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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성심당 본점에서 사람들이 빵을 고르고 있다 사진. 한국경제신문


요즘 동네 빵집이 엄청나게 늘었죠. 최근 1년 새 새로 문 연 동네 빵집은 2100여 곳에 달했어요. 이건 전년 같은 기간 1700여 곳에 비해 25%나 증가한 것이에요. 맛있는 빵이 있다면 어디든 찾아가는 ‘빵지순례’가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동네마다 실력 있는 빵집이 많아진 결과입니다.

이렇게 많이 생겨서 그런지 각 지역별로 ‘대장’ 역할을 하는 빵집은 성장에 한계를 보이고 있기도 하죠. 부산의 유명 빵집인 옵스의 경우 매출이 작년에 2.2% 감소했어요.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 5년 만에 처음 매출이 줄어든 겁니다. 대구를 대표하는 삼송빵집 매출도 지난해 4.5% 감소했고요. 요즘 이들 매장에 가 보면 긴 대기줄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어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긴 줄을 유지하는 빵집이 있습니다. 대전의 성심당, 그리고 런던베이글뮤지엄입니다. 이 두 빵집은 전혀 다른 창업 스토리를 갖고 있죠. 하지만 뜯어 보면 비슷한 점도 많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반짝 인기가 아니라 오랜 기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대전의 노포 성심당…스타트업 같은 런베뮤
두 빵집은 줄만 긴 게 아니라 실적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어요.
성심당의 운영사인 로쏘의 매출은 작년에 1900억원을 넘겼어요. 전년 대비 56%나 증가했습니다. 영업이익은 470억원가량을 거뒀는데 이 또한 52% 늘어난 것이고요. 런던베이글의 성장폭은 더 컸어요. 런던베이글의 운영사인 엘비엠의 작년 매출은 무려 121% 증가했어요. 800억원에 육박했죠. 영업이익도 두 배 가까이 늘어 240억원을 넘겼고요.

두 빵집 모두 동네 빵집의 신화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신화는 전혀 다르게 시작됐어요.

성심당은 대전의 ‘노포’입니다. 갑자기 뜬 빵집이 아니죠. 흥남 철수 때 피란민이었던 임길순이란 분이 1956년 대전역 앞 천막에서 찐빵 장사를 한 게 시작이었어요. 지금 성심당을 이끌고 있는 임영진 대표는 창업자의 아들로 2세 경영자입니다. 임영진 대표는 단순히 경영을 승계한 게 아니라 정말 동네 빵집이나 다름 없었던 성심당을 전국구 스타 빵집으로 올려 놓습니다. 지금의 성심당을 있게 한 튀김소보로나 부추빵, 그리고 망고 시루와 딸기 시루 케이크 같은 것은 다 임영진 대표 주도로 개발한 것이었어요.

이에 비해 런던베이글은 2021년 처음 설립된 스타트업 같은 곳이죠. 창업자 이효정 대표는 원래 의류 사업을 했어요. 20대 초반부터 빈티지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이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옷을 판매했죠. 20여 년간 패션 사업을 하면서 돈도 제법 벌었고 나름 성공도 했어요. 하지만 내면의 공허함은 더 커졌다고 합니다.

이 공허함을 덜어내려고 종종 한 달씩 해외여행을 갔는데요. 영국 여행 중에 들른 동네 카페에서 큰 울림이 있었다고 해요. 여러 인종의 바리스타가 고객과 스몰톡을 나누고 웃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자유롭고 생생한 삶은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대요. ‘나도 이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효정 대표는 한국으로 돌아와 패션 사업을 접고 카페를 하기로 맘먹었어요. 실제 카페도 열었고요. 그러다 베이글을 해보겠다고 나섭니다. 주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다 말렸다고 해요. 한국에선 비주류 빵이라 안 팔릴 것이라고요. 하지만 이 대표는 그래서 더 해야 하겠다는 맘이 들었대요. 남들이 쉽게 잘 안 하는 사업이니까요.

그렇게 해서 나온 게 런던베이글이었어요. 첫 매장은 서울 종로 안국점이었어요. 아침 8시에 오픈했는데 11시 반에 다 팔려서 물건이 동났다고 해요. 완전 대박이 난 것이었죠. 이후 문을 열 때마다 긴 줄이 생겼는데 그 줄은 지금도 없어지지 않고 있어요.


◆팬덤 기반 소수 매장 전략
이렇게 전혀 다르게 시작한 두 빵집이었지만 성공 비결은 비슷합니다. 우선 두 빵집 모두 가맹점 없이 소수의 직영점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성심당의 경우 대전에서만 6곳의 매장을 운영 중이죠. 성심당을 모셔가기 위해 전국의 백화점과 쇼핑몰이 줄을 섰지만 모두 거절했어요. 이건 과거 실패 경험이 뼈아팠기 때문일 겁니다. 실은 성심당도 파리바게뜨처럼 가맹 사업을 한 적이 있어요. 2000년대 초반이었는데요. 임영진 대표의 동생 분이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가맹 사업은 결국 실패로 끝났어요. 공장에서 찍어낸 빵이 소비자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거든요. 가맹 사업은 성심당의 브랜드 이미지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쳤어요. 성심당 본점까지 장사가 안됐죠. 이 일로 성심당은 부도 위기에까지 내몰렸어요. 가맹 사업을 하느라 큰 빚을 졌거든요. 이후 심기일전해서 결국 빚을 다 갚긴 했지만 이런 경험은 임 대표에게 깊이 각인됐어요.

런던베이글도 직영으로 운영하는 매장 6곳만 두고 있어요. 런던베이글 또한 신세계, 현대백화점 같은 대기업 유통사가 가장 유치하고 싶어 하는 매장인데요. 여간해선 안 들어가죠. 잠실 롯데월드타워와 수원 스타필드 정도만 입점했어요. 매장을 확 늘리면 매출이 당장은 커지긴 하겠지만 금세 흔해져 지금의 ‘힙한’ 느낌이 사그라들 수 있거든요.

전례도 있어요. 노티드가 대표적이죠. 2017년 문을 연 도넛 가게 노티드는 런던베이글 못지않게 인기를 끌었어요.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죠. 그 이유로 지목된 게 매장 수 확대입니다. 작년에만 20여 개 매장을 새로 열었어요. 작년 말 기준 총 45곳으로 매장이 늘었죠. 흔해진 노티드에 사람들은 더 이상 흥미를 잃었어요. 매출은 감소했고 긴 줄도 사라졌어요.

탄탄한 ‘팬덤’이 있었다는 것도 비슷해요. 성심당은 2005년에 큰 화재 사고를 겪었어요. 본점과 빵 공장이 전부 불탔죠. 사람들이 많이 다쳤고 설비는 다 못 쓰게 됐어요. 임영진 대표는 이때 성심당을 접을 생각까지 했다고 해요. 그런데 이 위기에서 성심당을 지켜낸 건 직원들과 대전 시민들이었어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복구 작업을 했고 중고 기계를 사서 빵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시민들이 열성적으로 성심당 빵을 사줬죠. ‘성심당을 우리가 지켜야 한다’면서요. 화재 이후 오히려 매출이 30%나 증가했다고 해요.

성심당은 설립 때부터 장사보다 나눔을 강조했던 빵집이었어요. 창업자 임길순 씨는 빵을 팔고 남으면 고아들에게 늘 나눠줬어요. 이런 정신은 후대로 이어졌죠. 성심당의 작년 기부금은 20억원으로 광고선전비의 7배에 달했어요. 지역사회와 나누고 베풀었던 게 고스란히 돌아온 것이었어요.

설립한 지 4년밖에 안 된 런던베이글도 팬덤이 있었어요. 이효정 대표는 과거 쇼핑몰을 운영할 때부터 SNS에 꾸준히 게시물을 올렸어요. 패션 감각이 남달라서 팔로워가 14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인플루언서였어요. 그동안 올린 게시물은 7700개가 넘습니다. 이효정 대표는 1973년생인데 나이를 믿기 힘들 만큼 어려보이고 스타일이 좋죠. 이효정 대표가 런던베이글의 아이콘인 셈이었어요.
이런 ‘축적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런던베이글을 열었을 때 우선 달려간 분들도 바로 이 팔로워들이었어요. 런던베이글이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난 게 아니란 겁니다.

성심당과 런던베이글이 홍보에 돈을 안 쓰는 것도 비슷해요. 성심당의 지난해 광고선전비는 3억원이 채 안 됐어요. 매출의 0.1% 수준이죠. 파리바게뜨 운영사인 파리크라상의 경우 매출의 1.3%인 780억원을 지난해 광고선전비로 썼어요. 메가커피의 운영사 앤하우스는 매출의 3.7%인 188억원을 썼고요. 런던베이글은 성심당에 비해선 많이 썼는데요. 지난해 11억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어요. 매출의 1.3% 수준입니다. 이들 두 빵집은 연예인을 앞세워 대대적인 광고를 하는 대신 고객들이 스스로 입소문을 내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줄 서고 빵 사고 인증샷을 SNS에 올리는 게 홍보죠. 소수의 직영 매장만 운영하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아요. 매장 자체가 홍보를 위한 수단이죠.

성심당과 런던베이글의 인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측하긴 힘들어요. 다른 많은 스타 빵집처럼 어느 순간 인기가 확 사그라들 수도 있죠. 특히 한국의 식품 사업은 트렌드가 굉장히 빨리 바뀌어서 인기를 유지하는 게 굉장히 어렵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심당과 런던베이글은 좀 다르다는 의견이 많은데요. 그건 그동안 보여준 나름의 철학, 혹은 고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철학을 잘 유지해서 동네를 넘어 한국, 아시아를 대표하는 빵집이 되면 좋겠습니다.

안재광 한국경제신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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