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자본시장 현안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롯데손해보험(롯데손보)이 8일 자사 후순위 채권의 ‘콜옵션(미리 살 수 있는 권리·조기상환권)’ 행사 강행 의지를 밝히자 금융당국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대립 양상이 격화되고 있다. 롯데손보는 금융시장 충격을 고려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지만 금융당국은 규정을 위반했다며 롯데손보의 재무상황 평가 결과가 확정되는 대로 상응하는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오전 시장점검 회의에서 “롯데손보가 지급여력비율 저하로 조기상환 요건을 미충족함에도 일방적으로 조기상환을 추진하고 있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말했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도 오후 긴급 브리핑을 열고 롯데손보를 향해 “매우 유감”이라며 “전례가 없는 일이라 당국으로서 당혹스럽고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며 밝혔다.
전날 롯데손보는 이날로 예정됐던 9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콜옵션(조기상환권) 행사를 연기했다. 이는 금감원이 감독규정 요건 미충족을 이유로 콜옵션 행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채권은 지난 2020년 5월7일 롯데손보가 발행한 후순위채권인 ‘롯데손해보험 8(후)’다. 채권은 회계상으론 ‘부채’이지만 보험사의 후순위채권은 자본처럼 손실을 일부 흡수할 수 있어 자본으로 인정되는 ‘자본성 증권’에 해당한다.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여력비율(킥스·K-ICS)을 150%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만기가 긴 자본성증권을 발행한다. 대신 보험사가 만기와 상관없이 5년 뒤 콜옵션을 행사하는 것이 채권시장의 ‘불문율’이다. 콜옵션을 행사하면 자본이 줄어드는 만큼 그만큼 채권을 차환(재발행)해 자본비율을 유지한다. 만기는 따로 있지만 시장에선 사실상 ‘5년물 회사채’로 취급된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시장의 신뢰를 깰 정도로 재무상황이 좋지 않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롯데손보 채권은 발행한지 5년이 경과돼 콜옵션을 행사해야 했다.
롯데손보는 회사의 자금을 통해 콜옵션을 행사해 보험계약자 보호에 문제가 없고,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며 콜옵션 행사 강행 의지를 밝혔다. 롯데손보는 “채권자들과 상환을 위한 실무 절차를 거치는 중”이라며 “수일 내 상환 절차가 완료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그러나 롯데손보의 실제 재무상황이 콜옵션을 행사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봤다. 롯데손보가 콜옵션을 행사하면 지급여력 비율이 150% 아래로 떨어진다고 것이다. 금감원은 입장문에서 “롯데손보가 제출한 후순위채 조기상환 신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말 킥스는 크게 하락해 150%에 현저히 미달한다”며 “건전성이 저하된 상황에서 계약자의 보험료로 운영되는 자산으로 후순위채를 먼저 상환하는 것은 계약자 보호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관련 법규 위반”이라고 반박했다. 지난해말 롯데손보의 킥스는 154.6%로 기준을 웃돌았지만 실제론 지급여력이 크게 저하됐고 콜옵션 행사시 재무안정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수석부원장은 “롯데손보가 다른 보험사와 달리 재무적 투자자로 지배구조가 구성돼 있어서 증자하지 않고 단기적인 주주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으로 짐작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롯데손보 유상증자를 통해 미리 자본을 확충할 수 있었지만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콜옵션부터 행사했다는 것이다.
관건은 채권시장에 미치는 영향이다. 콜옵션 행사가 결국 좌초될 경우 지난 2022년 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 사태처럼 채권시장 폭락(금리 상승)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
다만 시장과 당국 모두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흥국생명의 경우엔 달러화 채권인 데다 ‘레고랜드 사태’로 시장의 유동성이 부족했던 반면 롯데손보의 경우엔 국내 발행 채권이고 채권시장 강세로 유동성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이번 사안은 개별 회사의 건전성 이슈에 불과한 만큼 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