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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KBS는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고 검증하는 연속보도 <다시, 약속의 시간> 첫 순서로 '개헌'을 다뤘습니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을 거친 이번 조기 대선에서, 후보들은 한목소리로 개헌을 공약하고 있습니다. "87체제를 넘어서겠다"는 당위성엔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개헌의 목표와 내용, 시기 등 각론은 후보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세부 공약을 따져보니, 아직은 평가할 만큼 구체적이지 않은 부분도 많았습니다.

선거 때마다 언급되는 단골 공약이지만 그만큼 실패의 역사도 긴 개헌, 이번엔 다를 수 있을까요?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4년 중임제·총리 추천제"

이번 대선을 앞두고 개헌 논의의 물꼬를 틔운 건 우원식 국회의장이었습니다. 우 의장은 지난달 6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과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진행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극한 정치 갈등의 원인이 된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독식 정치구조'를 바꾸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는데, "내란 종식이 먼저"라는 더불어민주당 반발에 부딪혀 사흘 만에 제안을 철회했습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역시 개헌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가장 시급한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국민들 먹고사는 문제에 직결된 것도 아니고 좀 천천히 해도 되겠다고 생각한다”, "(취임) 100일 안에 해야 하는 다급한, 시급한 과제이냐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았다"고 재차 말했습니다.

구체적으론 내년 6월 지방선거와 2028년 총선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는 방안을 언급했습니다. "다음 임기 내에 개헌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시기에 여유를 뒀습니다.

다만, 방향성은 이전보다 구체화했습니다. "87체제가 너무 낡은 옷이 됐다"며 ▲국민 기본권 강화 ▲자치 분권 강화 ▲4년 중임제 ▲총리 추천제 ▲광주 5·18 정신 헌법전문 게재 등을 언급했습니다.

이 후보는 "헌법은 동시에 모든 조항을 바꾸는 게 바람직할지는 모르겠는데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합의되는 내용대로 순차적으로 개정해 나가면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국회 탄핵·예산삭감 막는 견제 장치 도입해야"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역시 개헌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대통령 독재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국회 독재"라며 대통령보다는 국회의 권한을 견제하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공약했습니다.

특히, 국회의 탄핵 시도와 예산 삭감, 특검 추진 등을 막을 제도가 헌법에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헌법재판관도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의결로 선출하도록 문턱을 높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경선 과정에선 '임기 단축 개헌'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국민들이 (대통령) 임기를 5년인 줄 알고 보통 뽑는데 3년밖에 안 하겠다, 이런 경우에는 상당한 정도로 국민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 본다"는 겁니다.

김 후보는 개헌 추진 일정에 대해선 특별한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즉각 개헌보다는 추후 논의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셈입니다.

■ 무소속 한덕수 예비후보 "임기 첫날 개헌 추진…3년 차 퇴임"

개헌에 가장 적극적인 건, 지난 2일 출마를 선언한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입니다. 출마 일성이 '바로 개헌'이었습니다. 임기 첫날부터 대통령 직속 개헌 지원 기구를 꾸리겠단 겁니다.

임기 1년 차 개헌안 마련, 2년 차 개헌 완료, 3년 차 대선-총선 동시 실시 뒤 즉각 퇴임이라는 시간표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다만, 개헌의 내용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공약하지 않았습니다. "국회와 국민들이 치열하게 토론해 결정하시되 저는 견제와 균형, 즉 분권이라는 핵심 방향만 제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한 후보는 자신이 정치인 출신이 아니란 점이 개헌을 추진하는 데 이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며, 강한 추진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권력을 목표로 살아온 정치인은 개헌에 착수할 수도, 개헌을 완수할 수도 없다", "공직 외길을 걸어온 제가 신속한 개헌으로 우리 헌정질서를 새로운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고 말했습니다.

■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 "필요성 공감…대선 앞두고 논의는 성급"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도 개헌의 필요성엔 적극 동의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대선을 앞두고 논의하는 건 성급하다는 신중론을 폈습니다.

이 후보 측은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적극 동의하지만, 수십 년 만에 헌법을 개정하고자 한다면 권력구조 개편뿐 아니라 수많은 사항을 함께 다뤄야만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모아 제대로 된 개헌안을 만들고, 국민들에게 동의를 얻는 과정은 대선이 끝난 뒤 시간을 가지고 차분히 세밀하게 접근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본다"고 전했습니다.


민주노동당(전 정의당) 권영국 후보와 진보당 김재연 후보도 각각 개헌 공약을 내놨습니다. 권 후보는 평시 계엄권을 삭제하는 개헌을, 김 후보는 국민 참여 개헌을 주장했습니다.

■ '87체제' 개헌, 번번이 무산…'원포인트 개헌' 해법 될까?

후보들 모두 한목소리로 개헌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문제는 '실현 가능성'입니다. 1987년 이후 여러 차례 개헌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던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개헌 이슈가 가진 파급성입니다. 소위 '국정의 블랙홀'이라고 불릴 만큼, 개헌이 논의되는 순간 많은 정책적 쟁점이 뒤에 가려지곤 했습니다. 이 때문에 임기 초반엔 개헌 추진을 주저한 대통령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임기 후반이 되면 레임덕으로 추진 동력을 얻기 어려워졌습니다. 정치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 '국면 전환용 카드'로 개헌을 활용한 사례도 있었지만, 이 경우엔 더더욱 동력이 떨어졌습니다.

'권력구조 개편' 자체가 여야 모두에 민감한 이슈이기도 합니다. 일단 집권하게 되면 권한을 스스로 내려놓기 쉽지 않고, 개헌 방향에 대해서도 여야의 정치적 셈법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개헌이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농담같이 하는 이야기로 '헌법 전문'에서 합의를 못 해서 그렇다고 한다"며 "한국에서 개헌을 생각할 때는 항상 헌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다시 쓰는 것을 생각하는데, 이건 엄격히 말하면 제정 수준"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박 교수는 "헌법을 완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쓰는 방식의 개헌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가장 시급한 게 뭔지 찾아서 '나는 딱 이것만 하겠다'고 하는 게 오히려 합의에 도달하기 쉬울 것"이라며 '원포인트 개헌'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 오히려 권력 집중 가능성…"텅 빈 슬로건 되지 않아야"

후보들이 제시한 개헌의 목표와 내용이 일치하는지도 따져봐야 할 대목입니다. 대체로 '분권'을 위한 개헌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내세운 공약은 자칫 권력 집중을 심화할 우려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4년 중임제의 경우, 대통령 권한 분산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이 8년간 지속될 수 있습니다. 사실상 '8년 단임제'처럼 여겨질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또, 초선 대통령의 최대 목표가 '재선'이 되면서 첫 번째 4년 임기 때는 선심성 공약이 난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이 기간을 선거운동처럼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해 대선과 총선의 주기를 맞추는 방안에도 권력 집중의 우려가 있습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한꺼번에 뽑으면 이른바 '후광 효과'(coattail effect)가 발생해, 유권자들이 대통령과 같은 당에 속한 국회의원을 뽑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총선이 대선의 '종속 변수'가 되는 셈입니다.

박 교수는 "대통령이 선출되는 선거와 의회가 선출되는 선거가 다른 때에 이뤄져야 대통령 권한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며 "사실 굉장히 기초적인 건데, (후보들의) 슬로건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견제하고 권력을 분산하는 건데 실제로 내놓은 안은 오히려 반대로 권력 집중으로 돼 있는 것들도 있다"고 짚었습니다.

이어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사실 개헌이라는 것도 그냥 텅 빈 슬로건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 핵심은 '권한 배분 방안'…'구체성' 띈 공약 제시해야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 배분 방안, 대통령·정부와 국회의 인사권·예산권 조정 방안 등을 놓고도 여야의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 있습니다.

KBS 공약검증 자문단에 속한 성예진 성균관대 좋은민주주의연구센터 연구원은 "'분권형 개헌'이라고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각론, 제도의 구체적인 설계의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성 연구원은 "누구와 누구의 권력을 나누게 되는지, 어떻게 나눌 것인지, 총리를 국회에서 추천하게 되면 그 방식은 어떻게 될 것이고 대통령이 어떻게 지명하게 될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지금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에는 이런 구체적인 내용이 빠져있어 평가하기 어렵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과제를 해결하는 개헌이 될 수 있을지는 '디테일'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장기적으로는 개헌 절차를 지금보다 간소화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안도 있습니다. 지금은 국회 의결에 국민투표까지 거쳐야 하지만, 이른바 '연성헌법' 체제를 갖추게 되면 바뀌는 시대 상황에 훨씬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거란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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