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반기문보다도 빨라
지도부에만 의존 ‘패착’
“저는 호남사람” 희화화만
지도부에만 의존 ‘패착’
“저는 호남사람” 희화화만
씁쓸한 엔딩 한덕수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가 11일 당원 여론조사 결과에 승복한다는 뜻을 발표하기 위해 선거캠프 사무실에 들어서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단일화에 의한, 단일화를 위한 정치. 그게 전부였다.”(국민의힘 관계자)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정치 여정이 11일 초라하게 마무리됐다. 당초 대선 출마 명분이 약했고, 정치적 경쟁력을 보여주지도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민의힘 지도부에 의지해 단일화만 외치다가 국민의힘 당원들의 ‘심판’ 투표로 정치 입문 8일 만에 낙마했다.
한 전 총리는 지난 2일 대선 출마 선언 전부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를 안았다. 결국 출마 선언 20일 만에 불출마를 선언한 반 전 총장보다 빠른 속도로 퇴장했다.
한 전 총리가 실패한 것은 대선 출마 명분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2·3 불법계엄으로 몰락한 윤석열 정부 2인자로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 대선이 확정된 지난달 4일 “차기 대선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가 선수로 뛰겠다며 입장을 선회한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도 국민의힘 지도부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당에 일임”한다는 입장을 반복했을 뿐 주체적으로 협상판을 주도하지 못했다. 지난 8일 생중계된 김 후보와의 협상에선 구 야당에 대한 비판만 앞세웠다. 한 전 총리가 김 후보의 ‘의지’에 정치적 명운을 걸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한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너무 순진했다”고 말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정치적 잠재력을 보여주는 데도 실패했다. 오랜 관료 경험을 내세웠지만 그에 걸맞은 중량감 있는 정책과 비전 제시로 주목을 끌지도 못했다. 지난 2일 광주에서 시민단체에 막혀 5·18민주묘지에 들어가지 못하자 “저는 호남사람입니다”라고 외치는 장면만 뚜렷이 각인됐다.
한 전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승복하겠다”며 김 후보의 대선 승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돕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캠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전날 밤 발표된 한 전 총리로의 후보 교체에 부정적인 전 당원 투표 결과에 대한 놀라움과 당혹감이 읽혔다.
한 전 총리가 적극적인 자세로 김 후보를 위한 선거운동에 나설지는 불투명하다. 김 후보 측과의 감정의 골은 이미 깊어진 데다 당내에서 분출하는 지도부 책임론에서 한 전 총리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전 총리는 이날 김 후보를 만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실무적으로 어떤 게 적절한지 조금 논의하는 게 좋겠다”며 즉답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