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이오와주 주도 디모인 북쪽에 위치한 인구 4천여명 소도시 햄프턴은 끝없는 평야에 둘러싸여 있다. 따뜻하고 습한 여름과 비옥한 토양 덕분에 세계 최고 수준의 옥수수·대두 생산지로 꼽힌다. 2일(현지시각) 한겨레가 찾은 에이프릴 헤미스의 농장도 끝없이 이어진 평야 가운데 있었다. 햄프턴/김원철 특파원

“아이오와 대두(콩), 세계로 향하다. 미국의 대표적인 농업 수출품.”

아이오와 대두협회의 대형 광고판이 설치된 디모인 국제공항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2시간 차를 몰면 인구 4천여명 소도시 햄프턴이 나온다. 끝도 없는 평야가 둘러싸고 있는 이곳은 따뜻하고 습한 여름과 비옥한 토양 덕분에 세계 최고 수준의 옥수수·대두 생산지로 꼽힌다. 2일(현지시각) 한겨레가 찾은 에이프릴 헤미스의 농장도 끝없이 이어진 평야 가운데 있다. 65살인 그가 트랙터에 앉아 있었다. 한해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 파종기인 만큼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 하지만 이날은 비가 와 끝내 콩을 심지 못했다. “농사는 원래 변동성이 크다”며 그는 하늘을 쳐다봤다. 40년 동안 변동성과 씨름해온 그에게도 불쑥 끼어든 이번 관세는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다. 옆 동네 농부 그랜트 킴벌리는 콩을 줄이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나은 옥수수를 더 심었다. 헤미스는 지난해와 똑같이 옥수수 60%, 콩 40%를 심기로 했다. 날씨와 시장의 변덕에, 관세까지 보태진 변동성에 대처하기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지난달 2일 ‘해방의 날’ 이후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향해 빠르게 벽을 쌓았다. 미국이 기존 관세 포함 54%의 관세를 물리자 이틀 뒤 중국이 미국산 모든 상품에 34% 보복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한달이 지났고 양국은 서로에게 100%가 넘는 관세를 부과 중이다.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미국 대두 수출은 멈춰 설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650헥타르 밭에서 옥수수와 콩을 키우는 킴벌리는 ‘올해 10월이 협상 데드라인’이라고 말했다. 10월 수확철부터 이듬해 3월까지 중국이 미국 콩을 집중적으로 수입하기 때문이다. 1차 미-중 무역 전쟁 때였던 2018년 중국은 미국산 대두 수입을 평소 2500만~3500만톤에서 1천만톤 수준까지 줄였다. 아이오와 대두협회에서 시장개발 담당 이사로도 활동 중인 그는 “중국이 줄일 수 있는 최저선이 그 정도일 것”이라며 “3분의 2가 사라진다는 의미다. 엄청난 타격”이라고 말했다.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11일부터 17일까지 한 주 동안 미국 대두의 수출 계약량은 전주 대비 50% 감소했다. 4주 평균과 비교하면 25% 줄었다. “이번 판매 감소는 관세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다른 요인은 없다.” 아이오와 주도 디모인에서 대두 수출업을 하고 있는 비자인은 수출 계약 급락의 배경은 ‘관세’뿐이라고 말했다.

2018~2019년 1차 미-중 무역 전쟁 때 미국 농민들은 270억달러(약 38조원) 매출 손실을 보았다. 이 중 71%가 콩에서 발생했다. 당시 중국은 대두 구매처를 대거 남미로 전환했다. 이후에도 중국은 미국산 콩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산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꾸준히 이어왔다. 2017년부터 2024년까지 중국의 브라질산 콩 수입은 35% 증가했지만, 미국산 콩 수입은 14% 감소했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브라질에 막대한 인프라 투자를 단행하며 대두 수입 경로도 정비했다. 최근에는 산투스 항구에 대규모 터미널을 완공했다.

헤미스는 “중국 시장이 다소 회복되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무너진 시장을 회복하려는 즈음에 2차 무역 전쟁이 찾아온 셈이다. 헤미스 농장 5분 거리에서 아버지, 형, 사촌과 2천헥타르 밭을 경작하는 샘 쇼월터는 “만약 협상이 제대로 안 되면, 심각한 재정적 타격이 올 수 있다”고 걱정했다.

미국 아이오와주 주도 디모인에서 북쪽에 위치한 소도시 햄프턴에 있는 에이프릴 헤미스의 농장. 트랙터 앞에서 헤미스가 포즈를 취했다. 65살 농부 헤미스는 400헥타르 밭을 혼자 일군다. 햄프턴/김원철 특파원

이번 싸움은 1차 때와 여러 면에서 다르다. 그때는 중국하고만 싸웠다. 피해 업종도 대체로 농업에 집중됐다. 지금은 전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 있고, 미국 대부분의 업종이 각양각색의 피해를 보고 있다. 거액의 보조금이 뿌려졌던 1차 때와 달리 보조금을 기대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쇼월터는 “어떤 농부도 보조금을 기대하지 않는다. 1차 때는 우리만 힘들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보조금이 지급되자 지대, 농자재 등 모든 비용이 올랐다. 무역 분쟁이 해결돼 그런 복잡한 상황이 안 생기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이번 관세 전쟁은 대두 생산 비용도 올렸다. 비료는 캐나다와 모로코에서, 농기계 부품은 멕시코에서, 농약은 중국에서 온다. 헤미스는 “종자, 비료, 농약 등 모든 투입 비용이 올라갔다. 콩에서 이익을 낼 수 있는 여지가 훨씬 줄었다”고 말했다.


콩은 미-중 관계를 상징하는 오래된 유산이다. 미국 대두 산업은 1982년부터 중국에 사무소를 운영했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기 훨씬 전부터 콩은 중국에 수출되던 드문 미국 상품 중 하나였다.

2000년 이후 미국의 대중국 대두 수출은 급증했다. 현재 미국 전체 수출품 중 1위가 대두인데, 그중 절반 이상이 중국으로 간다. 돼지 사육 세계 1위인 중국은 세계 최대 대두 수입국이다. 이 물량 중 5분의 1이 미국산이다. 미국 농부가 생산한 콩을 먹고 중국 돼지가 자라고, 이렇게 자란 돼지로 중국 14억 인구가 살아가는 셈이다.

특히 아이오와와 중국은 각별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월27일 음력설을 앞두고 아이오와 주민들에게 연하장을 보냈다. “40년 전 아름다운 아이오와주를 방문했을 때 여러분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중·미 양국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썼다. 1985년 허베이성 정딩현 서기였던 31살의 시진핑은 미국 농업을 배우는 사절단의 일원으로 이곳에 왔고, 당시 주지사였던 테리 에드워드 브랜스태드를 만났다. 둘의 인연은 30년 넘게 이어졌다. 6선 아이오와 주지사 출신 브랜스태드가 트럼프 1기 주중 미국대사를 지낸 배경이다.

1985년 허베이성 정딩현 서기였던 31살의 시진핑은 미국 농업을 배우는 사절단의 일원으로 아이오와를 방문했다. 당시 주지사였던 테리 에드워드 브랜스태드를 만났다. 둘의 인연은 30년 넘게 이어졌다. 머스커틴 저널 누리집 갈무리

‘미·중 디커플링’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는 아이오와와 중국의 관계, 미국 대두와 중국 축산업의 ‘윈윈’ 관계도 끝내게 될까. 농부들은 ‘미국과 중국은 이별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2012년 시진핑 당시 국가 부주석이 아이오와를 방문했을 때 자신의 농장을 방문했고, 시진핑 주석을 총 3차례나 만났다는 킴벌리는 “콩은 전 세계적으로 2~3개 나라만 대규모로 재배한다. 중국이 아무리 노력해도 콩 등 일부 식품은 자급할 수 없다”며 “농업 분야에서 디커플링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1990년 이후 중국을 9차례 방문한 헤미스도 “미국은 중국이, 중국은 미국이 필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양국은 서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대화를 하지 않을수록, 상황은 점점 나빠진다. 마주 앉아 이 상태를 해결해야 한다”며 “지금 상황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농업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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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