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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상 에스케이(SK)텔레콤 대표가 지난 2일 서울 중구 에스케이티타워에서 열린 유심 정보 유출 관련 일일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완 | 산업팀장

2013년 12월19일. 미국의 대형마트 ‘타깃’의 그레그 스타인하펠 최고경영자(CEO)는 보도자료를 쓴 직원들을 불러모았다. 최대 1억1천만명의 고객 신용정보가 해킹으로 유출된 사태를 공개해야 했다. 보상과 뒷수습 등 회사 경영에 치명적인 타격이 올 참이었다. 스타인하펠이 꺼낸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그는 보도자료가 기업의 입장만을 보호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그리고 스타인하펠은 모든 타깃 고객에게 1년짜리 개인정보 도난보험을 제공하는 방안을 생각했다. 이 도난보험을 무료로 제공하는 건 엄청난 비용이 들지만 타깃은 이를 실천했다. 또 스타인하펠은 콜센터로 몰려든 고객 전화 대기 시간이 세 시간으로 길어진다는 보고를 받자 콜센터 투입 자원을 세 배로 늘렸다. 대기 시간은 8초까지 단축됐다.

타깃은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 등 기업의 사과를 분석한 책 ‘평판사회’에서 소개한 리더십 사례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을 10년 만에 다시 꺼내 든 것은 에스케이(SK)텔레콤 해킹 사태 때문이다. ‘땅콩회항 이후, 기업 경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가 책의 부제인데, 에스케이텔레콤은 과거 사례에서 많은 교훈을 얻은 것 같지 않다.

에스케이텔레콤은 지난달 22일 ‘알려드립니다’를 통해 해킹 사실을 알렸고, 25일(금)에는 유심보호서비스 가입과 유심카드 무료 교체를 안내하는 고객 정보 보호 조처를 발표했다. 유영상 에스케이텔레콤 대표는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한번 기본에 충실하고 책임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사과했는데, 사태는 주말이 지나자 일파만파로 커졌다. 28일 월요일 아침부터 에스케이 대리점 앞에는 유심을 교체하려는 가입자들이 줄을 길게 섰고, 유심보호서비스는 접속조차 어려웠다. “잠시만 기다리면 자동 접속된다”는 유심보호서비스 안내문 밑에는 대기 인원 500만명에 예상 대기 시간 139시간이라는 믿기 어려운 숫자가 떴다.

제대로 준비 안 된 사과가 더 큰 위기를 불렀다.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 1위라는 기업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동난 마스크 대란처럼 가입자들을 줄 세웠고, 이제는 명절 때 알아서 서버를 확충하는 기차표 예매 누리집보다 못한 서비스를 내놨다. 보낸다는 안내 문자메시지는 휴대전화에 도착하지도 않았다. 불안한 가입자들은 대리점으로 몰려갈 수밖에 없었다. 해킹은 회사가 당했는데 불편은 가입자 몫이었다.

외려 유심보호서비스에 가입하고 해킹 피해가 발생하면 책임지겠다는 ‘조건부’ 발표는 가입자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어떤 부가서비스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잘못한 게 있으면 책임지는 게 계약의 기본 아닌가. 에스케이텔레콤이 초반에 내놓은 발표문을 보면, 무엇을 “잘못”했다는 내용조차도 없었다.

‘평판 사회’가 일러준 위기관리 지침은 이렇다.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라. 취하고 있는 조치를 말하라. 시민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하라. 위기에 관한 해석을 제공하라. 그리고 가치를 잊지 말라.

이를 보면 알려야 했던 건 간명하다. ‘문자메시지를 한꺼번에 보내기 힘들다. 유심카드가 100만개밖에 없어 모두 교체할 수 없지만, 유심보호서비스에 가입하면 안전하다. 일시에 서비스 가입은 힘드니 순서에 따라 가입 전환할 것이고, 혹시라도 이 와중에 해킹 피해가 발생하면 회사가 보상하겠다’고 해야 했다.

신뢰를 배신당한 장기 가입자들은 이탈하기 시작했다. 위약금 면제 논란은 가입자들의 울화에 기름을 부었다. 위약금 얼마보다 서비스의 안정성을 더 따져 오래 있는 이들이었다. 이들의 실망이 지속되면 위약금 기간 만료 때마다 옮기는 단기 가입자 이탈보다 기업의 수익성은 더 크게 훼손될 것이다. 그런데도 회사는 ‘사과’와 ‘반성’의 정도를 보여주는 위약금 면제는 이사회 검토가 필요하다고 버티고 있다. 에스케이텔레콤의 2024년 사업보고서를 보면 사외이사들은 2025년 3월까지 22차례 열린 이사회에서 올라온 안건에 100% 찬성을 했다. 이랬던 에스케이텔레콤이 느닷없이 이사회 뒤에 숨어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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