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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각) 바티칸 성직자부 청사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난 유흥식 추기경이 콘클라베 기간 교황 투표 때 직접 쓴 펜을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만 80살 미만의 133명 추기경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은 투표용지 위에 자필로 원하는 후보자의 이름을 적어 낸다. 사진 장예지 특파원 [email protected]

새롭게 선출된 레오 14세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당 ‘강복의 발코니’에 올랐던 날, 그 옆에서 때묻지 않은 웃음으로 축하를 전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은 마지막 투표 이후 추기경들은 “박수를 치고 야단이 났다”며 당시의 들뜬 상황을 회상했다.

레오 14세 교황이 선출된 뒤 다음날인 9일(현지시각), 바티칸 성직자부 청사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난 유 추기경은 지난 7∼8일 열린 콘클라베의 기억을 전했다. 레오 14세 교황이 발코니에서 축복을 내릴 때 다른 추기경들과 10만명 이상 모인 신도를 향해 연신 미소를 짓던 유 추기경의 모습도 화제가 됐다. 그는 “(그날) 고함과 함성이 대단하더라고요. 그러니까 크게 신나서 그럴 수밖에 없죠”라며 또 한번 웃음을 보였다.

교황으로 선출된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69) 추기경과 유 추기경은 “좋은 동료” 사이기도 했다. 유 추기경은 레오 14세 교황이 지난 2023년 교황청 주교부 장관으로 부임한 이후, 한 달에 2번 이상 회의를 하며 자주 소통할 수 있었다. 성직자부 장관으로서 주교부와 협의할 일이 많았던 유 추기경은 그와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고 좋은 관계를 이어왔다”고 전했다.

8일(현지시각) 새롭게 선출된 레오 14세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당 ‘강복의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자 콘클라베에 참여한 추기경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왼쪽에서 네번째)도 큰 미소를 짓고 있다. AFP연합뉴스

레오 14세 교황은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총장으로 일하던 2002년과 2005년, 2008년, 2010년 네 차례 한국을 찾은 인연이 있다. 유 추기경은 당시에 대해 “(레오 14세 교황은) 한국이 좋았다고 말하며 나와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추기경으로서 약 47년만에 콘클라베에 참여한 유 추기경은 자신의 경험을 일부 들려주었다. 콘클라베에 임하는 133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은 비밀 엄수 서약을 하기 때문에 자세한 투표 과정과 내용을 공개할 순 없지만, 역사적 순간에 섰던 한국의 성직자로서 기억을 나누고자 한 것이다.

지난달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한 뒤, 교황의 장례와 콘클라베 운영 등을 논의하기 위해 매일 열린 추기경단 총회는 추기경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간이 됐다. 전세계 70여개국에서 온 선거인단은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어려움이 있을 거란 예상도 많았다. 그러나 12차례의 총회에선 추기경들에게 발언 시간이 주어졌고, 오늘날 교회와 사회에 관해 각자가 가진 문제의식을 들어보며 적절한 후보를 꼽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유 추기경은 “교회가 직면한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고, 이를 해결할 분이 교황이 되는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말과 삶이 일치하는 사람인지에 관한 평가도 나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교황청은 선거인단을 위해 추기경단의 개인 사진과 약력 등이 담긴 책자도 제공했는데, 이는 향후 투표 과정에서 추기경들이 수시로 살펴보는 기초 자료가 됐다.

시스티나 경당에서 본격적인 투표를 하다보면 몇몇 후보가 두드러지고, 점차 특정 후보로 선택지가 좁혀지기도 했다. 유 추기경은 “첫번째 (투표에서) 두번째로 갈수록 더 좁혀지는 분위기가 생기고, (레오 14세 교황이 선출된) 네번째 때 확 쏠려버렸다”며 “그 순간 89표 이상이 나왔을 때 (추기경들은) 박수를 치며 야단을 쳤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투표에선 전체 선거인단의 3분의2 득표수인 89표 이상을 받은 추기경이 차기 교황으로 선출된다.

교황청은 콘클라베 기간 추기경 선거인단이 참고할 수 있도록 전체 추기경의 사진과 약력 등이 담긴 책자를 제공했다. 9일(현지시각) 바티칸 성직자부 청사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난 유흥식 추기경이 이 책자를 들고 그 의미를 설명해 주는 모습. 사진 장예지 특파원

미디어와 언론은 콘클라베를 정치와 투쟁의 장처럼 묘사하곤 한다. 하지만 유 추기경은 그런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콘클라베는) 굉장히 형제적이고, 친교적이며 아름다웠다. (외부에선) 정치적이고, 야합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런 건 없었다”며 레오 14세 교황이 선출됐을 당시 시스티나 경당은 “잔치와 축제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유 추기경은 레오 14세 교황이 산업혁명기 새 회칙을 발표해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조명했던 레오 13세의 이름을 따른 것도 주목했다. 즉위명이 정해진 뒤 유 추기경은 교황이 “사회정의에 대해 말씀을 하실 것 같았다”며 “페루 빈민가에서 오랜 시간 선교 활동을 하신 교황은 이주민들의 고통도 잘 알고 계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기 때 이민자를 막으려는 벽을 쌓았다. 그는 미국인이 교황이 돼 신이 난다고 하지만 내용을 (제대로) 봐야 한다. 교황은 평화로운 세상을 바란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뒤 유 추기경을 포함한 교황청 모든 부서 장관들의 직무는 종료된 상태다. 레오 14세 교황은 장관을 새로 임명하거나, 기존 인물을 재등용할 수 있다. 레오 14세 교황은 2027년 8월 전세계 가톨릭 청년들이 모이는 세계청년대회(WYD)를 위한 방한도 예정돼 있어 유 추기경도 역할을 다할 계획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시절 좌절된 방북이 이 대회를 계기로 추진될 수 있다는 기대도 모인다. 유 추기경은 “ 레오 14세 교황이 재신임하면 다시 업무가 시작된다”며 “교황께 업무 관련 보고를 드리는 자리에서 세계청년대회 개최에 관한 말씀을 드릴 것”이라고 했다.

바티칸/장예지 특파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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