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여성·인권 학생 자치 기구들 설자리 잃어
고려대 여학생위·소수자인권위 징계성 합병 결정
한국외대 생활자치도서관, 학생회비 지원 끊겨
성균관대 여성주의 교지 '정정헌'은 중앙동아리서 탈락
고려대 여학생위·소수자인권위 징계성 합병 결정
한국외대 생활자치도서관, 학생회비 지원 끊겨
성균관대 여성주의 교지 '정정헌'은 중앙동아리서 탈락
고려대 서울 캠퍼스 게시판에 붙은 총학생회 규탄 대자보
[페이스북 '정대후문' 캡처. DB 및 재판매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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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오인균 인턴기자 = 대학 내 여성·인권 관련 학생 기구들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 고려대·성균관대·한국외대 등에서 해당 기구들이 잇달아 총학생회 지원금을 받는 지위를 잃었다. 정치·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냈다거나 활동이 미진하다는 이유 등에서다.
시대 변화를 반영한다는 진단과 함께 다양성과 포용성을 해치는 움직임이라는 반발도 나온다.
'고려대학교 학내인권단체협의회 활동'
['소수자인권위원회' 인스타그램 캡처. DB 및 재판매 금지]
['소수자인권위원회' 인스타그램 캡처. DB 및 재판매 금지]
고려대 총학생회 산하 특별기구인 여학생위원회와 소수자인권위원회는 지난 6일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징계성 신설 합병이 결정됐다.
여학생위원회는 기후 위기 대응·민주주의 세미나·노동절 전야제 등에 참여한 것이 설립 목적에 맞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소수자인권위원회는 학내 활동이 미비하고 외부 연대 활동이 많다는 게 문제가 됐다. 속기록에 따르면 탄핵 찬성 집회에 참석한 것을 두고 학내 인권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추궁받았다.
1991년 출범한 고려대 여학생위원회는 1989년 총여학생회가 해체된 후 설립된 기구이지만 34년 만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2017년 탄생한 소수자인권위원회도 9년 만에 통폐합을 앞두게 됐다.
다만 두 단체는 통합에 반발하며 이의를 제기할 계획이다. 총학생회는 7일 안에 재심의한 후 결과를 공표해야 한다.
앞서 1984년 서울대와 고려대에 처음 등장한 대학 총여학생회는 2000년대 들어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2019년 연세대, 2023년 서울시립대가 뒤따르면서 서울 시내 대학의 총여학생회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한양대는 총여학생회를 아직 없애지는 않았으나 2014년부터 구성되지 않고 있으며, 올해 선거도 입후보자가 없어 무산됐다.
이에 대해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생회 역할이 바뀌고 젠더 인식도 달라진 사회상을 반영한다"면서 "학생들이 공론화 과정을 거쳐 총여학생회 폐지에 이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1971년 창간한 성균관대 여성주의 교지 '정정헌'은 지난달 15일 전체동아리대표자회에서 중앙동아리 재등록이 부결됐다.
'정정헌'은 엑스(X·전 트위터) 공식 계정을 통해 지난해 활동 인원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감사가 진행됐고 2차 소명까지 했지만 결국 재등록이 부결됐다고 알렸다.
이 글에는 "학생 사회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 동아리 연합인데 여성주의를 탄압한다"('Hi_***'), "고대·외대 이제는 성대까지…대학가에 무슨 바람이 불고 있는 거야"('jet***') 등의 반응이 달렸다.
대통령 즉각 파면 촉구하며 2차 시국선언하는 한국외대 학생들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지난 3월 7일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 즉각 파면을 촉구하는 2차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5.9.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지난 3월 7일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 즉각 파면을 촉구하는 2차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5.9.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한국외대 생활자치도서관도 지난달 10일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특별기구 재인준을 받지 못했다. 그 결과 이번 학기에 학생회비를 한 푼도 받을 수 없게 됐다.
'12·3 비상계엄' 이후 생활자치도서관이 낸 성명문에 '내란수괴'라는 표현을 쓴 것이 문제가 됐다. 대표성을 가진 총학 산하 기구가 전체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극단적인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강민서 생활자치도서관장은 "학생 대표자들이 탄핵에 반대한다기보다 학생 단체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면서 "정치적 중립은 허상이며 학생이 목소리를 내고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진정한 이익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계엄사령부 자처하는 고대총학은 각성하라'
[성명문 캡처. DB 및 대판매 금지]
[성명문 캡처. DB 및 대판매 금지]
그런가 하면 지난 6일 고려대 총학 대회에서는 특별기구 감사위원회 설치가 결정됐다. 운영 계획서에는 "부정부패를 척결하며 학생사회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적혀 있다. 또 특별기구 사무실에 대한 출입·봉인이 가능하고 청문회를 열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정원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학생회비가 쓰이는 만큼 목적에 맞게 사용되는지 검증하는 것"이라면서 "효율적인 활동 보고를 위해서지 특별기구를 통제하기 위함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반발의 목소리가 나온다.
고려대 여학생위원회 측은 "입맛에 맞지 않은 활동은 못 하게 하려는 의도"라며 "성폭력 상담을 하는 여학생위원회에 감사위가 드나들고 문서를 열람하면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려대 졸업생 최낙은 씨는 7일 '계엄사령부를 자처하는 고대 총학은 각성하라'라는 제목의 온라인 성명문을 발표하고 "총학생회는 있지도 않은 '부정부패'를 명목으로 독립성을 훼손하고 있다"며 "사회 참여가 없는 대학은 직장인 양성소"라고 반발했다.
8일에는 고려대 서울 캠퍼스 게시판에 '이중 감사는 탄압을 위한 핑계일 뿐이다', '감사위 설치는 인권 후퇴' 등 총학생회를 규탄하는 대자보가 6건 게시됐다. 같은 날 총학생회를 규탄하는 연서명도 시작됐다.
대학생들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지난 3월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바라본 학교 앞 모습. 2025.5.9.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지난 3월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바라본 학교 앞 모습. 2025.5.9.
전문가들은 학생 단체의 '탈정치화'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지속한 현상이라면서도 학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생 운동이 왜소화되면서 학생 단체가 복리만 챙기는 기구로 변했다"면서 "현재 학생 갈등은 정치 양극화가 광장과 학내까지 들어온 것을 반증한다"고 짚었다.
이어 "어느 기구나 구성원의 뜻을 잘 모으는 게 민주주의 핵심인데 학생들도 서로를 돌보며 시민 의식을 키워 갔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구 교수도 "정당해산 같은 (학생단체 제재)조치에 얼마나 많은 학생 의견을 들었는지 의심스럽고 오히려 학생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면서 "탄핵 정국에서 학생들이 서로 낙인찍기보다는 의견을 모으고 사회적 참여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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