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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일 국회 소통관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결국 21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들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첫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냈습니다. 경제부총리, 국무총리에 이어 주미대사를 지내며 수많은 통상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왔습니다. 이 일을 가장 오래 해온 사람이고 가장 잘할 사람이라고 자신합니다.”

한 전 총리가 통상 협상을 ‘오래’ 해온 사람은 맞습니다. 그러나 “가장 잘할 사람이라고 자신한다”는 대목에선 고개를 갸웃할 이들도 있을 겁니다. 2000년 그가 지휘한 한·중 마늘 협상은 한국의 통상외교사를 배우는 이들이 두고두고 곱씹는 ‘실패한 협상’이기 때문입니다.

한 전 총리의 지울 수 없는 흑역사, 중국산 마늘 파동에 대해 간략히 살펴봅니다.

2000년 ‘한·중 마늘 파동’ 파동 당시
세이프가드 해제 담은 농산물 협상 끝
중국에 ‘항복 가까운 시장 개방’ 허용

■중국산 마늘에 ‘세이프가드’ 빼들었지만

한·중 마늘 분쟁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3년 우르과이라운드 협상 타결로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고 수년이 흐른 시점입니다. 우려했던 대로 고추, 마늘, 양파 등의 농산물 수입이 급증했는데요, 특히 중국산 마늘 수입이 급격히 늘었습니다. 1996년 2900t이던 중국산 마늘 수입량은 3년 뒤 2만2000t으로 7배 넘게 늘었습니다. 그사이 국내 마늘 가격은 30~40% 폭락했습니다.

정부는 칼을 빼들었습니다. 2000년 6월1일부터 중국산 냉동마늘과 절인마늘의 관세율을 30%에서 315%로 인상하는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한 겁니다.

중국은 즉각 보복에 나섰습니다. 같은 달 7일부터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에 대해 잠정수입 금지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조치는 그저 ‘맞대응’이 아니었습니다. 금액 면에서 50배(마늘 수입액 대비 휴대폰·폴리에틸렌 수출액)가 넘는 ‘강펀치’였습니다.

정부는 결국 중국에 협상을 요청했습니다. 그해 7월15일 타결된 협상 결과는 ‘항복’에 가까웠습니다. 중국은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는 해제키로 했습니다. 대신 중국산 마늘 3만2000t까지는 30~50%의 저율 관세를, 이를 초과하는 물량엔 세이프가드 발동에 따른 315%의 고율 관세를 물리기로 했습니다. 저율 관세를 매기기로 한 3만2000t은 전년도(1999년)의 중국 마늘 수입량(2만2000t)을 뛰어넘습니다. 본전도 못 건진 ‘타협’이었습니다.

마늘 완전 수입 자유화 담은 ‘이면 합의’
협상 2년 후 뒤늦은 논란 속 한덕수 경질
“통상 잘할 사람” 대선 출마와 다른 과거

■뒤늦게 드러난 ‘이면 합의’

마무리 되는 듯했던 한·중 마늘 갈등은 2년 뒤 다시 불거졌습니다. 애초 2000년 한국 정부가 취한 세이프가드의 시한은 2년6개월이었는데요, 농민들은 이 조치를 2006년 말까지 연장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불공정무역 피해 구제를 담당하는 무역위원회가 관련 심의에 착수할 즈음, 2000년 7월 협상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납니다. 중국산 마늘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할당량 이상 물량엔 315% 관세율 적용)는 2002년까지만 적용하고 2003년부터는 수입을 완전히 자유화하기로 중국과 합의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겁니다. 즉 세이프가드 연장은 중국과의 합의에 따라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2000년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으로서 중국과의 협상을 이끌었던 한 전 총리는 ‘이면 협상’에 책임을 지고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당시 그는 ‘은폐는 아니었다’는 취지로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당시 초미의 관심사는 3년 동안 중국산 마늘의 세이프가드 조치를 유지하면서 과연 중국이 우리 측에 취한 5억달러의 수입 보복 조치를 철폐하느냐 여부에 있었다. 3년 뒤인 2003년에 세이프가드 조치가 다시 연장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봤기 때문에 보도자료 등에 강조되지 않았다.” (2002년 7월20일 사표 제출 뒤 기자들과의 간담회)

아울러 한 전 총리는 “세이프가드 해제(연장 불가) 방침은 농림부 등 관계부처와의 합의를 거친 것”이라고도 주장했는데요, 여기에 대해선 당시 미국에 있던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이 언론사들에 e메일을 보내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세이프가드와 관련한) 중국 측 요구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농림부 차관 명의로 중국 현지 협상단에 전달했고 합의서에 이 부분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받았다. 2000년 7월15일쯤 외교통상부로부터 부속서를 팩스로 전달받았으나 외교부의 누구도 이 부분이 세이프가드 연장 불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해준 적이 없다”(김성훈 전 장관, 2002년 7월21일)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여전히 ‘미궁’이지만 한 전 총리가 통상교섭본부장으로서 부처 간 조율을 충분히 하지 못한 책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아울러 그는 협상 결과를 제대로 알리지 않음으로써 마늘 농가가 ‘마늘 수입 자유화’에 대비하지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2002년 7월22일 전국에서 상경한 4000여명의 농민들이 서울 사직공원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한·중 마늘 비밀협상 규탄집회를 갖고 정부의 보상 및 세이프가드 연장 등을 촉구하며 시위행진을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카드 있었는데 ‘저자세 협상’

전문가들은 2000년 한국이 항복하다시피 한 마늘 협상에서 우리에게 사실 ‘카드’가 없지 않았다고 평가합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한 국가의 통상 보복 조치는 ‘등가적’이어야 합니다. 금액 면에서 50배(마늘 vs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에 이르는 중국의 보복은 WTO 체제에서 허용되지 않는 행위라는 얘기입니다. 당시 중국은 WTO 가입국이 아니었지만 가입을 준비(2001년 최종 가입)하고 있었습니다. ‘WTO에 가입하려면 규범을 준수하라’고 중국을 압박할 수는 없었을까요. 어느 국제통상 교과서에서는 이런 지적이 나옵니다.

“(생략) 한국 정부는 중요한 협상카드 사용 기회를 놓친 것이었다. WTO 가입을 목전에 두고 회원국들의 여론을 두루 살필 수밖에 없었던 중국의 입장에서는 등가성 원칙 위배라는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말이다. 여러모로 한·중 마늘 파동은 한국 통상외교와 대중 외교의 아픈 상처로 남아있다.”(구민교, ‘국제무역의 정치경제와 법’)

기자의 시각에선 “세이프가드 조치가 다시 연장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봤다”는 한 전 총리의 발언(협상 은폐 논란에 대한 해명)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는 사안을 “초미의 관심사”(중국의 휴대폰·폴리에틸렌 보복조치 철회 등)와 “중요성이 떨어지는 문제”(중국산 마늘 수입 자유화)로 나누고 있습니다. 물론 상대국과 무언가를 주고받아야 하는 협상에서 ‘양보’의 우선순위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통상 협상 테이블에 오르는 의제 다수는 누군가의 생계가 걸려 있기에 가볍게 여겨선 안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양보했다 하더라도 국내 이해 관계자들에게 알려 철저히 대비토록 했어야 합니다.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봤기 때문에 보도자료 등에 강조되지 않았다”고 눙치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 전 총리는 자신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 적임자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통상 전문가’로서 자신을 내세우려 한다면, 과거 실패한 협상에 대한 해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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