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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쟁' 나선 트럼프, 미국 예술계 반발
트럼프 대통령이 예술계 손보기에 나섰습니다. 주요 문화예술 기관에 측근들을 앉히거나 자신을 '셀프 임명'하는 방식으로 장악했습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이념에 반하는 공연과 프로그램의 폐지를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인적 물갈이에 이어, 이번엔 자금줄을 말리려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지난 주, 미국 전역의 소형 예술단체와 기관들이 갑자기 약속했던 '국가예술기금(NEA)' 지원이 취소됐다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지원금에 의존해 소외 지역 문화 행사를 기획하고, 영리성이 떨어지는 예술활동을 유지하던 수백 곳이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노인들에게 춤을 가르치며 사회생활을 돕는 프로그램, 필라델피아 아시안계 축제 등이 지원 취소 통보를 받았습니다. 작은 단체일 수록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단체들은 "사실상의 경제적인 검열"이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설립 25년차인 뉴욕의 '할렘클래식극장'도 올 여름 무대에 올릴 공연이 무산될 위기에 빠졌습니다. 극장을 이끄는 중견배우 타이 존스와 만나 미국 문화예술계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Q. 우선, 경황이 없을 텐데 외국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응해줘서 고맙다.
존스 : 어머니가 미군으로 근무하셨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유럽과 아시아에서 생활했다. 세계 곳곳에 상황을 공유할 수 있으니 감사하다. 한국도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다.
Q. 어떻게 된 일인지부터 설명해달라.
존스 : 금요일 밤 10시에 국가예술기금(NEA)에서 메일을 보내왔다. 5월 31일부로 지원이 종료된다고 했다. 여름 공연을 위한 6만달러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이번 여름에 할렘 야외 극장 무대에 올릴 멤논(Memnon) 첫 리허설을 딱 2주 남김 시점이었다.
Q. 이유는 뭐라고 하던가?
존스 : 일단 설명은 트럼프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우리가 하는 일이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한다면 이메일 내용을 읽어주겠다. 거의 웃음이 날 정도다.
"우리 기금은 지원금 정책 순위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대통령이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풍부한 예술적 유산과 창의성을 반영하는 프로젝트에 지원을 집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새 우선 순위에 해당하지 않는 지원은 중단합니다. 이제 NEA는 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 AI 경쟁력 육성, 교회의 지역사회 봉사, 재향군인 지원 등에 우선적으로 지원할 것입니다
- N.E.A 측이 보낸 이메일의 일부"
Q. '할렘클래식극장'의 문화적 기여가 부족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존스 :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우리가 미국 전역의 풍부한 유산과 창의성을 충분히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지원이 끊긴 500여개 다른 단체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여름 공연을 위해 무대를 만들고, 수백 명을 고용한다. 무료로 진행되기 때문에 매번 모든 통로와 벽까지 관객이 가득 차서, 날씨만 좋으면 매 공연마다 2천 4백 명까지 들어온다. 관객들은 훌륭한 예술 작품을 보면서 모두가 하나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근처의 상점들도 도움을 얻는다. 매년 65만 달러의 경제 효과를 창출한다.
잘 알겠지만 할렘엔 힘들게 살고 있는 이웃들이 많다. 공연 준비를 계기로 이들에게도 필요한 지원이 갈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주변 학교들과의 연계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지역 사회가 가치를 증명해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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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예술적 유산을 반영 못해 취소"
Q. 오랫동안 할렘 지역에 헌신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원 종료 사유가 모욕적으로 느껴지지 않나?
존스 : 모욕적이냐고? 나는 원래 배우만 하고 싶었던 사람이다. 2009년 금융 위기 무렵 '할렘클래식극장'은 40만 달러 규모의 적자를 안고 문을 닫을 위기였다. 극장은 예술에 열정과 재능이 있는데도 무대에서 소외되던 유색인종 배우들의 힘으로 세워졌다. 나도 배역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 극장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10년 동안 급여를 포기하고 일했다. 후원금을 모금하고 운영을 정상화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나는 TV 프로그램에 다섯 시즌 출연했고 브로드웨이에서도 여러 작품을 할 수 있었다. 그사이 극장 역시 지원금을 받고 관리와 홍보로 나눠 조직을 전문화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세 아이의 아빠로서 감사하게도, 지금은 급여를 받고 있다.
여름 무료 공연은 2013년부터 할렘 이웃들에게 지켜온 약속이다. 이스트 할렘에 있는 야외 공연장에서 고전 작품을 누구나 접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늦어도 한달 안에는 리허설에 들어가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6만 달러 지원금이 없어지면 다른 예산을 끌어오고, 새로 기부자들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연쇄 효과가 발생한다. 취소 이메일을 받자마자 직원들을 긴급 소집하고 대응을 논의했다. 후원자들에게도 연락을 돌렸다. 그러나 모욕보다는, 새로 조직할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하고 싶다.
Q. 트럼프 대통령이 '문화 전쟁'에 나섰다는 평가에 동의하나? 예술 현장에선 의도가 뭐라고 보고 있나?
존스 : 이런 조치의 목적은 대개 (흑인, 아시아계, 성소수자 같은) 특정 집단을 침묵시키고 지우려는 데 있다. 지원이 끊긴 단체들을 보면 특정한 표적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취약한 예술 단체들을 표적으로 삼아 건드린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실수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조직화하고 대응하는 'DNA'가 내재돼 있다. 그러니까 벌집을 건드린 셈이다. 오히려 단결의 계기가 됐고 공동으로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의회에도 이 문제를 가지고 가려고 한다.
때로는 불량배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야 할 때가 있다. 우리처럼 작은 예술단체는 언제든지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우리는 큰 덩치들하고 어떻게 싸워야 할 지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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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배에 주먹을 꽂아야할 때" 집단소송 준비
Q. 트럼프 대통령은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프로그램을 비판해왔다.
존스 : 지원에서 배제된 단체들은 다양성 프로그램으로 임의로 분류된 것 같다. 그게 문제라면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지원금을 얻기 위해 우리의 목표를 바꿀 생각은 없다.
우리의 임무는 젊고 활기찬 관객을 위한 고전극을 만들고, 할렘에서 훌륭한 예술과 연극의 인식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 성장할 것이고 지역 사회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극장으로 남을 것이다. 또 유명 연기 학교 출신이 아니어도 유색인종 배우들이 무대에 설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Q. 한국에선 수년 전 대통령이 문화 예술인들을 '좌파'라고 이름붙이고, KCIA까지 동원해 지원금 배제 명단을 작성하게 시킨 일도 있었다.
존스 : 남부 미시시피에서 자란 어머니는 지금도 어떻게 흑인이 위엄을 지킬 수 있는지, 방법을 조언해준다. 조국을 위해 22년의 군생활을 마쳤는데도 그렇다. 내게 차별의 장벽을 만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지를 말씀하신다. "일단 대처하고, 적응하고, 극복하라"는 것이다. 뭐라고 포장해도 이번 조치는 인종차별적 측면이 있다.
그래서 나는 긍정적이다. 이번에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늘 시민들의 힘이 힘 있는 사람들보다 강하기 마련이다.
※관련 기사: [뉴스데스크] 트럼프에 맞서는 예술가들‥로버트 드니로 "지옥처럼 싸우고 있다" (2025.05.14/MBC뉴스)
https://imnews.imbc.com/replay/2025/nwdesk/article/6716057_367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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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극장 "민주주의의 문제‥싸우지 않으면 안돼"
'뉴욕 공공극장'은 60년 넘게 센트럴파크에서 무료로 셰익스피어 공연을 제공해왔지만, 역시 지원에서 배제됐습니다. 비영리 예술단체연합의 공동 대표이기도 한 뉴욕 공공극장 측은 "단순히 자금 문제가 아니"라고 선언했습니다. "예술이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공공재라는 생각을 뺏으려는 시도"라면서, "민주주의와 통합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싸우지 않고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습니다.
반면, 국가예술기금(N.E.A)는 대규모 예산 삭감을 진행하기 전인 지난달, 미국인문학기금과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미국 영웅을 위한 국가 정원'을 만드는데 지원금을 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백악관이 선정한 인물을 동상으로 만드는 예술가에겐 최대 60만 달러, 총 1천7백만 달러가 쓰일 예정입니다. 소수에게 거액을 주지 않고, 예술가를 직접 지원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원칙도 깨졌습니다. 뉴욕타임스는 N.E.A 고위 관료들이 줄사표를 제출하고 조직을 떠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정권 성향에 부합하는지에 따라 당근과 채찍 전술을 쓰는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 가디언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문화 예술계 장악 시도에 대해 "독재자들이 예술을 자신들의 '아젠다'를 관철하려는 도구로 활용해온 오랜 역사와 맞닿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존스 대표는 기자에게 예술인들을 탄압한 한국의 대통령은 어떻게 됐는지 물었습니다. 기자는 재판 끝에 형사 처벌을 받은 사실을 알려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