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강세’ 분당에서 유권자들 만나보니
지난 14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의 판교테크노밸리. 유새슬 기자
경기 성남 분당구는 수도권에서 보수 지지세가 가장 강한 지역 중 하나다.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은 상황에서 열린 제22대 총선에서도 안철수(분당갑), 김은혜(분당을) 국민의힘 의원을 당선시켰다. 신도시가 생기면서 강남에서 넘어온 자산가가 많고 신흥 부동산 재벌, 정보기술(IT) 종사자 비율이 높아 ‘작은 강남’으로도 불린다.
다음 달 3일 열리는 제21대 대통령 선거의 주요 후보들과 연관성이 큰 지역이기도 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지냈고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경기지사로 일했다. 2010년 7월1일부터 4년 동안 김 후보는 경기지사, 이 후보는 성남시장으로 손발을 맞췄다.
지난 14일 분당갑 지역의 판교동·삼평동·백현동, 분당을의 수내동·정자동·구미동 일대에서 시민 17명을 만나 이번 대선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보수 지지세는 여전히 강했지만 자신을 중도보수 성향으로 분류한 6명 중 김 후보를 찍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판교동에 거주하는 대학원생 김형훈씨(29)는 “이번에 처음으로 민주당을 찍으려고 한다. 가족 세 명이 같은 선택을 하는 것도 처음”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계엄령을 내린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김씨는 “국민의힘은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같다”며 “차라리 후보를 내지 않았으면 저도 투표장에 안 가려고 했는데 (반성 없는 모습에) 솔직히 화가 난다”고 했다.
10년 넘게 수내동에 사는 40대 A씨는 이 후보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는 “사람 사는 세상이 규칙 안에서 움직이는 것 아닌가. 아이들도 학교 안에 정해진 규칙에서 질서를 지키면서 살아간다”며 “정작 대통령이 민주주의라는 대원칙에서 많이 벗어난 모습을 보여 실망했다”고 했다. 백현동에 거주하며 IT 개발자로 일하는 신모씨(33)는 “생업이 바빠 정치는 잘 모르는데 아무리 몰라도 계엄이랑 후보 바꾸려던 건 안다”면서 “2번(국민의힘)은 못 찍을 것 같고 좀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신씨는 지난 대선에서 윤 전 대통령, 지난 총선에서 안철수 의원을 찍었다.
지난 14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미금사거리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유새슬 기자
이들은 국민의힘과 김 후보가 계엄과 탄핵에 사과를 한다고 해도 생각을 바꾸지는 않겠다고 입을 모았다. “말로 하는 건 와닿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줘야죠. 그런데 그분은 전광훈 목사랑 손잡은 분이잖아요”(A씨), “사과해달라고 국민이 애걸복걸해야 하나요. 이제 와서 사과한다고 해서…엎드려 절받는 것도 아니고”(신씨), “윤석열을 (당에서) 내보낸다고 있었던 일이 없어지나…근데 출당시키긴 한대요?”(김씨).
A씨는 “안철수 의원이 후보였다면 2번을 찍었을 것 같다”며 “언어의 힘을 믿는데 안 후보가 경선 토론회에서 하는 말은 귀담아듣게 되더라”고 했다. 서현동에서 오래 거주했다는 테크노밸리의 그래픽디자이너 40대 김모씨는 “한동훈 후보라면 찍을 의향이 있었다. (탄핵 국면에서) 할 말을 하고 사람이 올곧아 보였다”고 했다. 안 의원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모두 탄핵 찬성(찬탄)파다.
불법 계엄 사태에 대한 평가는 시민들의 정치적 성향과 대부분 무관해 보였다. 국민의힘 지지자 최원복씨(79)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민주당이 횡포를 너무 부렸다”면서도 “계엄이라는 방법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정자동에서 30여 년간 거주 중인 양모씨(69)는 “계엄은 독재 국가에서나 하는 것 아닌가”라며 “(윤 전 대통령은) ‘잠깐 몇 시간 했는데 그게 뭐가 문제냐’고 하지만 그것 때문에 지금 정치, 경제, 안보가 다 불안정해졌고 이걸 전 세계가 보고 있다”고 했다.
두 후보의 도정·시정을 겪은 주민들에게도 과거에 대한 평가는 이번 대선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듯했다. 백현동과 구미동 일대에서 총 40년 가까이 거주한 박순영씨(62)는 “둘 다 도정을 잘했던 것 같긴 한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을 찍을 생각인데 부동산 때문이지, 사람을 보고 결정한 건 아니다”고 했다. 그래픽디자이너 김씨는 “이재명 도지사가 일을 잘했던 기억이 있다. 저희 어머니도 그렇게 말씀하신다”며 “재판이나 수사 과정에서 나오는 것들을 보니 그동안 뒤로는 나쁜 짓을 많이 한 건가 의심이 들더라”고 했다.
지난 14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분당사거리에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유새슬 기자
전반적으로는 보수 강세 지역답게 당 지지 성향에서는 국민의힘 지지세가 민주당보다 강했다. 다만 김 후보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아 보였다. 테크노밸리에서 IT 개발자로 일하는 이아름씨(29)는 김 후보에게 투표할 예정이다. 이씨는 “민주당이 다수당으로서 횡포가 심했고 국가안보를 생각하면 민주당에 더 반감을 갖게 된다”며 “김문수라는 사람은 솔직히 잘 모른다. 그런데 이재명은 아니다”고 했다. 그는 최근 국민의힘 후보 교체 파동을 보고 “저 당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며 “그래도 누군가는 국정을 이끌어야 하니까”라고 했다. 50대 직장인 정모씨는 “실질적으로 내 삶에 가장 많은 도움을 주는 당을 뽑게 된다. 국민의힘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변한 적은 없다”며 “김문수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고 했다.
당보다는 인물을 보고 뽑겠다는 시민도 많았다. 1번을 찍겠다는 양씨는 “나라가 어지러운데 결단력 있는 정치인에게 나라를 맡겨야 한다”며 “김문수는 (당이) 허수아비로 세운 사람 아닌가”라고 했다. 50대 택시기사 한모씨는 “김문수는 정직한 사람 같아 보인다”며 “뽑아놓고 보면 저 사람이 뭘 하는지 국민이 일일이 알 수가 없으니 정치인으로서는 그게(정직함)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픽디자이너 김씨는 “주요 후보들이 살아온 인생과 가치관에 대해 좀 공부를 해본 다음에 결정하려고 한다”며 “투표는 꼭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를 찍겠다는 시민은 만나지 못했다. 양씨는 “사표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고 A씨는 “그분이 쓰는 말이 듣기에 좋진 않았다”고 했다. 한씨는 “보수 진영에서 귀한 젊고 똑똑한 정치인이지만 아직은 조금 더 정치를 배워야 할 것 같다”, 대학원생 김씨는 “시대정신이 통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과는) 거리가 좀 먼 사람 아닌가”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