CBS 인터뷰)

“당당하게 바른 소리 하고, 탄압받으면 탄압받는 대로 와신상담하고, 어려운 곳에 꾸준히 도전해 언젠가 뚫어내는 그런 정치, 노무현의 정신을 구현하겠다.”(13일 대구 유세)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이하 이준석)가 연일 ‘노무현’을 소환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3당 합당 반대를 자신의 ‘범 우파 빅텐트’ 거부에 빗댄다. 노 전 대통령의 부산 도전을, 자신의 서울 노원병 도전에 비유한다. ‘가장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2024년 한국갤럽 조사)으로 꼽히는 노 전 대통령의 ‘소신’ 이미지를 차용하려는 전략이다.

선거에 나선 후보는 불법행위, 허위·혐오발언이 아닌 한 무엇이든 캠페인에 활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준석의 ‘노무현 마케팅’은 어색하고 불편하다.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 되고 있다.

이준석은 “노무현의 정신을 구현”하겠다면서도 정책적 차이는 중요치 않다고 말한다. 궤변이다. 정치인은 추구하는 가치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정치를 한다. 가치에 살과 뼈를 붙여 주권자 앞에 내놓는 게 정책이다. A가 B와 정책적으로 대척점에 있다면, A가 B를 계승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준석의 ‘10대 공약’ 중 첫 번째는 ‘대통령 힘 빼고 일 잘하는 정부 만들기’다. 19개 부처를 13개 부처로 통폐합하겠다는 내용이다. 핵심은 여성가족부 폐지다. 내란으로 파면당한 전 대통령 윤석열의 공약을 다시 들고 나온 거다. 원내 과반 더불어민주당이 호응할 리 만무한데 ‘1호 공약’으로 내건 이유는 모두 짐작한다. 이준석 하면 떠오르는 ‘안티 페미니즘’이다.

노 전 대통령은 여가부에 대해 어떤 입장이었을까. 2008년 당시 대통령 당선인 이명박이 여가부 폐지를 밀어붙이자 노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연다.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부가 왜 생겼고 (노무현 정부에서) 왜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됐는지, 그 철학적 근거가 무엇인지 살펴봤나. 여성가족부에선 귀한 자식 대접을 받던 업무가 보건복지부로 가면 서자 취급 받지 않겠는가.” 이명박은 결국 여성부를 존속시킨다.

노 전 대통령은 ‘페미니스트’를 자임한 적 없다. 하지만 성평등 정책을 꾸준히 추진했다. 재임기간 중 호주제가 폐지되고 가족관계등록법이 제정됐다. 성매매처벌법이 시행되고 성인지(性認知) 예·결산 제도가 도입됐다. 헌정사상 첫 여성 법무부 장관(강금실)과 첫 여성 국무총리(한명숙)가 탄생했다.

이준석의 ‘4호 공약’은 ‘최저임금 최종 결정 권한, 지자체에 위임’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기본 최저임금을 결정하면, 각 지자체가 지역별 특성을 반영해 30% 범위 내에서 가감 결정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미국·중국·인도네시아처럼 땅덩이가 커서 지역 격차도 큰 나라에선 효과적일 수 있다. 한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다. 공약에는 ‘가감’이라 돼있지만, 임금을 올려주는 데가 많을까, 깎는 데가 많을까. 상당수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이 ‘깎인’ 비수도권에서 ‘유지되는’ 수도권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준석의 공약이 실현될 경우 수도권 집중과 지역 격차만 심화시킬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국가 균형발전과 지역분권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2002년 대선에서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헌법재판소가 이른바 ‘관습헌법’을 내세워 위헌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한국의 지도는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화 공약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이준석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이동권 시위를 두고 “비문명적 투쟁 방식” “연대가 아니라 인질극”이라 비난해왔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마지막해인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법 서명식에서 “우리는 역경을 극복한 장애인에게 찬사를 보내왔다”며 “이제는 극복해야 할 역경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2019년 이준석이 펴낸 대담집 제목은 <공정한 경쟁>이다. 그는 스스로를 ‘공정한 경쟁’의 표상으로 매김한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사다리가 있는 대한민국을 꿈꾸면서, 공부 열심히 하면 나중에 잘 살 수 있다는 걸 믿고 살아왔다. 이 서사가 여러분의 자녀가 공유할 수 있는 서사가 됐으면 좋겠다.”(CBS 인터뷰).

대선 후보 1차 TV토론 마무리발언에서도 “저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달라. 기회의 사다리를 지켜 여러분의 자녀와 손주들이 이 자리에 서는 꿈을 지켜내겠다”고 했다.

이준석은 어릴 때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며 영어를 익혔다. 중학교는 손꼽히는 ‘학군지’인 서울 목동에서 다녔다. 대학 때 아버지 친구인 유승민 의원실에서 인턴을 했다. 그는 기회의 사다리를 타고 한 걸음씩 올라간 게 아니다. ‘사다리 서사’는 상고 출신으로 판사, 변호사, 국회의원, 대통령이 된 노무현의 몫이다.

이준석은 주요 대선 후보 중 ‘비호감 1위’다. 한국경제·입소스 조사(16~17일)에서 비호감도 72%, 한국갤럽·뉴스1 조사(12~13일)에서 비호감도 67%를 각각 기록했다(이상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시민을 묶어내기보다 갈라치는 행보, 갖가지 혜택을 누려온 자신을 ‘사다리 서사’ 주인공으로 포장하는 독특한 ‘자기애’에 호감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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