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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들의 초상 l 건설노동자 나재필씨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 ‘그 일’의 세계
정진영 작가가 생성형 인공지능(AI)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에 “건설 현장에서 안전모와 작업복을 착용하고 자재를 운반하는 50대 한국인 남성 노동자의 모습을 수채화처럼 그려줘”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이다.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내 아버지는 평생 ‘노가다’로 불리는 막노동으로 밥벌이했다. 성인이 되기 전부터 국민연금을 받는 지금까지, 반세기에 가까운 긴 세월 동안 아버지는 전국의 수많은 건설 현장에서 일해온 현역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버지가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고충을 겪는지 잘 몰랐다. 아버지가 내게 단 한번도 자기 일을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퇴근한 아버지의 몸에선 늘 땀에 전 냄새와 나무 냄새가 진동했다. 퇴근 복장은 회사에 다니는 다른 아버지들처럼 말끔했는데, 왜 몸에서 그런 냄새가 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가끔 어느 아파트와 백화점을 본인이 지었다는 말을 해줬는데, 왜 우리 집은 단칸방이나 반지하이고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는 일이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몸에 파스 냄새가 떠나지 않을 정도로 힘들게 일하는데, 왜 하루가 멀다 하고 술에 취해 귀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일이 안전하진 않다는 사실만을 몇몇 경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깨달았을 뿐이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생이었던 시절에 일하다가 검지 일부를 잃었다. 그때 아버지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공부 열심히 해라. 그때야 비로소 나는 아버지의 직업이 막노동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훗날 어머니의 빈소에서 상주로서 맞절했던 아버지의 여러 동료 중에도 손가락이 모자라는 사람이 적지 않아 놀랐다.

한때 편집국장, 이젠 건설 현장 3년째
몸을 쓰는 ‘정직한 밥벌이’란 자부심
“먹는 일, 싸는 일, 쉬는 일 가장 힘들어”
‘노가다’로 삶 일군 내 아버지 삶도 이해

나의 막노동 일지 l 나재필 지음, 아를(2023)

아버지의 일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때는 그보다 훨씬 오랜 세월이 흐른 뒤다. 2023년 말, ‘나의 막노동 일지’라는 산문집을 읽었다. 저자 나재필(57)씨는 30년 가까이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했다. 이달의 편집상, 한국편집상 등 굵직한 상을 여러차례 받았던 능력 있는 편집기자였다. 데스크를 거쳐 ‘기자의 꽃’이라고 불리는 편집국장 자리에도 앉아봤다. 떠밀리듯 사표를 냈어도 기자로서 나름 한가락 해봤으니 어떻게든 살아질 줄 알았다. 세상은 마음만 청춘인 그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돈 들어갈 곳은 많은데 돈 들어올 곳은 없었다. 식당 주방보조를 비롯해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표류한 끝에 그가 닿은 곳은 막노동 현장이었다. 나는 그가 쓴 산문집을 통해 아버지가 평생 일해온 막노동 현장을 어깨너머로 들여다볼 수 있었고, 아버지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음을 알게 됐다. 그의 목소리로 아버지에게서 듣지 못했던 막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봄비가 내리던 지난 4월의 어느 날 오후, 충북 청주시 청원구 율량동에 있는 한 고깃집에서 나씨를 만났다. 가까운 대기업 건설 현장에서 일한다는 그는 이날 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쉬게 됐다며 삼겹살과 소주를 주문했다. 그는 예전엔 입이 짧아 삼겹살을 몇점 먹지 못했는데, 요즘에는 돌아서면 삼겹살이 생각난다며 내게 소주를 권했다. 차갑게 목을 타고 빈속으로 들어간 소주가 찌르르 울었다. 예사롭지 않은 솜씨로 삼겹살을 굽던 그가 입을 열었다.

“올해가 막노동을 시작한 지 3년째입니다. 평균 수명이 여든을 훌쩍 넘는데, 한가지 직업으로 평생 밥벌이하긴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평생 적어도 세가지 직업은 거쳐야 하는 세상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막노동을 잠시 거쳐 가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하나의 당당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시작한 뒤 단 한번도 마음대로 일을 빼먹은 적도 없고요.”

막노동은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막노동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한민국 사회가 막노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진 않기 때문일 테다. 심지어 막노동 현장을 ‘인생 막장’이나 모이는 곳으로 치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세간의 인식 때문에 막노동하는 사람이 자기 일을 누군가에게 구구절절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내 아버지가 평생 그랬듯이.

‘나의 막노동 일지’는 막노동자가 직접 경험한 막노동 현장을 담은 귀중한 기록이다. 편견과 무례함은 대체로 무지에서 온다. 조금이라도 상대방의 처지를 알고 이해하면, 쉽게 편견을 가지거나 무례해질 수가 없다. 나씨는 자기가 막노동을 바라봤던 인식도 세간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반성하고, 막노동판에서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며 경험한 현실과 그 안에서 찾은 희망을 담담한 필치로 보여준다.

“2022년 가을쯤입니다. 처음에 아내에게 노가다를 시작한다고 말했을 때 반신반의하더군요. 평생 책상머리에서 일해온 사람이 늦은 나이에 몸을 쓰는 일을 하겠다고 나서니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돈이 필요했고, 더 고민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일단 막노동 현장에서 필요한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부터 취득했죠.”

처음에 나씨는 막노동을 시작하는 사람이 대개 그러하듯 인력 중개 사무소부터 찾았다. 새벽부터 인력 중개 사무소로 나와 일거리를 찾다가 비 때문에 허탕을 치고 빈손으로 귀가하는 날도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대기업 반도체 건설 현장을 알게 돼 이력서를 넣었고, 다행히 신체검사를 통과했다. 타지에서 낯선 사람과 같은 숙소를 쓰는 일상이 쉽지 않았지만, 인력 중개 사무소를 거치는 건설 현장과 비교해 안전하고, 날씨가 어떻든 출퇴근만 하면 일당이 나오니 벌이도 좋았다. 나씨는 그곳에서 단 한번도 결근하지 않고 반년을 버텼다. 술기운이 오른 나씨의 얼굴 위로 오래전 타지에서 몇달 동안 일하다가 귀가했던 아버지의 붉게 탄 얼굴이 겹쳐졌다.

나재필씨가 건설 현장에서 일할 때 신는 안전화.

“비계(높은 곳에서 공사할 수 있게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 팀에서 양중(건설 자재를 옮기는 작업) 일을 했습니다. 처음 며칠이 고비였습니다. 온몸이 쑤셔서 아침에 일어나는 일조차 힘겨웠으니까요. 그래도 참고 버티니 어느새 몸이 적응하더군요. 관리자가 일이 서투른 저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볼 땐 하루에도 수십번씩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보면 곧 그만둘 사람이 누군지 알겠더라고요. 저는 그런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돈이 필요했고요. 절실했습니다.”

나씨의 일상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바쁘고 규칙적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 식사를 간단히 챙겨 먹는다. 5시50분에 집을 나서서 오토바이를 타고 현장에 도착하면 6시10분쯤 된다. 6시50분에 모든 현장 노동자와 함께 몸을 풀기 위해 국민 체조를 한다. 막노동 현장의 일과는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요즘에 그는 현장에서 필요한 전기를 공급하는 케이블을 포설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금 팀에서는 일한 지 10개월 정도 됐는데, 꽤 오래 버틴 축이란다.

“건설 현장에선 전기를 써야 하는 작업이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작업 전에 케이블 포설이 필수입니다. 도면에 따라 정확하게 작업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장에서 쓰는 케이블은 보통 전선과 달리 매우 두껍고 무겁습니다. 업무 강도가 세서 작업을 마치고 나면 온몸이 뻐근해집니다. 제가 이 팀에서 일하는 동안 저보다 젊은 친구 여러명이 스치는 인연으로 지나갔어요. 마치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거대한 배의 노를 젓는 죄수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든 적도 있습니다. 그만큼 급여도 다른 작업보다 센 편이어서 보람도 있고 견딜 만합니다.”

일과 중 점심시간과 휴식 시간을 제외한 8시간을 1공수(현장 근무시간을 모두 채우면 쳐주는 일당)라고 부른다. 여기에 저녁 7시까지 연장 근로를 하면 0.5공수를, 밤 10시까지 야간 근무를 하면 1공수를 더 쳐준다. 하루 일당이 15만원이라면, 야간 근무까지 해서 2공수를 뛰면 30만원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야간 근무를 반기는 사람도 많단다. 나씨는 막노동 현장이 윗사람 눈치 볼 일도 없고, 승진 경쟁도 없으며, 일한 만큼 투명하게 대가를 지급하는 합리적인 공간이었다고 고백했다.

“아버지는 평생 농사를 지으며 땅을 일궜습니다. 어렸을 땐 아버지의 직업을 농부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웠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그런 생각이야말로 부끄러운 생각이었습니다. 이제 저도 아버지처럼 새벽부터 일어나 몸으로 일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온종일 먼지를 뒤집어써가며 치열하게 일하다 보니 마음 깊은 곳에서 정직하게 밥벌이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생기더군요. 두 아들에게 일렀습니다. 누가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라고 물으면 막노동한다고 솔직하게 말하라고.”

나씨에게 일하면서 가장 힘들 때가 언제인지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나를 숙연하게 했다. 먹는 일, 싸는 일, 쉬는 일……. 산업재해가 일상이었던 과거보다 노동 환경이 안전해졌다지만,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은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단다. 아버지는 오랜 세월 막노동을 하면서 자식에게 차마 말하기 어려운 부끄러운 일을 많이 겪었겠구나. 가슴 한쪽이 쓰렸다.

“보통 함바(건설 현장 안에 지은 간이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는데, 그러지 않을 땐 가까운 편의점 외엔 대안이 없습니다. 식탁이 없으니 대충 바닥에 주저앉아 먹고, 심지어 화장실 근처에 앉아 먹기도 합니다. 정말 불편한 건 배설입니다. 현장에 마련된 화장실이 많지 않아요. 화장실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는 일이 다반사인데, 대변이 급하면 정말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 듭니다. 사람들이 막노동을 존경해주기를 바라진 않습니다. 그저 일하면서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눈치 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나씨가 지금 일하는 건설 현장은 오는 10월에 완공한다. 그다음에는 다른 현장을 찾아야 밥벌이할 수 있다. 운이 좋아 일이 끊기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여서 언제까지 몸이 버텨줄지 알 수 없다. 그는 건설 현장에서 받아줄 때까지 막노동으로 밥벌이를 계속하면서 이후의 삶에 관해 고민해볼 생각이란다. 아직까진 충분히 현장에서 버틸 만하단다. 몸을 부지런히 쓰면서 과거보다 오히려 더 건강해졌단다.

“조선소에서 오랜 세월 일했던 숙련공, 회사 부도 후 편의점 창업 자금을 모으던 중년 가장, 고향에서 식당을 열 준비를 하던 청년, 농한기에 놀지 않으려는 농부……. 현장에서 일하며 여러 지역에서 온 다양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막노동은 인생 막장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발판이었습니다. 제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일할 수 있고, 나를 받아주는 곳이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

정진영 l 장편소설 ‘도화촌기행’으로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침묵주의보’, ‘젠가’,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왓 어 원더풀 월드’ 등을 썼다. 백호임제문학상을 받았다. 월급사실주의 동인.
정진영 작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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