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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위협받는 부모 건강(상)
부모 2271명 국내 최대 규모 실태조사
4월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116차 화요집회에서 30여명의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집회 시작 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정봉비 기자


“하루를 다 살았는데 그날이 또 반복되는 거예요. 산에는 산꼭대기가 있고 마라톤에는 종점이 있는데, 우리는 어제와 오늘이 똑같아요. 죽을 때까지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것처럼.”

발달장애를 지닌 아들 요한(15)을 키우는 김은진(60)씨가 극한의 우울에 맞닥뜨리는 순간을 설명했다. 엄마 없이 냉혹한 사회에 적응할 만큼 아들이 성장하지 않으리라는 것, 그렇게 오늘처럼 내일도, 10년 뒤에도 요한이가 벌이는 크고 작은 소동을 수습하고, 세상의 이해를 구하고, 때로 싸워야 하리라는 걸 절감하는 순간이다. 이를테면 ‘미래’를 떠올릴 때다. 나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앞날을 고통스럽게 전망해야 하는 사회에서 사람의 마음은 어떤 숫자를 이룰까. 이를 시도한 연구가 나왔다.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12월 한달 동안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2271명(여성 86.5%, 남성 13.5%)을 대상으로 ‘발달장애인 부모의 돌봄 부담, 사회적 환경과 건강 실태조사’(실태조사)를 했다. 국내에서 발달장애인 부모를 대상으로 한 조사로는 최대 규모다.

‘5.4배, 15%’라는 모순된 숫자가 나왔다. 내가 없는 상황에 대비해 ‘자녀의 미래 계획’을 세우지 못한 발달장애인 부모는,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운 부모에 견줘 자살 생각을 5.4배 많이 했다. 하지만 실제 자살 시도는 미래 계획을 세운 부모의 15%에 그쳤다. 미래가 막막해 더 자주 ‘죽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를 두고 죽을 순 없다’는 마음 또한 한층 크다는 조사 결과다. 극단적인 우울과 관련해 이렇게 모순된 방향성을 보이는 인구 집단은 찾기 어렵다.

한겨레는 발달장애인 부모 10명을 심층 인터뷰해 참혹한 숫자의 배경과 해법을 함께 고민했다. 조금이나마 나아질 길은 있었고, 그 길은 ‘사랑하는 이가 겪는 차별’을 삶의 어느 순간 목도하게 될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최근 1년 자살 생각 28.5%

요한은 의뭉스러운 데가 없는 아이다. 아빠한테 친구가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엉엉 운다. 사과를 잘한다. 다만 상동 행동이 심하다. ‘꽂힌 것’에 대해 같은 말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엄마와 학교를 탓하며 등굣길 칭얼대길 멈추지 않는다.

그런 요한을 키우며 엄마 은진씨는 상반된, 그러나 납득할 수 있는 극단적 감정을 오간다. ‘죽음’을 생각했다. “아무리 가르치고 이야기를 해도 ‘리셋’이 되니까 아이한테 ‘너 죽고 나 죽자’ 모진 말도 했어요. 달리는 버스에 뛰어들면 모든 게 끝나지 않을까 생각도 했어요.”

실태조사 결과 최근 1년 동안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발달장애인 부모는 28.5%에 이른다. 평생 한번이라도 자살을 생각해본 적 있다는 국민이 14.7%(2023년 보건복지부 자살 실태조사)인 것에 견줘 크게 높은 수치다. 우연한 사망을 바라는 ‘수동적 자살 생각’까지 포함하면 상당수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위험군에 속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은진씨는 이내 “살자고 다짐한다”고 했다. “감정이 메말라서 항우울제를 잠깐 끊었다가 다시 먹었어요. 의사 선생님 말에 공감했어요.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큰 울타리가 돼줘야 하는데, (그냥 안 되면) 약을 먹어서라도 그래야 한다고.” 요한과 은진씨는 항우울제와 더불어 오늘도 살기를 택한다.

다만 하나, ‘미래’를 생각하면 마음은 다시 걷잡을 수 없이 가라앉는다. “엄마들 다 비슷할 거예요. 아이보다 하루 더 사는 게 소원이라고. 내가 없으면 누구한테 사기당해서 섬으로 갈지, 노숙자가 될지 모르잖아요.”


극단적 우울의 변수, 미래 계획

일정하고 적정한 소득원을 마련하고(재정) 살 곳을 마련하고(주거) 각종 권리를 대신 행사해줄 믿을 만한 이(후견인)를 지명하는 것은 흔히 발달장애인 자녀의 ‘미래를 위한 3종 계획’으로 불린다. 실태조사 결과 구체적으로 미래 계획을 세운 부모와 그렇지 않은 부모의 우울 양태는 극명하게 갈렸다. 자신의 사후를 대비해 자녀의 미래 계획을 전혀 세우지 못한 발달장애인 부모는, 계획을 세워둔 부모에 견줘 자살 생각을 5.39배 더 많이 한 걸로 집계됐다. 반면 미래 계획을 세워둔 부모에 견줘 실제 자살 시도를 했다는 비율은 0.15배(15%)에 그친다. 두 집단의 인원수와 부모 연령, 소득, 자녀의 중복장애 여부 등 다양한 요소를 통제하고 비교한 결과다.

중증지적장애가 있는 아들 지민(가명·24)의 엄마 정다혜(가명·54)씨도 ‘바뀌지 않을 미래’와 ‘내가 없는 미래’ 사이에서 번민한다. 다혜씨는 “죽고 싶다는 생각은 주기적으로 온다”고 했다. 다만 “사회적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내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누가 지민이를 대변할 수 있을까 그런 염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지민이 성년이 되어 학교 바깥에서 세상과 부딪치며 겪는 크고 작은 소동이 잦아지면서, 다혜씨는 한동안 잦아들었던 우울감과 혼란이 다시 커졌다고 했다.

자녀의 미래 계획을 제대로 세운 부모는 매우 드물다. 재정, 주거, 후견인 지명 세가지 분야에서 모두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놨다는 부모는 전체 조사 대상의 2.3%에 그쳤다. 과반(55.5%)은 미래 계획을 전혀 세우지 못했다고 답했다.

암담한 미래의 본질은 ‘내가 없으면 자녀를 이해해줄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사회적 고립에 대한 불안에 있다. 다혜씨가 지민이 도전 행동(공격적 행동) 조짐을 보일 때 가장 두려워하는 이유다. “도전 행동이 있는 아이들은 공공에서 사회서비스를 받는 것조차 쉽지 않아요. 그것 자체가 분명 문제이지만, 내 아이니까 엄격해지는 거죠. ‘그렇게 행동하면 누가 옆에 와서 지민이랑 있고 싶겠어’ 누누이 말해요.” 다혜씨가 덧붙였다. “지민이가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발달장애인 요한군과 엄마 김은진씨가 지난해 10월 부산 해운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은진씨 제공

기다리고 이해해줄 사람이 희망

우울감의 토로 끝에 행복했던 순간을 묻자, 지적장애가 있는 딸 예나(가명·13)를 키우는 엄마 백선영(42)씨는 ‘기다리는 모습’을 떠올렸다. “일반학교에서 통합수업을 받고 있어요. 비가 오는 날, 교문 앞에서 친구가 예나를 기다려주고 있더라고요. 옷 털어주고 우산을 잡고 같이 올라가는 거예요.”

예나는 아무 곳에서 주저앉고, 코로나 시기 때도 민감한 감각 탓에 마스크 쓰기를 힘들어했다. 그런 순간 선영씨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부끄러웠다”고 했다. 세상 온갖 곳, 모든 사람이 무서웠다. 이명증을 얻었고, 불면증약을 몇알씩 먹고도 잠 못 드는 밤이 지속됐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예나는 규범에 익숙해지고 적응할 때까지 시간이 걸려요.”

선영씨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활동을 하며 이 모든 우울이 예나 탓이어선 안 된다고 다짐했다. ‘예나와 편히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어딜 간다고 하면 부모연대 행사할 때가 제일 편해요. 눈치가 안 보여요. 발달장애는 특유의 어려움이 있다는 걸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사람만 있으면 되는 거였구나 싶은 거예요.”

쉽지 않은 일인 건 누구보다 잘 안다. 선영씨는 “특정한 잣대와 규범을 못 지키는 예나는 공공장소를 가면 일단 끄집어내야 한다. 예나를 쫓아내지 않고 기다려주려면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데 예산도 지원도 한정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선영씨는 미래의 어느 순간, 사람들도 장벽 앞에 놓인 자녀를 바라보는 장애인 부모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리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장애인이 아닌 누구라도 어떤 상황이나 공간이 불편할 수도 있고 의도대로 행동이 안 될 수도 있잖아요. 아직 장애인에게 장벽이 특히 깊고 크지만 누구나 부딪힐 수 있는 장벽이니까. 언젠가 없어질 수도 있을 거예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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