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노동당, 반트럼프 여론에 극적 역전승
캐나다·호주 뒤집힌 민심…결과도 ‘판박이’
캐나다·호주 뒤집힌 민심…결과도 ‘판박이’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3일(현지시간) 총선에서 승리한 후 연설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이끄는 집권 노동당이 3일(현지시간) 열린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캐나다에 이어 호주에서도 ‘반트럼프 여론’이 총선의 승부를 갈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호주 공영 ABC 방송은 4일 개표가 약 75% 진행된 가운데 노동당이 하원 150석 가운데 86석을 확보해 과반(76석)을 훌쩍 넘겨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보수 야당인 자유당·국민당 연합은 39석을 확보할 것으로 집계됐다. 자유당·국민당 연합을 이끈 피터 더튼 자유당 대표는 지역구에서 노동당 후보에 패해 24년간 이어온 의원직마저 상실하게 됐다.
앨버니지 총리는 2022년 집권 이후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앞으로도 3년간 호주를 이끈다. 2004년 총선에 승리해 2007년까지 재집권한 존 하워드 전 총리 이후 21년 만에 처음 연임에 성공한 총리라는 기록도 썼다. 앨버니지 총리는 3일 시드니에서 승리 연설을 하며 “호주 국민은 공정과 열망, 모두를 위한 기회라는 호주의 가치를 위해 투표했다”며 “호주인들은 호주식 방식으로 세계적 불확실성에 맞서기로 선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4일 개표율 75.2% 기준 호주 총선 개표 현황.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ALP)은 하원 150석 중 86석을 확보해 과반(76석)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보수 야당인 자유당·국민당 연합(L/NP)은 39석으로 집계되고 있다. 호주 공영 ABC 방송 홈페이지 갈무리
“극적인 역전승”이란 평가를 받는 이번 선거를 좌우한 요인은 ‘트럼프 효과’로 꼽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1월까지만 해도 노동당은 보수 야당에 크게 밀리는 상황이었다. 2022년 집권 후 물가 상승과 집값 폭등이 노동당의 지지율을 끌어내렸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미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역 전쟁을 시작하며 여론 지형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앨버니지 총리는 지난 2일 호주에 철강·알루미늄 10% 관세를 부과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동맹국의 행동이 아니다. 가장 큰 대가를 치르게 될 대상은 미국 국민” 등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유권자 결집에 나섰다. 반면 자유당·국민당 보수 연합은 ‘워크’(woke·진보적 가치를 강요하는 행위에 대한 비판적 용어) 반대, 공공부문 구조조정 등 트럼프 정부와 유사한 정책을 내세우다 ‘반트럼프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호주 일간 시드니모닝헤럴드 정치 칼럼니스트 숀 켈리는 “트럼프가 이번 선거의 흐름을 완전히 장악했다”며 “트럼프가 촉발한 세계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앨버니지의 지루함은 매력적인 상품이 됐다”고 평가했다. 관세 정책이 불 지핀 반트럼프 정서로 인해 유권자들이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했다는 취지다. 선거가 가까워지자 더튼 대표에겐 ‘도지(DOGE-y) 더튼’ ‘테무 트럼프’ 같은 별명이 붙기도 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3일(현지시간) 치러진 호주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투표소에 도착해 투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국 때리기’가 전 세계적으로 중도 좌파 정당에 반사이익을 가져다주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외신들은 “(호주 집권 노동당의 승리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의 자유당과 마찬가지로 트럼프에 의해 운명이 바뀐 또 다른 사례”(CNN) “처음엔 캐나다, 이젠 호주다. ‘트럼프 팩터(요인)’가 (캐나다에 이어) 또 다른 세계 지도자(앨버니지 총리)를 선거에서 띄워줬다”(월스트리트저널) 등 평가를 내놓았다.
불과 5일 전인 지난달 28일 치러진 캐나다 조기 총선에선 집권 자유당이 반트럼프 여론에 힘입어 4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바닥을 향하던 자유당 지지율이 기사회생한 데 이어, 보수당 대표 피에르 폴리에브가 2004년 이후 지켜온 의원직을 잃은 점 역시 호주 총선 상황과 ‘판박이’라고 로이터 통신은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