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와 무소속 한덕수 대선 예비후보가 8일 서울 국회 사랑재 인근 야외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임현동 기자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의 8일 두 번째 회동이 한 시간 동안 평행선만 달리다 결렬됐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날 오후 5시부터 김 후보의 반발에도 여론조사에 돌입했다. 급기야 당 일각에선 단일화 결렬 시 김 후보를 당 대선 후보로 등록하지 않는 ‘미등록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단일화 갈등이 벼랑 끝까지 치닫고 있다.
두 후보는 이날 오후 4시 30분 국회 사랑재의 야외 테이블에 의자 두 개만 놓고 마주 앉았다. 두 후보의 대화는 TV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다. 사실상 양자 토론이었다.
한 후보는 “김 후보가 4월 17일부터 이달 6일까지 22번이나 저와 단일화하겠다고 약속했다”며 “단일화를 제대로 못 하면 김 후보나 저나 속된 말로 바로 가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 후보는 “한번도 단일화 안 한다고 한 적 없다”며 “한 후보가 11일까지 단일화 안 하면 후보 등록을 안 한다고 했는데, 저는 상당히 놀랐다”고 받아쳤다.
한 후보는 “제가 어떻게 청구서를 내밀겠나”라며 “단일화라는 게 저나 김 후보 중 누가 이긴다고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거듭 빠른 단일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김 후보는 “한 후보는 단일화 안 되면 선거 운동도 안 하고, 등록도 안 하겠다는 것 아닌가. 이는 단일화가 아니라 자리를 내놓으라는 것”이라고 거부했다. 이에 한 후보는 “선을 조금 넘는 말씀”이라며 “온 국민의 열화와 같은 단일화 요구가 있는데 ‘일주일쯤 보고 하자’고 할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강변서재에서 후보 단일화 관련 회동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대화는 후반부로 가면서 감정싸움으로 흘렀다. 김 후보가 한 후보를 향해 “당 지도부가 왜 한 후보를 돕나”라는 취지로 발언하자, 한 후보는 “저는 지도부와 논의해본 적도 없고, 의원 전화도 안 받는다”며 “김 후보가 마치 저와 당이 얘기해서 단일화를 진행하는 것처럼 말하면 그건 해당 행위”라고 반박했다. “자기는 입당도 안 한 상태에서…”라는 김 후보의 말에 한 후보가 “‘자기’라는 말은 비하 같다. 그렇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발끈하기도 했다.
결국 두 후보는 한 시간 만에 빈손으로 회동을 마쳤다. 김 후보는 회동 뒤 취재진과 만나 “단일화가 안 되면 후보 등록도 안 한다는 후보와 단일화하라고 정당이 나서서 온갖 불법행위를 하는 건 역사상 없는 일”이라며 “나를 후보 만들어주면 입당하고, 안 만들어주면 ‘바이(bye)바이’ 하겠다는 건 소설에서도 본 적 없다”고 비판했다. 한 후보는 “단일화는 김 후보와 제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저희에게 추동력을 주는 국민의 요구”라며 “속 시원한 해결책을 드리지 못해 국민에게 죄송하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두 후보는 회동 전에도 날선 발언을 주고받았다. 김 후보는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토론에서 “후보 등록을 안 하겠다는 사람을 상대로, 유령과 허깨비를 보고 단일화하라는 것인가”라며 “한 후보는 단일화해서 꽃가마 태워주면 입당하겠다는 것이다. 정체가 무엇인가”라고 쏘아붙였다.
반면에 한 후보는 오전 경북 구미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방문 뒤 기자들과 만나 “김 후보는 ‘내가 당을 대표하는 사람인데, 왜 마음대로 할 수 없나’라고 하는데, 구태 정치인이나 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김 후보가 전날 첫 회동 뒤 자신을 겨냥해 “후보 등록할 생각이 없는 분이 왜 대선에 나왔나”라는 취지로 말한 걸 두곤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것”이라고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권영세 비대위원장. 임현동 기자
이날 김 후보와 국민의힘 지도부도 강대강 대치를 이어갔다. 김 후보는 오전 8시 45분쯤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긴급 회견을 열고 “일주일간 선거운동을 한 뒤 14일 방송 토론을, 15~16일에 여론조사를 해서 단일화를 하자”고 제안했다. 전날 국민의힘 심야 의총에서 당 지도부가 내놓은 ‘8일 토론, 8~9일 여론조사 로드맵’을 거부한 것이다. 김 후보는 지도부를 겨냥해 “강압적 폭거, 불의” 같은 독한 표현도 썼다.
‘쌍권’(권영세·권성동)도 물러서지 않았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오전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김 후보가 단일화하라는 당원 명령을 무시한 채 알량한 후보 자리를 지키려 하고 있다”며 “정말 한심한 모습”이라고 했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11일까지 단일화 안 하면 포기하겠다는 사람(한덕수)과 11일 이후 단일화 절차를 밟겠다는 김 후보는 이재명식”이라고 했다.
이날 오후 지도부는 단일화 여론조사도 강행했다. 대선 경선처럼 당원 선거인단 투표와 역선택 방지조항을 적용한 국민 여론조사를 절반씩 합산하는 방식으로 9일까지 진행한다. 김 후보 측은 “당무우선권이 있는 김 후보를 건너뛴 일방적 여론조사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당 일각에서는 “지도부가 김 후보를 당 공식 후보로 등록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당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에 “정당이 공천을 결정했는데 경쟁력이 없거나 문제가 있으면 (미등록) 등 여러 가지를 검토할 수도 있다”며 “의원들에 따르면 지역에서 ‘이럴 거면 후보 내지 마라’는 여론이 많다”고 했다.
집안싸움은 법적 다툼으로도 번졌다. 서울남부지법에서는 이날 김 후보 측이 제기한 ‘전당대회 개최 금지 가처분 신청’ 첫 심문기일이 열렸다. 이와 별개로 김 후보 측은 대선후보 지위 확인 가처분을 신청했다. 국민의힘이 자신이 아닌 제3자에게 대선 후보 지위를 부여하면 안 된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