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리사와 학교의 업무강도 완화 갈등으로 짚어본 우리가 간과한 것들
파업 배경·맥락 고려 없이 일방적 책임 전가는 학교가 곱씹어볼 문제
대전 글꽃중학교 조리사의 손. 식판을 닦는 등의 반복 작업으로 왼손 엄지손가락의 연골이 닳아 뼈가 튀어나와 있다.(왼쪽) 대전 둔산여고 조리사의 손. 반복 작업으로 연골이 닳으면 뼈가 뼈끼리 부딪치고 염증이 생기면서 마디가 굵어진다. 이효상 기자


[주간경향] 지난 4월 초 대전 둔산여고에서는 등굣길 학부모들의 피켓 시위가 한동안 이어졌다. 배경은 저녁 급식 중단이다. 급식실 조리실무사(이하 조리사)들의 반나절 파업 이후 이 학교 교사와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학교 운영위원회는 저녁 급식 중단을 결정했다. 피켓 시위에 나선 학부모들은 “아이들 볼모로 하는 쟁의행위 철회하라”, “금년 수능 계획 무너졌다. 조리사들은 각성하라”라며 조리사들을 비판했다. 며칠 뒤에는 학교 학생회가 “학생들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행위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학생회는 이 글에 전교생 740여명 중 640명의 서명을 받아 조리사들에게 전달했다. 교사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학생들의 급식을 볼모로 한 집단행위가 반복된 데 대해 개탄스럽고,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 사태를 두고 교육의 3주체인 교사·학생·학부모는 일치된 태도를 보였다. 이들에게 최대 피해자는 학생, 원인 제공자는 조리사였다. 무엇보다 이들 모두 어떠한 경우에도 학생의 건강권은 침해될 수 없다는 데 동의했다. 바꿔 말하면 급식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급식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파업을 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교총은 파업 시 대체 인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학교를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하는 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 인식에 조리사들이 파업에 나선 배경이나 맥락에 대한 고려는 설 자리가 없었다.

조리사들의 요구는 업무 강도 완화다. 오랫동안 전국의 급식실 조리사들은 인력 충원을 요구해왔지만, 정부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 만큼 상황은 더디게 개선됐다. 조리사들은 개별 학교 차원에서 급식실의 업무 강도를 낮추기 위해 학교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요구했다. 전·구이·튀김 반찬을 주 2회까지만 만들도록 식단을 편성해 달라는 등의 요구였다. 문제는 누구도 이 요구사항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교는 수용하지 않았고, 언론은 “고기 삶기·달걀 깨기 거부한 조리원들”이라 매도했다.

급식 중단 사태에서 우리 사회가 간과한 문제들을 짚어본다. 조리사들의 업무 강도를 둘러싼 갈등은 둔산여고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의 학교 급식실이 처한 위기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이들의 파업을 덮어놓고 비판하는 것은 급식실의 문제를 은폐하는 것이자, 이들을 ‘밥하는 아줌마’로 취급하는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교육의 주체들이 파업을 노동자의 떼쓰기로 인식하는 것은 장차 일하는 사람으로 자라날 학생들을 위해서도 교육적이지 않다.

10명 중 6명 폐 결절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대표단이 지난 4월 21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학교 비정규직 저임금 구조 철폐와 학교급식 위기 해결을 위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단식 11일차인 지난 5월 1일 더불어민주당과 학교급식 종합 대책 마련에 합의하고 농성을 해제했다. 김창길 기자


둔산여고 조리사들은 지난 3월 17일 여섯 가지 요구사항을 영양교사에게 전달했다. ①교직원을 위해 따로 차리던 배식대를 차리지 않고 ②냉면 용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③덩어리 고기를 포함해 뼈나 사골을 삶는 행위를 거부한다는 내용이었다. 또 ④전·구이·튀김은 주 2회까지만 ⑤반찬은 김치 포함 3찬까지만 만들고 ⑥손이 많이 가는 복잡한 데커레이션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조리사들은 급식실 업무 강도가 버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했다.

학교와 시교육청의 판단은 다르다. 이 학교는 조리사 10명이 한 끼에 약 800인분의 식사를 만든다. 조리사 1인당 80인분을 만드는 것으로 대전시 학교 평균(1인당 102명)에 비하면 많은 수준은 아니다. 대전시교육청의 ‘2025년 학교급식 기본계획’에 따르면 고등학교의 경우 급식 인원 120명당 조리사 1명을 추가 배치할 수 있다. 이 기준대로면 조리사 8명이 정원이다. 단 이 학교 급식실은 복층으로 조리사들이 무거운 음식이나 식판을 들고 2층까지 이동해야 해 동선이 길다. 시교육청은 복층 급식실에 조리사 1명을 추가 배치하도록 하고 있다. 학교의 주장은 복층인 점을 감안해도 조리 인력이 1명 더 많다는 것이다. 둔산여고 관계자는 “학생 수가 작년 대비 4학급 줄어 교사도 감원했는데 조리 인원은 작년과 같다. 학생 수에 비해 조리 인력이 많은 편”이라고 했다.

다만 급식실 노동 강도는 드러난 숫자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영양교사가 짜는 식단과 조리법, 급식실로 들어오는 식재료의 손질 여부 등이 노동 강도를 좌우한다. 예컨대 닭 다리를 사용하는 요리를 한다면 핏물을 빼고 밑간을 한 염지된 닭 다리를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둔산여고 조리사들은 염지가 안 된 닭 다리를 요리했다. 일단 닭 다리가 들어오면 조리사들은 개수를 일일이 확인해 흐르는 물에서 핏물을 빼고 솥에서 염지를 해 애벌구이를 한 후, 양념을 넣고 다시 조리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요리를 완성했다. 이것이 이 학교가 정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과일을 준비할 때도 800인분의 딸기 꼭지를 따고, 오렌지 껍질을 모두 까서 배식했다. 같은 800인분을 만드는 학교라도 일하는 방식에 따라 업무 강도는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둔산여고 조리사들은 이 학교 식단에 유독 튀김요리가 많다고 했다. 조리사들은 몇 년에 한 번씩 근무지를 옮기는데, 경력이 쌓인 조리사들은 학교별 노동 강도 차이를 몸으로 알고 있다. 급식실 조리 10여 년 경력의 A씨는 “(둔산여고에서는) 하루에 중식도 튀기고 석식도 튀겼다”고 했다. 20년 경력의 B씨는 “요리에 따라 기름에 튀길 수도 있고 오븐에서 구울 수도 있는데 이 학교는 튀김을 선호했다”고 했다. 튀김은 학생들이 좋아하는 요리지만 지방 함량이 높을 뿐 아니라 조리원들의 건강도 위협한다. 고온 가열한 기름을 사용해 요리하면 ‘조리흄’이라는 세계보건기구 지정 2A군 발암물질이 나온다. 조리흄은 폐에 혹이 생기는 폐 결절이나 폐암을 유발한다. 기름을 대량 사용하는 급식실에서 폐암 발병은 드문 일이 아니다. 2021년 2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급식실 조리사 중 폐암으로 산재를 신청한 사람은 214명에 달했다. 이중 169명이 산재 인정을 받았고, 13명이 사망했다. 둔산여고도 예외는 아니어서 조리사 10명 중 폐 결절이 확인된 사람은 6명에 달했다. 폐 결절은 폐암으로 이어질 수 있어 확진자들은 경과를 관찰하면서 일하고 있다.

조리사들의 요구는 교육당국이 정한 기준에 부합하는 측면도 있다. 예컨대 ‘전·구이·튀김 요리 주 2회 이내’라는 요구는 교육부 권고에 기반한다. 교육부는 2023년 조리사들의 폐암 산재 인정이 잇따르자 튀김류를 주 2회 이내로 최소화하고 오븐을 적극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교직원 전용 배식대 거부’나 ‘반찬 3찬 제한’ 등의 요구도 대전시교육청의 ‘2025 학교급식 기본계획’에 부합한다. 시교육청은 기본계획에서 “교직원 전용 배식대 및 별도 메뉴 편성 등 조리 종사자 업무부담 가중 지양”을 권고했다. 대전 학교비정규직노조에 따르면 대전 시내 300개 학교 중 교직원 전용 배식대를 따로 두고 있는 학교는 100개교를 밑돌고,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조리사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수용이 어려운 것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추가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환경이 나아질 것이라 본다. 학교의 생각은 다르다. 둔산여고 관계자는 “냉면 용기를 안 쓰면 냉면이나 잔치국수를 어떻게 배식할 수 있나. 아이들 안전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일부 요구는 급식의 질 저하 및 안전 문제와 연결돼 있어 수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현재는 냉면 용기를 사용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안전 문제를 조리사들이 떠안고 있다. 냉면 용기는 비빔밥, 면 요리, 갈비탕 등의 메뉴가 나갈 때 사용되는데, 냉면 용기를 쓰는 날은 설거짓거리가 늘고 국물이 많아 잔반통이 넘쳐흐르는 일이 잦다. 지난해 1학기 냉면 용기에 칼국수가 나가던 날, 잔반통에서 넘친 국물을 닦으려던 조리사가 뒤로 넘어져 뇌진탕 진단을 받았다. 꼬리뼈와 허리를 다쳤고 갈비뼈에도 금이 갔다. 해당 조리사는 중환자실에 나흘간 입원했고, 6개월간 산재 요양 후 복귀했다. 조리사의 사고는 4일 연속 냉면 용기로 배식하는 와중에 발생했다.

“다 잘해야” 한계에 몰린 조리사들

글꽃중학교 조리사들은 지난 4월 11일 손질된 식재료를 사용하게 해달라는 요구를 학교 측이 수용하지 않자 급식을 마치고 설거지를 하지 않은 채 조퇴했다. 이후 15일간 병가를 사용하고 지난 5월 7일 출근했다. 아무도 설거지를 하지 않아 식기가 방치돼 있다. 글꽃중 조리사 제공


2006년 각급 학교에서 직영 급식이 의무화되고 약 20년, 조리사들은 열악했던 급식실의 환경이 점점 개선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 강도가 낮아졌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까다로운 학생들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돈코츠라멘’, ‘수제햄버거’, ‘붐바치킨면’ 등으로 식단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해졌고, 일부 학교에서는 자연 재료를 들여와 정성껏 조리함으로써 ‘아이들에게 밥을 준다’는 사명감을 고취했다. 찹쌀떡에 크림을 짜고 꼭지를 딴 딸기를 보기 좋게 올리는 수제 데커레이션까지 더하며 학교 급식실은 집단급식의 질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이는 학생·학부모의 까다로운 급식 민원을 잠재우기 위한 학교 측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걸 해내야 하는 사람은 학교도, 식단을 짜는 영양교사도 아닌 조리사들이었다. 대전에서 급식이 멈춘 것은 둔산여고만이 아니다. 대전 글꽃중은 지난 4월 ‘달걀 지단 없는 오므라이스’, ‘미역 없는 미역국’으로 유명해졌다. 지난 4월 11일 이 학교 조리사 8명은 배식 후 설거지를 하지 않고 조퇴했고, 이어 15일간의 병가를 냈다. 급식은 도시락 등으로 대체됐다. 이들의 요구는 액상란, 자른 미역 등 손질된 식재료를 사용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2월 말부터 요구했지만 4월이 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조리사들은 손질 안 된 식재료의 조리를 거부했다.

이 학교는 8명의 조리사가 1명당 122인분씩 980인분을 만든다. 손질 안 된 식재료를 써 공정은 더 복잡한 편이다. 달걀 요리라면 일일이 1000개 가까운 달걀을 깨야 하고, 미역을 쓴다면 물에 불어 잘 썰리지 않는 미역을 일일이 잘라야 한다. 손질 안 된 식재료를 쓰면 조리사들이 한 번에 들어야 하는 중량도 늘어나고 손질을 위한 반복 작업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한 조리사는 “전에 있던 학교에서 액상란과 자른 미역을 썼다. 여기 온 지 6개월 만에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손과 팔꿈치 염증으로 주사를 맞고 있다”고 했다.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사는 대부분의 급식실 조리사들처럼, 이들 8명도 크고 작은 질환을 앓고 있다. 방아쇠수지증후군, 팔꿈치 통증인 엘보, 각종 관절의 연골이 닳는 퇴행성관절염 등이다. 이들은 병가를 쓰고 미뤄온 치료를 받았다.

반면 학교는 이들의 업무강도가 특별히 높지 않다고 본다. 글꽃중 관계자는 “특별히 다른 학교에 비해 노동 강도가 강하다거나, 다른 학교는 하지 않는 일을 하기 때문에 (파업이) 발생했다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학교들이 손질된 식재료를 쓴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바 없고, 손질된 식재료는 기존 식재료보다 단가가 비싼 데다 위생상 문제도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이 아니다. 가깝게는 둔산여고조차 자른 미역을 쓴다. 손질된 식재료의 단가가 비싼 건 사실이나 예산에 무리가 가는 수준이라 보긴 어렵다. 급식실에도 미역을 납품하는 수산물 도소매 업체 관계자는 “자른 미역 단가 차이는 1㎏당 3000~4000원 수준”이라고 했다. 다른 학교 급식실에서 사용되는 액상란 역시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을 통과한 제품들로 위생 우려가 크다 할 수 없다. 조금만 들여다봐도 사실관계를 가릴 수 있는 주장을 하는 것은 학교가 조리사들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학교와 학부모들의 주장대로 자연 재료를 정성껏 조리해 다양한 식단을 제공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급식실 현장 상황에 비추면 과도한 바람이다. 지표가 말해준다. 올해 3월 기준 전국 학교 급식실은 정원 약 4만4000명에서 약 1800명(4%)이 미달했다. 무기계약직으로 고용 안정이 보장된다지만 정년이 되기 전에 퇴직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해 1~11월 학교 급식실 퇴직자 중 60.4%(3198명)는 정년 이전에 사표를 냈다. 특히 일을 시작하고 6개월 이내에 그만두는 사람이 많은데,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6개월 내 퇴사자가 22.8%에 달했다(이상 정혜경 진보당 의원실 자료). 막상 일해보니 못 버틸 수준이었다는 얘기다. 노동 강도에 비해 보상은 박하다. 1년차 신입 조리사의 기본급은 월 206만6000원으로 똑같이 주 40시간 일하는 최저임금 노동자의 월급(209만6000원)보다 적다. 수당이 붙으면 최저임금을 웃돌지만 방학엔 임금이 없다.

학교 급식실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기는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다시 근무환경을 악화시킨다. 글꽃중의 조리사 C씨는 국 배식을 하다 손에 2도 화상을 입었지만, 대체 인력을 구하지 못해 붕대를 감고 장갑을 낀 채 일했다. 당시 글꽃중은 다른 조리사가 급식실에서 넘어지는 산재를 당해 이미 한 명의 대체 인력을 쓰고 있었다. 글꽃중 조리사 D씨는 “아파도 참고 배려했는데 학교 차원에서 협력해서 풀어갈 수 있는 일을, 거기(학교)서 딱 문을 닫으니까 전국적인 문제가 됐다”고 했다.

노동권 존중 없는 학교

대전 지역에서 유독 급식 파행이 잇따른 것은 지난해 대전시교육청과 대전 학교비정규직노조의 직종별 교섭이 결렬됐기 때문이다.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서 쟁의조정이 이뤄졌는데, 끝내 조정 중지 결정이 내려지면서 노조가 적법한 파업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노조에 속한 조리사들은 전면 파업 대신 규정을 지키는 최소한의 선에서 일을 하는 준법투쟁에 나섰고, 적잖은 학교에서는 조리사들의 요구 사항을 수용하며 파행을 피했다.

문제 해결에 1차적 책임이 있는 것은 교육당국이다. 대전시교육청 관계자는 “조리 인원 배치기준은 2019년 1인당 급식 인원 116명에서 올해 3월 102명까지 꾸준히 하향해왔다. 노조에서는 1인당 80명을 요구하고 있는데 학생 수가 감소하고 있어서 (조리 인원을) 급격히 늘리기 어렵다”고 했다. 다른 집단급식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학교 급식실 조리사들은 지역별로 많게는 1인당 150인분 이상을 만드는 반면, 국회 본관은 조리사 1인당 84인분을, 정부서울청사 본관은 54인분을 만든다.

두 학교의 노사 모두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급식실 조리사들은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급식에 차질을 빚는 방식으로 쟁의행위를 했다. 그러나 인력 충원을 둘러싼 시교육청과 노조의 협상이 결렬되고, 개별 학교마저 노동 강도 완화를 위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을 때 이들에게 파업 이외의 선택지는 달리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학교가 보인 태도는 조리사들에 대한 존중과는 거리가 있다. 둔산여고는 조리사들이 ‘교직원 전용 배식대’를 거부하고 교직원도 학생과 같이 낮 12시부터 급식을 시작하겠다고 알리자, 조리사도 교직원이니 낮 12시부터 밥을 먹으라고 지시했다. 한창 바쁠 시간에 밥을 먹으라는 지시에 조리사들은 한동안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다. 준법투쟁에 대한 보복성 대응으로 부당노동행위 소지도 있다. 글꽃중학교는 조리사들의 쟁의행위를 노동 강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쟁의를 주도하는 일부 조리사의 문제’로 인식했다.

더 암울한 것은 교육 주체들이 조리사들의 쟁의행위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파업이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라는 사실, 파업이라는 행위가 노사 타협 실패의 결과라는 사실에 눈감고 조리사 일방으로 책임을 전가했다. 대전 지역에서 8년간 학교장을 지내다 지난해 퇴직한 김동춘씨는 “다른 곳도 아닌 학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교육적이지 않다. 학생 중에 누군가는 일하는 사람이 되고, 누군가는 관리자가 될 텐데 이런 상황을 보고 자란다면 노사 타협이 이뤄질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학교장을 지내면서 급식실의 노동환경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예산 항목에는 없지만 남는 예산으로 추경을 편성해 급식실에 단시간 아르바이트 인력을 충원하기도 했다. 그는 “조리사들이 학교에 와서 10년을 못 버틴다. 그 이상 버틴 분 중에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등 정상적인 몸 상태를 가진 분이 한 분도 없다. 급식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두지 않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조리사들의 노고에 눈감고 학생들에게 밥을 줘야 한다는 사명만 강조하면서 힘든 것을 참으라고 말하는 건 잔인한 일이다”라고 했다.

둔산여고의 한 학생은 조리사들의 쟁의행위를 냉소하는 학내 분위기를 비판하며 지난 4월 13일 학교에 대자보를 붙였다. 그는 “우리가 지금껏 누려왔던 ‘정상적인 급식’이 과연 정상적인 노동환경에서 나온 결과였을까요?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겪는 불편은 누군가의 과로와 고통 위에 세워진 것이었을지 모릅니다”라며 “부끄러운 건, 이틀간의 파업과 진행 중인 쟁의가 아니라 그 앞에서 우리가 보인 냉소와 조롱입니다”라고 했다. 학교가 곱씹어볼 대목이다.

경향신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6311 웬만한 코미디보다 웃긴 정치, 고통 들춰야 '진짜' 코미디 랭크뉴스 2025.05.11
46310 검찰, '공천개입 의혹' 김건희 여사에 정식 출석 요구 랭크뉴스 2025.05.11
46309 금리 14.75%, 19년래 최고…'삼바 채권'에 관심 커지는 이유 랭크뉴스 2025.05.11
46308 이재명 52.1%·김문수 31.1%·이준석 6.3%…격차 더 벌어졌다 랭크뉴스 2025.05.11
46307 김문수·한덕수 서로 포옹…金 "선대위원장 맡아달라" 랭크뉴스 2025.05.11
46306 이재명, 尹정부 두차례 거부권 '양곡법 개정' 재추진 랭크뉴스 2025.05.11
46305 민주당 “쌍권 중징계, 윤석열 당적 박탈해야…김문수 어떤 생각?” 랭크뉴스 2025.05.11
46304 홍준표 “쌍권 정계은퇴를…정당정치 모르는 말종들 사라져야” 랭크뉴스 2025.05.11
46303 김문수 “선대위원장 맡아달라”…한덕수 “적절한지 실무 논의” 랭크뉴스 2025.05.11
46302 국힘 내홍 속 이재명 52.1%…김문수 31.1% 이준석 6.3% 랭크뉴스 2025.05.11
46301 [속보]윤석열 “반대편은 강력, 국힘은 건강함 보여줘”… 막장 경선과 다른 인식 랭크뉴스 2025.05.11
46300 한덕수 "당원 투표 결과 수용...김문수 승리 돕겠다" 랭크뉴스 2025.05.11
46299 홍준표 “사필귀정… 권영세 권성동 정계 은퇴하라” 랭크뉴스 2025.05.11
46298 "딸 한양대 피아노 교수 시켜주겠다"…5억원 가로챈 50대 징역형 랭크뉴스 2025.05.11
46297 SK텔레콤, '유심 재설정' 설루션 도입…"유심 교체와 동등 효과"(종합) 랭크뉴스 2025.05.11
46296 한덕수 "모든 것을 겸허히 승복‥할 수 있는 일 돕겠다" 랭크뉴스 2025.05.11
46295 한동훈 “친윤, 尹부부에 끌려다녀…쿠데타 책임 물어야” 랭크뉴스 2025.05.11
46294 김문수-한덕수 회동…金 선대위원장 제안에 韓 "논의하겠다" 랭크뉴스 2025.05.11
46293 김문수, 대선 후보 등록하고 가처분도 취소… “이제 화합의 시간” 랭크뉴스 2025.05.11
46292 [속보] 김문수·한덕수 서로 포옹…金 "선대위원장 맡아달라" 랭크뉴스 2025.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