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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헌재법 '재판은 제외' 명시에도
한정위헌→불인정→재판취소 신경전
최종심·최고법원 지위와 직결돼 '예민'
"사법체계 다루는 중대 사안, 졸속 안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최주연 기자


각종 법안 상정을 통해 사법부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대법원이 가장 민감해하는 사안까지 꺼내들었다. 사실상 4심제로 개편하는 '재판소원' 제도가 도입되면, 대법원의 위상 추락은 물론 사법 체계에도 지각 변동이 불가피하다. 법원 내부에선 국회 움직임과 대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수십 년간 이어져온 제도 개선 논의를 졸속으로 처리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이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1소위에 회부한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은 재판소원(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가능하도록 한 게 핵심이다. 개정안을 보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 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68조)는 기존 조문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문구를 삭제했다.

문구를 하나 삭제했을 뿐인데, 대법원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판소원은 1988년 헌재 출범 이래로 대법원에선 '금기어'로 통했다.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으로 삼게 되면, 최종심급이자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권한 상당 부분이 헌재로 넘어가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판결을 확정하고 새로운 판례를 형성하는 대법원의 기존 역할이나 기능이 헌재로 이관되는 셈이다.

1987년 개헌 직후 헌법재판소법 제정 과정에서도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시킬지 여부가 주요 쟁점이었다. '민사소송학의 거목' 이시윤 초대 헌법재판관은 2017년 언론 기고를 통해 "대법원은 법원의 재판이 헌법소원 대상이 된다는 사실에 크게 당황했고, 혼신의 힘을 다해 '헌법소원에서 재판 예외'를 관철시켰다"고 회상했다.

헌법소원 대상에서 재판이 제외됐지만 두 기관의 신경전은 이어졌다. 헌재가 '법을 A라고 해석하는 한 위헌이다'라며 변형된 형태로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자, 대법원은 "법을 해석하고 개별 사건에 적용해 유무죄 판단을 내리는 것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법원의 전속적인 권한"이라고 맞섰다. 헌재 결정의 기속력(법원 재판에서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세 차례에 걸친 '재판취소 결정' 과정에서 두 기관의 대립은 극명하게 드러났다. ①한정위헌 결정을 받은 당사자가 법원에 재심청구 등을 진행하면 ②법원은 헌재 결정을 인정하지 않으며 기각했다. ③헌재가 '위헌 결정이 난 법률에 근거한 재판'이라는 이유로 해당 판결 자체를 취소하자 ④대법원은 헌재의 재판 취소 결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2022년 7월 "법원의 권한에 대해 다른 국가기관이 법률 해석의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구체적인 사건에 적용하도록 간섭하는 것은 헌법상 권력 분립 원리와 사법권 독립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재판을 대상으로 삼는 헌법소원에 대법원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했는지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불거진 '사법농단' 사태에서도 드러났다. 대법원은 2015년 4월 서울남부지법 재판부가 사립학교 교직원 연금법 사건에서 한정위헌 여부를 묻는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기로 결정하자 이를 번복하도록 종용했다. 구체적 사건과 관련한 법률 해석 방식을 헌재에 물을 경우, 헌재가 법원 재판에 관여할 길이 열릴 것이란 우려가 깔려 있었다.

민주당이 '재판소원 카드'를 꺼낸 건 결국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이후 법안이 상정됐기 때문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판소원 도입은 검찰로 치면 법을 바꿔서 수사권을 뺏겠다는 것과 같다"며 "헌재법 개정이라는 군불을 피우는 것만으로도 사법부를 충분히 압박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판소원 도입을 통한 4심제 개편은 국회 권한이지만, 법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졸속 처리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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