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 앞두고 부정선거 음모론 재확산
선관위 대응반 가동 매일 유튜브 모니터링
악성 민원 시달려…1명이 두 달간 300건도
외부 인사 참관단 출범, 투·개표 모두 공개
선관위 대응반 가동 매일 유튜브 모니터링
악성 민원 시달려…1명이 두 달간 300건도
외부 인사 참관단 출범, 투·개표 모두 공개
지난달 23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앞에서 부정선거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강예진 기자
어린이날과 부처님 오신 날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인 이달 2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앞. '사전투표소 폐지하라' 등 손팻말을 든 집회 참가자 수십 명이 "공정 선거"를 외치고 있었다. '윤 어게인' '온리 윤'이라는 문구가 보였고 확성기를 통해 "선관위가 원하는 권력자를 뽑아 국민을 짓밟을 것"이란 과격한 발언도 나왔다. 주말·공휴일을 제외한 평일에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들이 매일 이곳에 모이는 이유는 하나. 다가올 대통령선거에서 투표 집계가 조작될 거란 의심을 품고 있어서다.
'6·3 대선'을 앞두고 부정선거 음모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하며 의혹을 일축했지만 음모론자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는 지난달 17일 선관위를 찾아 사전투표 규칙 개정을 요구하며 미수용 시 극단적 행동을 예고했다. 부정선거 규탄 집회를 이끄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부정선거부패방지대는 투표 과정을 촬영해 부정선거 증거를 확보하겠다는 주장을 펼친다. 선관위가 의혹을 해소하겠다며 지난달 10일 투·개표 절차 시연회를 마련했지만 소용없었다. 시연회에 참석한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과 박주현 변호사가 투표함 보관 과정에서 폐쇄회로(CC)TV 조작 가능성을 언급하자 김용빈 선관위 사무총장은 "보여주는 CCTV 영상도 못 믿겠다 하시면 방법이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선관위 대응반, 음모론 최전선부터 진화
제21대 대통령선거를 한 달여 앞둔 지난달 23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종합상황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무차별적인 의혹 제기를 느슨하게 방치하면 불신이 퍼져 대선 결과 불복 등 극심한 혼란으로 이어질 거란 우려가 높다. 이에 선관위도 '부정선거 의혹 대응반'을 조직해 음모론의 최전선부터 적극 진화에 나서고 있다.
6명 규모의 대응반은 업무 내내 유튜브를 모니터링한다. 특히 조회수가 높은 정치 유튜브 채널에서 부정선거 관련 주장이 제기되는지 면밀히 살핀다. 거짓 정보 영상이 확인되면 정정 자료를 신속히 작성해 언론에 배포한다. 자극적인 콘텐츠를 장시간 봐야 하는 피로감이 상당하다.
쉴 새 없이 걸려오는 민원 전화를 일일이 응대하는 것도 대응반 몫이다. "XX놈아" 등 다짜고짜 욕설부터 "너 부정 채용됐지"라는 식의 인신 공격이 비일비재하다. 30분 넘게 전화 응대를 한 뒤 업무를 이유로 양해를 구하며 전화를 끊어도 "왜 멋대로 끊느냐"고 반발해 온종일 전화기에 묶여 있는 때도 있다. 한 대응반 직원은 "두 달간 혼자 응대한 전화만 300여 통"이라며 "한 시간 넘게 비난을 듣다 보니 전화벨만 울려도 식은땀이 난다"고 털어놨다. 청사 앞 집회 참가자들로부터 물리적 위협도 받는다. 다른 직원은 차량으로 퇴근하던 길에 집회 참가자들이 보닛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며 공포에 떨었다. 확성기로 차량 번호를 부르며 "네 번호 외웠다"고 협박, 조롱하는 경우도 잦다. 대응반을 이끄는 조선희 반장은 "윤 전 대통령 파면 뒤 경찰이 상시 배치돼 청사를 지키고 있고, 선거 기간 중 방어 요원 투입도 논의 중"이라며 "직원들이 고되지만 잘못된 선거 정보를 바로잡는다는 일념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또 정당 추천인과 시민단체 인사, 교수 등 외부 인사 30명으로 꾸려진 공정선거참관단을 최초로 출범했다. 중립성을 담보하기 위해 선관위 의뢰를 받은 한국정당학회와 한국정치학회가 참관단을 구성했다. 10일 후보자 등록부터 23일 선거인명부 작성, 내달 3일 개표까지 선거 전반을 참관, 감시한다. 투·개표 절차를 모두 공개해 부정선거 의심을 불식시키겠단 취지다. 조 반장은 "참관단 운영은 역대 선거 통틀어 처음이다. 대선이 끝날 때까지 국민께 사실 관계를 정확히 알려드리겠다"고 자신했다.
터무니없는 의혹 제기에 대해선 선관위가 법적 대응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부정선거 음모론은 대선 불복을 위한 논리를 쌓는 과정에서 퍼진다"며 "거짓 정보 유포자를 공무집행방해, 허위사실 유포 등 혐의로 고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봉인지 훼손해도 투표함 멀쩡?... 부정선거 막기 위한 것"
조선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부정선거 대응반장이 지난달 23일 경기 과천 선관위 청사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총선이나 대선 등 큰 선거때마다 부정선거 음모론이 난무해 각종 의혹에 대한 '팩트체크'는 선관위의 핵심 업무가 됐다. 탄핵 정국에서 윤 전 대통령 측이 불법계엄 명분으로 부정선거를 앞세워 음모론자들의 오해가 더욱 커졌다. 한국일보는 대응반 실무 책임자인 조선희 반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각종 의혹의 사실 관계를 따져봤다.
-지난달 선관위의 투·개표 절차 시연회 때 특수봉인지를 썼는데 떼어낸 뒤 투표함에 흔적이 남지 않는 '비잔류형'이라 투표함 훼손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부정선거 의혹 제기자들은 흔적이 남는 '잔류 파쇄형 봉인지'를 써야 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부정선거 의혹 불식을 위해 비잔류형 봉인지를 사용하는 거다. 지난해 22대 총선 당시 사전투표함을 선거 당일 재사용한 적이 있는데, 봉인지 접착 성분이 조금 남아 논란이 생겼다. 이런 걸로도 오해가 생기는데 잔류형 사용은 더욱 어렵다. 선관위가 쓰는 비잔류형 봉인지는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투표가 끝나면 투표함 위에 봉인지를 붙이고 선관위 직원과 2명의 참관인이 투입구 밀봉을 확인한 뒤 봉인지 위에 서명한다. 봉인지를 뜯으면 'OPEN VOID(이미 사용됨)' 훼손 표시가 나타나 재사용은 불가능하다. 위조 봉인지가 부착돼도 필적 대조로 바꿔치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달 1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21대 대통령선거 투·개표 절차 시연회를 열었다. 투표함에 붙은 특수봉인지를 떼면 'OPEN VOID'라는 훼손 표시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선관위 유튜브 캡처
-선관위가 사전투표함 보관소에 CCTV를 달아 24시간 실시간 중계한다지만, 영상이 조작될 수도 있다는 의심도 있다.
"CCTV는 사각지대가 없도록 투표함 보관 장소마다 카메라 2대를 설치하고 있다. 녹화 시 영상 고유값 저장 및 암호화를 해서 영상자료 위·변조는 불가능하다. 또 저장 데이터베이스 위·변조 시 재생이 불가능하도록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보안규정 암호화 기술을 적용했다."
-강사 전한길씨 등은 부정선거 방지안으로 위에서 말한 잔류 파쇄형 봉인지 사용 외에 ①사전투표관리관의 개인 도장 날인(도장 날인이 인쇄된 투표용지를 쓰지 말고 투표용지마다 관리관이 일일이 도장을 찍어야 한다) ②사전투표소 지정 예약제 도입(어느 투표소에서 투표할지 예약하고 해당 투표소에서만 투표해야 한다) ③참관인 24시간 감시 ④사전투표함을 먼저 열고 본투표함은 나중에 개방 등을 주장한다.
"①사전투표관리관 도장 날인이 인쇄된 투표용지를 쓰는 건 대기시간 단축 등 유권자 편의를 위해서다. 공직선거관리규칙 제84조 3은 '구·시·군위원회 위원장이 거소투표용지에 자신의 도장을 찍거나 사전투표관리관이 투표용지에 자신의 도장을 찍는 경우 도장의 날인은 인쇄날인으로 갈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②사전에 사전투표 장소를 지정하려면 유권자로부터 미리 신고받는 절차가 신설돼야 한다. 국회에서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가능하다. ③사전투표가 끝나면 사전투표함은 구시군 선관위로 이동돼서 CCTV가 있는 보관 장소에 보관된다. 개표장으로 옮기기 전 CCTV는 실시간 공개된다. 보관 장소에서 개표장으로 투표함이 이동할 땐 정당 추천 참관인들이 동행한다. ④공직선거관리규칙 제95조의 2는 '개표소에 투표함이 도착하면 개표를 개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현행법상 개표 순서는 정해진 건 없다. 다만 민원이 많아(전한길씨 사례 등) 내부 지침상 사전투표함을 먼저 개함하도록 권장한다. 대신 개표소 이동까지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경우엔 과도한 지체를 막기 위해 본투표함을 먼저 개함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