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품 의류 판매상인 듀안 잭슨이 지난 4월 1일(현지시간) 뉴욕 타임스퀘어에 있는 자신의 매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적힌 중국산 모자를 판매하고 있다. AP
[주간경향] “미·중 무역 갈등이 처음 부상했던 2018년 중국의 분위기는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미국이 대규모 대중 무역 적자를 해소하겠다며 관세로 압박을 시작하자 중국 정부 내부에서도 곧바로 ‘칼을 너무 일찍 뽑았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많았죠.” 2018년 1차 미·중 무역전쟁 당시 중국 베이징에서 근무했던 김동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말이다.
“그런데 지금 보세요. 그런 분위기가 중국에 전혀 없습니다. 내부적으로 더 결속하고, 미국의 압력에 더 이상 굴복하지 않겠다는 반응이 확연하거든요. 중국이 이젠 과거 미국이 주저앉혔던 경쟁자들과 차원이 다르게 성장했기 때문이에요. 미국은 앞으로도 계속 주저앉히려고 하겠죠. 하지만 대중의 생각과 달리 중국은 쉽게 주저앉혀지지도, 주저앉혀진다고 해도 일본처럼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제2의 패권국으로 아주 오랫동안 미국과 경쟁할 겁니다.”
■“중국, 서둘러 타협 필요 없다 확신…트럼프 약한 고리도 파악 완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기 집권이 시작되면서 예상됐던 2차 미·중 패권 전쟁이 본격화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집권과 동시에 1차 미·중 갈등 당시 재미를 봤던 관세정책을 통해 다시 노골적인 대중 압박에 나섰다. 펜타닐 문제를 고리로 2월 1일 10%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시작으로 3월 추가 관세 10%, 4월 2일 상호관세 34%, 4월 9일 상호관세 84%로 인상, 10일 상호관세 125%로 인상 등 잇따른 관세 폭탄으로 무려 145%에 달하는 관세를 중국에 부과했다. 이에 맞서 중국도 맞불 관세를 125%까지 끌어올리면서 미·중 무역전쟁은 끝을 알 수 없는 치킨게임 양상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전 세계 경제를 공포로 내몰았던 두 나라의 치킨게임은 지난 5월 13일 갑작스러운 빅딜로 싱겁게 일단락된 상태다. 90일간의 유예라는 단서조항이 붙었지만, 양국이 각각 115%포인트(p)에 달하는 관세를 걷어내기로 약속하면서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를 대표로 하는 양국의 협상단이 스위스에서 얼굴을 마주한 지 불과 이틀만이었다.
본격적인 협상은 이제부터 시작이지만 시장에서는 트럼프가 먼저 한발 물러선 것이라는 데 이견이 많지 않다. 미·중 빅딜이 성사된 직후 블룸버그 통신은 ‘시진핑의 도전이 보답을 받았다(Xi’s Defiance Pays Off as Trump Meets Most China Trade Demands)’ 기사를 통해 “이 합의는 결국 베이징의 핵심 요구 사항을 거의 모두 충족했다”며 “트럼프에 맞서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기로 한 시진핑의 결정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중국 전문가 스콧 케네디도 “이번 제네바 합의는 미국의 사실상 완전한 후퇴를 의미하며, 시진핑 주석의 강경한 보복 결정이 옳았다는 점을 입증해준다”고 평가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7년 전 중국은 1기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하며 지금과 똑같은 상황에 직면했다. 2018년 3월 트럼프 행정부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광범위한 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7월에는 34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했다. 이후 중국이 보복관세 대응에 나서면서 관세 부과 규모와 세율은 계속 올라 2019년 말에는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이 25% 추가 관세의 대상에 올랐다. 그리고 중국은 타협을 선택했다.
2020년 1월 중국은 미국과의 ‘1단계 무역협상안’에 서명했다. 향후 2년간 최소 2000억달러 이상의 미국산 상품 및 서비스를 추가로 구매하고,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한편, 환율정책의 투명성을 높이고, 금융 서비스 시장을 일부 개선한다는 등의 내용이 골자였다. 미국의 조치는 112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7.5%로 낮추고, 추가 관세 부과 계획을 유예한다는 것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1단계 무역협상안’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글로벌 경기 침체를 빌미로 미국산 제품에 대한 중국의 수입은 목표치에 크게 못 미쳤고, 지적재산권 보호나 금융시장 일부 개방 등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미국의 관세 인하 또는 유예 약속도 일부만 지켜졌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실패와 함께 추가적인 합의도 이뤄지지 않아 반쪽짜리 협상으로 남겨졌다.
5월 10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미국과 중국 간 양자 회담에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허리펑 중국 부총리가 참석했다. 로이터
무엇보다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가 개선되지 않았다.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는 2017년 3750억달러에서 2020년 3070억달러로 주춤했다가 2022년 3820억달러로 되돌아갔다. 중국은 수출 둔화에 직면했고, 무역전쟁의 불확실성으로 중국을 떠나는 다국적 기업까지 늘어나면서 성장 둔화를 피할 수 없었다. 언론과 전문가들이 1차 미·중 무역전쟁을 ‘승자 없는 전쟁’으로 평가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이 ‘승자 없는 전쟁’에서 더 많은 교훈을 얻은 것은 중국이었다.
정지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 팀장은 “1차 무역전쟁 이후 중국은 미국에 양보한다고 해도 더 이상 나아질 것이 없는 게 아니냐 의심했다”면서 “트럼프 1기, 바이든, 트럼프 2기까지 지내면서 이 같은 의심은 확신이 됐고, 미국이 혹시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더라도 그것이 결국 중국과 잘 지내보자는 의미가 아니라고 최종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세와 관련해서 미국과 협상을 잘 진행할 수도 있겠지만, 기술 규제 등 중국에 대한 압박은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제는 중국도 안다”며 “앞으로 (미국 대통령으로) 누가 오더라도, 어느 정권이 오더라도 이런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피해가 있더라도 신속한 협상보다는 미국의 약한 고리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대응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국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약한 고리 파악을 끝냈다고 그는 평가했다. 정 팀장은 “중국은 (미·중 갈등이 길어질수록) 급한 것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 트럼프라고 판단 내렸다”면서 “지금 중국은 버틸 수 있도록 체질을 개선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방 압력 버텨라…내수 버팀목 위해 사회보장제도 개선도 시동
미국의 대중 압박이 지속될 것이라고 확신한 중국이 지금 가장 힘을 쏟고 있는 분야는 대규모 소비 촉진, 즉 내수를 통한 성장으로의 체질 개선이다.
중국의 내수 진작 프로젝트는 이미 10년 넘게 가동 중이다. 하지만 1차 미·중 무역전쟁을 기점으로 중국 정부의 투자·정책 지원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2020년 등장한 ‘쌍순환 전략’, 이듬해인 2021년 ‘공동부유’가 대표적으로, 두 전략 모두 가계 소득 확대와 사회보장성 서비스 강화, 소비환경 개선을 통한 내수 성장 시스템 구축에 방점이 찍혔다.
지난해 중국 상무부는 1500억위안(약 28조원)에 달하는 ‘이구환신’ 프로젝트를 내놨다. 이구환신은 낡은 것을 신제품으로 바꾼다는 의미다. 노후 제품과 설비를 신형으로 교체하도록 유도해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는 내수 부양 정책으로, 산업 설비나 장비 교체 시 대출금리를 인하하거나 친환경 신제품 구매 시 세제 혜택을 주는 형태가 기본이다.
지난해 산둥성 칭다오시에서 열린 ‘2024 전국 가전소비 페스티벌’ 행사 현장에서 소비자가 이구환신 대상 가전제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신화통신
중국은 특히 노후 내연차를 전기자동차로 교체하거나 에어컨,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신제품으로 교환하는 경우 보조금을 강화했는데, 지난해 자동차 분야에만 90억위안(약 1조7200억원), 가전제품 분야에는 40억위안(약 7600억원)이 중앙·지방정부를 통해 풀렸다.
미·중 무역갈등으로 경기 하방 위험이 추가로 높아진 올해는 이 ‘이구환신’ 재원이 더 큰 폭으로 늘어난다. 지난 3월 열린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도 ‘내수 진작’이 최우선 과제로 제시됐는데, ‘이구환신’ 지원을 위한 특별 장기채 발행 물량만 지난해의 2배 수준인 3000억위안(약 57조원)으로 책정됐다.
올해 들어서는 적용 대상도 크게 늘었는데 냉장고, 세탁기, TV, 에어컨 등 가전제품 위주에서 1월부터는 디지털제품(스마트폰·태블릿·스마트워치)으로 적용대상이 확대됐고, 지방 정부별로는 집 인테리어나 리모델링에도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소비 진작을 위한 재정 투입이 소비재 전반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이구환신’ 프로젝트가 경기침체와 갈등 상황 속 하방 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 처방이라면, 구조적인 체질 개선을 위한 작업도 본격화되고 있다.
중국 내수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저소득과 높은 도농 격차, 의료, 교육, 연금 등 낮은 수준의 사회보장제도가 중국인들의 소비 심리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려는 분위기가 낮은 민간 소비의 주된 원인으로 오랫동안 지목돼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시작된 중국 정부의 여러 내수 활성화 정책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최근 중국 정부의 내수 중심 성장모델 전환계획에는 연금과 보험, 정년 등 사회보장제도 개선방안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고 있다.
당장 지난 3월 열린 양회에서는 소득 증대를 목표로 ‘합리적인 임금 성장’과 ‘최저 임금 개선을 위한 조치’가 주요 목표로 제시됐다. 또 높은 저축률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교육비, 의료비, 노후 대비에 대한 부담을 줄이겠다며 학생지원 확대, 연금 수령액 증액, 건강보험 개선 등 다양한 사회보장 강화 방안도 제시됐다.
리창 국무원 총리는 “육아수당을 지급하고, 통합보육교육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보편적 보육 서비스 공급을 늘리겠다”며 유아교육을 점진적으로 무료로 제공하는 공적 보육서비스 강화, 농민공(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로 떠난 농민) 자녀에 대한 돌봄서비스 강화, 기초연금의 최저기준 상향, 퇴직자 기본연금 상향 계획 등도 언급했다. 물론 이 같은 중국의 시도가 짧은 기간 내에 극적인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수 시장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가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기술 패권 전쟁의 역설?…자강 기틀 다지는 중국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월 17일 민영기업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량원펑 딥시크 창업자와 악수하고 있다. 중국 중앙(CC)TV 캡처
미·중 패권 전쟁의 또 다른 한 축인 기술전쟁에서도 중국은 미국의 압력에 물러서는 대신 ‘기술굴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지난 2월 시진핑 국가주석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민영기업 심포지엄을 개최, 주요 민간 기업인을 모았다. 정부와 민영기업 간 최고위급 심포지엄으로 2018년 이후 7년 만에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화웨이 창립자 런정페이, 알리바바 마윈 회장, 생성형 인공지능(AI) 딥시크 량원평 대표, 전기차 비야디의 왕촨푸 대표, 샤오미의 레이쥔 회장, 텐센트의 마화텅 대표 등 중국을 대표하는 주요 기업인 18명이 참석했다.
인공지능(AI)과 통신기술, 전기차, 전자상거래 등 빅테크 기업 대표주자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은 것으로,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기업가 정신과 기술혁신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주문했다. 그는 특히 민영기업들에 ‘신질적 생산력’ 육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는데, 이는 기술 자립과 혁신 역량 강화를 통한 외부 압력 탈피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미국은 중국의 급격한 기술 발전을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간주하고, 중국을 반도체, AI, 통신망 기술발전에서 배제하기 위한 전략을 실행 중이다. 미국의 대중국 기술 견제는 특정 기업을 넘어 중국의 핵심 기술 생태계 자체를 겨냥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인공지능, 고성능 컴퓨팅 등 미래 산업 발전에 필수적인 최첨단 반도체를 개발하거나 생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수출 통제를 시행 중이다. 단순히 완제품 수출을 막는 것을 넘어 반도체 설계에 필요한 소프트웨어(EDA), 생산에 필수적인 첨단 제조 장비, 심지어 관련 기술을 보유한 미국인 인력의 중국 내 활동까지 제한하고 있다.
아울러 화웨이, SMIC 등 중국의 대표적인 기술 기업들을 수출 블랙리스트에 올려 미국 기술 접근을 원천 봉쇄하는 한편 한국, 일본, 네덜란드 등 동맹국들에도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에 동참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는 중국의 선택은 ‘총력전’으로 요약된다. 외부 의존도를 극히 낮추고 자체 기술 혁신 역량을 키우는 데 모든 국가 역량을 집중하는 방식이다.
김동수 선임연구위원은 “사실상 대부분의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을 턱밑까지 쫓아갔고, 배터리나 전기차 등 일부 분야에서는 이미 미국을 앞선 기술도 있다”며 “나머지 분야도 중국이 중앙정부 주도로 막대한 자금을 투입 중이다. 미·중 기술 격차가 의미 없어지는 것은 시간의 문제”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중국은 기술 패권 전쟁 발발 이후 정부 주도 연구개발 예산을 빠르게 증액해오고 있다. ‘2024년 중앙과 지방정부의 예산 집행 현황 및 2025년 중앙과 지방정부의 예산 초안’을 보면 중앙정부는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일반공공예산을 전년 대비 10% 상향한 3981억위안(약 78조원)으로 책정했다. 이를 전국 예산으로 확대해서 보면 과학기술 분야의 2025년 중국 일반공공예산 규모는 전년 대비 8.3% 증가한 약 1조2464억위안(약 243조원)에 달한다. 올해 한국 전체 예산(613조원)의 40%에 달하는 규모로, 교육 분야 예산 일부도 간접적인 측면에서 과학기술 분야 예산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천문학적인 수치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과기 예산 증가는 그 규모뿐 아니라 정부가 미국과 경쟁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지원하겠다는 메시지를 민간에게 주고 있다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면서 “이런 시그널은 기존 기업과 스타트업 기업들에 동기를 부여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지원에 힘입어 중국은 5G 통신망 구축, 인공지능(AI) 응용 분야, 전기차 및 배터리, 재생에너지 등 특정 분야에서는 이미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일부 앞서나가는 영역도 있다. 물론 반도체 설계 및 제조의 최첨단 영역, 핵심 소재 및 부품, 기초 과학 연구의 깊이 등 근본적인 기술 영역에서 뒤처져 있지만, 뒤처진 영역들에서도 발전 ‘속도’ 측면에서는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흔들리는 트럼프, 뒤에서 웃는 시진핑
2019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 로이터
중국이 대미 무역 협상에서 확연한 피해를 감수하고도 협상을 서두르지 않았던 또 다른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두 지도자가 처한 정치 현실 차이도 있다. 2차 무역전쟁 직후 두 사람은 실리와 명분 두 가지 측면에서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동맹·내부 구성원들의 지지와 자유무역 수호라는 가치가 그 두 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시작과 동시에 글로벌 관세 전쟁을 촉발하면서 동맹과 우방을 가장 먼저 공격하는 선택을 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 가입국인 캐나다와 멕시코를 겨냥해 제일 먼저 관세 폭탄을 날렸고, 유럽연합(EU)에 대해서는 “수년간 미국을 학대해왔다”며 노골적인 보복 의지를 드러냈다. 지난 4월 글로벌 상호관세를 발표하면서는 일본과 한국에 대해 비관세 장벽으로 양국이 미국의 수출을 막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트럼프가 이처럼 우방과 동맹을 맹공하는 동안 시진핑은 자유무역의 수호자로 스스로를 포장하며 바닥을 다졌다. 시 주석은 지난 4월 올해 첫 해외 순방지로 베트남과 캄보디아, 말레이시아를 선택했다. 베트남은 중국과 같은 공산권 국가, 캄보디아는 동남아의 대표적인 친중 국가다. 시 주석은 이들 국가를 돌며 내놓은 공동성명 등을 통해 트럼프로 대표되는 보호무역주의 배격과 자유무역 수호 메시지를 쏟아내며 우군 확보에 주력했다.
내부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27일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맞아 워싱턴포스트와 ABC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39%에 그쳤다. 취임 100일 기준 미국의 역대 대통령을 통틀어 가장 낮은 수치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 지지 여부를 묻는 입소스의 여론조사에서는 불과 36%만이 그의 정책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역시 트럼프 1, 2기를 통틀어 가장 낮다. 민심 이반이 본격화되면서 전통 지지층인 월가와 공화당 내부에서도 공개적으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강성으로 꼽히는 테드 크루즈 텍사스 상원의원의 경우 공개적으로 관세정책을 비판하고 나섰고, 친트럼프 성향 척 그래슬리 상원의원은 아예 관세부과 권한에 제동을 거는 민주당의 법안에 동조하고 있다. 하원 전체와 상원 3분의 1을 선출하는 중간선거(2026년 11월)가 임박할수록 공화당 안팎에서 이 같은 움직임이 더욱 뚜렷해지면서 트럼프를 코너에 몰아넣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반면 시진핑 주석의 경우 중국 내 반미 정서를 디딤돌 삼아 외세의 압박에 맞서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굳힐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트럼프의 폭주가 오히려 오는 2028년 시진핑의 4연임에 힘을 더 실어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지현 팀장은 “기본적으로 시진핑 주석이 잘못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닌 데다, 외세의 부당한 간섭에 맞서야 한다는 정서가 오히려 시 주석을 중심으로 뭉치는 효과를 내고 있다”며 “무역전쟁에 따른 고통은 사실 중국이 더 크겠지만, 중국이 쉽게 물러서지 않을 수 있는 또 다른 힘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