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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악몽으로 기억하는 사람들 앞에서 파생상품에 대한 긍정적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당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위기는 파생상품의 복잡한 구조, 그에 따른 위험,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금융기관과 그것을 잘 알지 못했던 투자자들의 합작품이었습니다.

하물며 투자 자체만으로도 높은 변동성 때문에 위험하게 여겨지는 디지털자산(코인)을 두고 파생상품을 이야기한다면 어떨까요? “어떻게 그렇게 위험천만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느냐” 하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위험(파생상품) 더하기 위험(디지털자산)은 더 큰 위험이니 그것은 피하는 것이 맞다는 취지일 것입니다. 실제 레버리지 거래는 투자자에게 큰 수익을 안겨줄 수도 있지만 그만큼 큰 손실의 위험도 있습니다. 2022년 디지털자산 시장 폭락 당시 글로벌 파생상품 시장에서 약 150억 달러(약 20조원)의 강제 청산이 발생하면서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나왔던 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불법의 그림자: 해외 거래소로 빠져나가는 한국 자본하지만 한국의 투자자들 다수가 이미 그 위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2024년 말 기준 글로벌 디지털자산 파생상품 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량은 1000억 달러(약 143조원)가 넘는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한국의 투자자들은 한국 기업 서비스만 이용해서는 이 시장에 정식으로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업비트, 빗썸 등 국내 주요 거래소에서는 레버리지, 선물 등 파생상품 거래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투자자 보호와 시장 안정성을 앞장세운 정부가 부정적 시각을 보이면서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한국 투자자들은 위법의 위험을 무릅쓰고 파생상품을 다루는 바이낸스, 크라켄, 바이빗 등 해외 거래소를 통해 레버리지 거래, 선물 거래 등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국 이용자들의 이런 실태는 2년 전 언론 보도에서 일부 드러난 바 있습니다. 당시 기사는 2023년 5월 기준 바이낸스의 한국 국적 이용자의 거래량 중 98%가 파생상품 거래였고 그 거래량은 약 569억 달러(현재 기준 약 81.1조원)에 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와 잠재적 수익이 모두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는 부분입니다. 외국의 미인가 거래소들이 불법적인 영업을 하면서 투자자 보호를 훼손하는 상황도 현실적으로 존재합니다.

파생상품 시장은 시장의 효율을 위해서도 존재하는 편이 유리합니다. 시장에 풍부한 유동성을 제공하면서 보다 다양한 가격에서의 거래를 성사시키며, 동시에 투자자들에게는 더욱 다양한 리스크 관리 수단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을 보유한 투자자가 단기 가격 하락을 우려한다면 선물 시장에서 헤지 포지션을 취해 자산 가치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잘 설계된 파생상품 시장은 기초자산의 가격 변동성을 최대 25%까지 감소시키는 등 현물 시장을 되레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디지털자산 시장을 통한 신금융 허브 경쟁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요. 싱가포르는 개방적이면서도 엄격한 규제 체계를 적용합니다. 당국은 허가받은 거래소만 디지털자산 파생상품을 취급할 수 있도록 승인하며 기관 및 전문 투자자를 중심으로 시장 접근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개인투자자의 접근은 제한됩니다. 일본은 디지털자산 파생상품을 금융상품으로 공식 분류하고 등록 거래소만 취급 가능하도록 하면서 내부자 거래 등은 강력하게 규제합니다. 두 나라 모두 무분별한 투기와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시장 개방과 규제의 균형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금지하지는 않습니다.
아시아 금융 허브들의 균형 잡힌 규제 접근법우리의 목표가 이들과 달라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파생상품 거래를 허용하면서 투자자 보호 장치, 시장 감시 체계 등을 명확히 하면 됩니다. 레버리지 한도 설정, 투자자 적합성 평가, 위험 고지 강화, 청산 방지 메커니즘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민관 합동 방식의 규제 친화적인 디지털자산 파생상품거래소 추진을 제안합니다. 민관 협력 모델은 추진력과 안정적인 운영을 모두 담보할 수 있습니다. 정부 감독과 지원 아래 블록체인 기술 기업, 금융 투자 전문가 등 민간의 전문성과 혁신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협력 모델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현재 글로벌 디지털자산 파생상품 시장은 외국의 대형 글로벌 거래소들이 주도하고 있지만 이들 가운데 KYC(고객 신원 확인), AML(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고 규제 당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모델은 미비합니다. 한국이 이러한 틈새를 공략하여 관이 직접 참여하는 디지털자산 파생상품거래소를 설립한다면 기관투자가를 포함한 글로벌 수요를 한국으로 유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관은 제도화를 선호하기에 시장 규모 전망도 밝습니다. 2024년 초 미국에서 첫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된 이후 1년 동안 기관투자가 보유분은 268억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전체 비트코인 현물 ETF 운용자산(788억 달러)의 4분의 1이 넘습니다. 규제 친화적인 파생상품 거래소가 한국에서 탄생한다면 현재 여러 거래소에 퍼진 파생상품 거래량을 얼마나 가져올 수 있을지 기대해봄 직합니다. 바이낸스 하루 거래량(900억 달러, 약 128조원)에서 10%만 가져와도 현재 국내 모든 코인 거래소 하루 평균 거래량 합계(약 5조원)의 2.5배가 넘습니다. 한국 디지털자산 시장은 획기적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파생상품거래소에 연계한 국내 디지털자산 거래소들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는 중요한 발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 국내 거래소는 현물 거래 수수료에만 의존하는 수익 구조를 가지는 반면, 글로벌 주요 거래소들은 파생상품 거래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전체의 50~70%를 차지합니다. 국내 거래소들이 파생상품 거래를 도입한다면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고 혁신적인 금융 상품 개발을 촉진해 글로벌 기업으로 나설 수 있습니다.
바이낸스 거래량의 10%만 가져와도6·3 대선을 앞두고 또다시 디지털자산 분야에 대한 정책 제안이 백가쟁명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예컨대 법인 투자를 허용해달라, 현물 ETF 투자를 허용해달라 등의 내용입니다. 제안하는 사람들은 때로는 산업의 성장을, 때로는 젊은층 표심 공략을, 때로는 기술 강국 중흥을 취지로 삼는데 사실 모두 이른바 ‘업계의 숙원’ 같은 것들입니다. 지난 몇 해 이 업계에 큰 진전이 없었기 때문인지 그 내용도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칼럼을 빌려 제안하는 디지털자산 파생상품 거래소는 아직 본격적으로 다뤄진 적이 없는 주제입니다. 여러 논의의 한 페이지를 채울 수 있는 내용이기를 바랍니다.

김외현 비인크립토 한국·일본 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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