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6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장인 경북 경주시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일정 중단을 선언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단일화를 둘러싼 국민의힘의 내홍이 점입가경이다. 김 후보는 당 지도부에 구체적 일정을 알리지 않은 채 6일 1박 2일 일정으로 영남을 찾았고, 시간이 촉박한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김 후보를 설득하기 위해 대구행 KTX에 급히 몸을 실었지만, 이를 일방적인 단일화 압박으로 간주한 김 후보는 일정을 전격 중단하고 상경하는 초강수를 뒀다.
반면에 ‘쌍권’(권영세·권성동)은 이날 오후 3시 50분쯤 대구행 KTX를 탔는데 열차 안에서 김 후보의 일정 중단 소식을 접했다. 이에 “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라는 탄식이 흘렀다. 당 관계자는 “권 위원장과 권 원내대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대전역에서 중도 하차했다”며 “일부러 대구까지 내려가 어떤 식으로든 타협점을 찾으려 했는데 김 후보가 너무 일방적이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한 후보 측도 바삐 움직였다. 당 지도부가 대구로 내려간다는 소식에 캠프 참모진은 한 후보에게 “(후보님도) 직접 내려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요청했지만, 한 후보는 부정적으로 반응했다고 한다. 대신 한 후보는 “단일화 여부는 김 후보와 국민의힘 지도부가 먼저 풀어야 할 문제다. 단일화 방식도 그쪽에 전적으로 일임한다고 하지 않았느냐”라며 “대신 흠결 있는 단일화를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한 후보 측 관계자는 “흠결 있는 단일화란 김 후보를 고의로 눌러 앉히는 단일화로 (참모진은) 받아들였다”로 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시계를 보고 있다. 권 비대위원장은 발언을 통해 한덕수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해 "어떻게든 11일까지는 완료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른쪽은 권성동 원내대표. 연합뉴스
이날 국민의힘 지도부와 김 후보 측은 계속 삐걱댔다. 김 후보는 오전 입장문을 내고 “당은 후보를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당 운영을 강행하며 공식 대선 후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8~9일 전국위, 10~11일 전당대회를 개최한 이유를 분명하게 밝혀달라”고 강조했다. 당 지도부는 전날 심야에 전국위, 전당대회 개최를 통보했었다. 김 후보 측 김재원 비서실장은 라디오에서 “김 후보는 단일화가 여의치 않으면 (전대를 통해) 김 후보를 끌어내리려는 것 아니냐고 강한 의심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저녁 8시 재개된 의총에서는 “권 위원장과 권 원내대표가 오늘 밤 김 후보를 다시 찾아 설득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고, 다른 의원들은 “그렇게 하면 지나치게 압박하는 모양새라 적절치 않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한다. 결국 이날은 권 위원장과 권 원내대표가 김 후보와 만나지 않기로 했다. 박형수 원내수석은 의총 뒤 “김 후보가 편한 시간에 참석하도록 7일 의총을 개최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6일 경북 포항시 죽도시장을 찾아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양측의 충돌에는 단일화 시점에 대한 뚜렷한 시각차가 자리 잡고 있다. 당내에선 김 후보의 강공에 11일을 넘겨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한 후보보다 인력·재정 면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고 본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전투로 치면 김 후보는 보급(정당 보조금)을 받고 싸우는데, 한 후보는 벌판에 홀로 있는 셈”이라며 “김 후보 측은 시간을 끌수록 한 후보를 고사 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후보 측 인사는 “단일화가 빠르면 좋지만, 재외 선거 전날인 19일이나 투표용지 인쇄 전인 24일까지만 이뤄져도 된다”며 “단일화는 막판에 성사돼야 효과가 큰데,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11일을 마지노선으로 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현재 원내에는 김 후보를 성토하는 의원이 더 많지만, 김 후보 곁에는 김재원 후보 비서실장, 김행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등 원외 측근 그룹이 있다.
단일화를 둘러싼 충돌이 길어지면서 별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국민의힘 인사는 “김 후보와 한 후보가 가만히 있어도, 후보 주변 인사들의 강경 발언으로 갈등이 커지고 있다”며 “결국 꽉 막힌 단일화의 키를 쥔 두 후보가 직접 매듭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가뜩이나 이재명 후보에게 지지율이 크게 밀리는 구도에서 단일화 갈등까지 길어지면서 국민의힘을 둘러싼 유권자의 피로감이 증폭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