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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현장] 레오 14세 선출
“무기 들지 않은 평화, 끈기 있는 평화” 첫 메시지
8일(현지시각) 새롭게 선출된 레오 14세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당 ‘강복의 발코니’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4만명 넘는 신도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비바 라 파파!(ViVa la Papa·교황 만세) 비바 라 파파!”

콘클라베 둘째날인 8일(현지시각) 저녁,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69)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강복의 발코니’에 등장했다. 4만명 넘는 사람들은 환희에 찬 표정으로 ‘교황 만세’를 외쳤다. 사상 처음으로 미국 출신 교황이 된 그가 선택한 즉위명은 레오 14세다.

8일(현지시각) 4번째 투표만에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 굴뚝 위에서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 올랐다. UPI연합뉴스

“평화가 모두와 함께하기를!” 뜨거운 첫 인사

열렬한 함성을 받으며 등장한 새 교황 레오 14세는 이탈리아어로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이라고 인사를 건네며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로마와 전 세계에)’라는 첫 사도적 축복을 내렸다.

레오 14세 교황은 새로 뽑힌 교황이 발코니에 등장할 때 입는 예복인 흰색 수단과 붉은색 어깨 망토인 ‘모제타’를 모두 입어 전통을 따른 복장으로 사람들 앞에 섰다. 지난 2013년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화려한 모제타 착용은 하지 않고 흰 예복만 입은 모습으로 발코니에 나왔다. 성 베드로 광장과 뒤편 대로 ‘화해의 길’을 꽉 채운 군중을 가만히 바라본 레오 14세 교황은 중간 중간 발언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레오 14세 교황이 이날 축복의 인사를 통해 전한 메시지는 ‘평화’ 였다. 그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평화의 인사가 스며들기를, 여러분의 가정에 닿기를, 모든 민족과 온 세상에 전해지기를 바란다”며 “무기를 들지 않은 평화, 무장을 해제시키는 평화, 겸손하고 끈기 있는 평화”를 기원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기 하루 전인 4월20일 부활절 강론 때 “나는 우리가 ‘평화는 가능한 일’이라는 희망을 새로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것과도 맥이 닿는다. 레오 14세 교황이 부활절 축복을 보냈던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감사함을 표했을 땐 수만명의 신자들도 함께 박수를 쳤다.

8일(현지시각) 콘클라베에서 새롭게 선출된 교황 레오14세가 성 베드로 대성당 ‘강복의 발코니’로 나와 수만명의 신도들과 방문객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사회참여 개혁가 레오 13세 참조”

세상에 처음 공표되는 교황의 즉위명은 이 이름을 선택한 교황이 교회와 사회에 처음 던지는 메시지이자, 재위 기간 이끌 가톨릭의 방향성을 모두 보여준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택한 ‘레오’는 라틴어로 사자를 의미하는데, 이 이름을 쓴 역대 교황은 사회참여적 개혁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날 발코니에서도 “다리를 놓는 교회”의 모습을 기원하며 “고통받는 이들에게 다가가길 원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256대 교황인 레오 13세(1878∼1903)는 회칙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새로운 사태)’를 발표해 산업혁명 시절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과 빈곤 문제, 국가의 역할 등을 다뤘으며, 가톨릭 사회교리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날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도 “레오 14세란 이름을 선택한 건 레오 13세를 참조한 게 분명하다”며 19세기 산업혁명 시기와 현재의 인공지능 시대 기술 사회를 연결지어 “(현 시대) 남성과 여성의 삶, 그리고 이들의 노동을 조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날 성 베드로 광장에서 만난 독일의 가톨릭 신학 박사 베네딕트 다흠(30)은 “레오 13세는 보수나 진보 중 하나로 분류되지 않는 인물이었다”라며 “이 점 역시 (교황이) 보내는 메시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출신 교황, 충격적이고 멋진 일”

미국 출신의 추기경이 처음 교황으로 선출된 것 또한 이번 콘클라베가 쓴 역사적 기록 중 하나다. 이탈리아나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추기경이 주요 후보군에 들었던 터라, 새 교황 선출을 전 세계에 알리는 ‘하베무스 파팜(Habenus Papam·우리에게 교황이 있다)’ 선언 직후 들린 낯선 이름에 짧은 침묵이 맴돌기도 했다.

그러나 레오 14세 교황이 시카고 출신의 미국인인 것이 알려지자 미국에서 온 신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자랑스러움을 만끽했다. 시카고에서 온 미국인 메리(65)는 “사실 교황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너무 기쁘고 흥분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미국인 브리짓 드류어드(21)는 “미국에서 교황이 나올 거란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약간 충격이었지만, 정말 멋진 일”이라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스웨덴에서 온 한 여행객은 “레스토랑에서 만난 미국인들은 혹시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은 아닐지 걱정했다”며 “다행히 그렇진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하더라”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레오 14세 교황은 미국 시카고에서 자랐지만 페루 교구에서 20년가량 사목 활동을 하며 페루 시민권을 얻었다. 아르헨티나의 조지 가브리엘 몬시뇰(주교품을 받지 않은 가톨릭 고위 성직자)은 미국인 교황 선출 배경을 놓고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가 늘면서 가톨릭 교회의 세도 증가하는 추세였다”며 “많은 미국인들이 바티칸에 금전적 지원을 해 온 측면도 있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가 2년 전 로마로 부른 인물”

인사를 마친 레오 14세 교황이 발코니를 나선 뒤에도 사람들은 쉽게 바티칸을 떠나지 못했다. 쓰는 말도, 생김새도, 국적도 달랐지만 한 공간에서 새로 선출된 교황을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사진을 찍고 포옹을 나눴다. 로마 공항에 내리자마자 캐리어를 들고 바티칸을 찾은 가톨릭 신자, 버스 안에서 굴뚝의 흰 연기를 보고 성 베드로 광장으로 방향을 튼 대학생, 호텔 안까지 울려 퍼진 함성 소리를 듣고 달려나온 투숙객 등 다양한 이들이 광장을 지키며 새 교황에 대한 희망을 내비쳤다.

8일(현지시각) 밤 성 베드로 광장의 불빛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교황이 선출된 역사적인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바티칸 시국에서 발행하는 신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를 받아보기 위해 수백명이 손을 뻗고 있다.

독일인 베네딕트 다흠은 “레오 14세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몇 년 전 로마로 부른 인물로, 그가 프란시스코의 길을 따를 준비가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무살 여성 클라우디아(20)는 “나는 보다 진보적인 교황의 모습을 바란다”며 “다양한 커뮤니티를 포용하는 분이면 한다”고 전했다. 카메룬의 신학생 조엘(33)은 “레오 14세 교황은 우리가 교회의 일원이란 걸 강조하며 가난한 이들을 살필 것을 강조했다”며 “사람들의 예상과 다른 인물이 선출됐다고 하지만, 이 또한 성령의 뜻이다. 그가 신의 뜻에 따라 교회를 이끌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바티칸/장예지 특파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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