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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미를 이용한 자동차 충돌시험 모습. 사진 한국교통안전공단
여러 가지 자동차 충돌시험 장면을 보면 차내 좌석에 사람을 대신해 인형들이 놓여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 인형들은 충돌 때 이리저리 구르고 부딪히며, 온갖 위험을 온몸으로 보여주곤 하는데요. 얼핏 보면 의류점에 있는 마네킹과도 유사합니다.

하지만 ‘더미(dummy)’로 불리는 이 인형은 의상 전시용 마네킹과는 말 그대로 차원이 다릅니다. 더미에는 자동차 충돌시험 때 부위별 충격 정도를 계측할 수 있는 장치들이 곳곳에 설치돼 있습니다.

이 계측 데이터를 확인하면 충돌 때 머리, 목, 허리, 피부 등 인체의 특정 부위에 어떤 충격이 가해질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데요. 이를 통해서 운전자와 탑승자, 보행자의 안전을 보다 강화하는 장치 등의 개발이 추진됩니다.

가격도 상당히 비싼데요. 최소 1000만원대에서 최대 10억원을 넘는 것도 있습니다. 국내외 자동차 제작사는 물론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처럼 각종 차량의 안전테스트와 인증을 담당하는 기관에서도 더미는 필수품입니다.



76년 전 최초 더미 ‘시에라 샘’
자동차안전연구원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더미가 최초로 등장한 건 76년 전인 1949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에라 샘(Sierra Sam)’이란 이름이 붙은 더미로 미국 공군 전투기의 비상탈출용 좌석 시험을 위해 처음 사용됐다고 하는데요.
최초의 더미로 알려진 '시에라 샘'. 출처 위키백과

이전까지 미 공군의 시험에는 자원자들을 중심으로 사람이 직접 참여했으며, 시험 때마다 참가자들이 각종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 등 부작용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를 대신해 개발된 것이 시에라 샘인데요.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던 자동차업계도 1950년부터 시에라 샘을 본뜬 자동차 충돌시험 전용 더미인 VIP 시리즈를 제작해 본격적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동차업계에선 언제부터 충돌 실험을 해왔을까요. 일반적으로 1899년 2월 영국 런던에서 자동차 탑승자 2명이 목숨을 잃은 교통사고가 계기가 됐다고 하는데요.
세계 최초의 자동차 탑승자 사망사고 모습. 출처 한국교통안전공단

앞서 자동차에 부딪혀 보행자가 숨진 사례는 몇몇 있었지만, 탑승자가 사망한 경우는 처음이다 보니 자동차 제조사들로서도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체, 살아있는 동물로 충돌 실험
그래서 자동차 제조사들은 부족한 안전장치에 대한 연구를 위해 실제 상황과 같은 충돌시험을 하게 됐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충돌이 운전자와 탑승자에게 어떤 충격을 주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고민이었습니다.

사람을 직접 태우기는 너무 위험했기 때문에 결국 찾은 방법이 해부용 시체인 ‘카데바(Cadavers)’였는데요. 카데바를 운전석에 태워 각종 시험을 진행했으며, 충돌 뒤 신체 부상 정도를 알기 위해 주로 몸에 상처가 없는 백인 남성의 시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체를 이용하는 건 비윤리적이라는 비난이 일면서 중단됩니다. 이후 대체품으로 찾아낸 게 살아있는 동물로 사람과 체구가 비슷한 침팬지나 덩치 큰 곰, 가격이 싸고 구하기 쉬운 돼지 등이 사용됐다고 하는데요.
더미는 자동차와 보행자 간 충돌시험에도 이용된다. 사진 한국교통안전공단

이 역시 윤리적 문제로 논란이 일었고, 그 해결 방법으로 개발된 게 시에라 샘을 선두로 한 더미입니다. 성능이 제한적이었던 초기 모델에서 진일보한 더미가 1971년 미국의 자동차 제조사인 제너럴모터스(GM)가 개발한 ‘하이브리드 1’인데요.

키 178cm, 무게 78kg으로 미국 성인 남성의 평균 체격과 비슷한 ‘하이브리드 1’은 내구성이 훨씬 높고, 실제 사람의 척추와 허리뼈 같은 골격계를 잘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신형 더미 가격 13억원 달해
더미는 하이브리드 2, 3시리즈를 거듭하며 성인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어린이·영유아용까지 제작됐는데요. 현재 사용되는 더미 중 최신형은 ‘토르(Thor)’입니다.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천둥과 전쟁·농업의 신인 토르와 같은 이름인데요.

토르는 목 부위에 사람의 근육과 비슷한 저항이 추가됐고, 센서도 기존(50개)보다 훨씬 많은 125개가 설치돼 더욱 정밀한 충격 측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또 베이지색 고무로 만든 인조 피부로 사고 발생 때 피부에 생기는 상처의 정도까지 측정할 수 있는데요. 복부 등 다양한 부위에 충격 측정 센서를 장착해 피부의 상해, 출혈량, 신경계 손상 여부, 뇌의 상태까지 확인 가능하다고 합니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이 보유한 충돌시험용 더미들. 강갑생 기자

한 해 평균 100회가량의 충돌시험을 하는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도 토르와 하이브리드 3 등 다양한 종류의 더미 45세트를 보유하고 있는데요. 용도에 따라 정면·측면·후방충돌용 등으로 구분되며, 성인 남성은 물론 어린이·고령자·임신 여성 더미도 있습니다.

대부분 더미의 가격은 본체만 3억이고, 측정 센서를 포함하면 5억원을 넘는다고 하는데요. 신형 더미인 측면충돌용 THOR(표준 남성)는 무려 13억원에 달합니다. 참고로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더미는 27종, 170세트 규모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구원 관계자는 “신형일수록 최신 센서 덕에 생체충실도(인체 유사성)가 높고, 계측부위가 많으며 데이터 취득장치가 더미 내부에 내장된 형태”라고 설명합니다.



충돌 뒤 부품 바꿔 계속 사용
반면 구형 더미는 계측부위가 많지 않고, 데이터 취득장치가 따로 분리돼 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시험 때 더미 내 센서와 데이터 취득장치를 잇는 연결선을 여럿 꽂아야 합니다.

더미는 세계적으로 미국 회사(Humanetics, 휴머네틱스사) 제품이 가장 널리 사용되며 일부 더미는 독일과 스위스, 일본회사에서도 제작한다는 설명입니다.

어린이 더미. 데이터측정장치와 연결할 선들이 여럿 보인다. 강갑생 기자
그럼 충돌시험에 사용돼 손상된 더미는 폐기처분을 할까요. 답은 “아니다 ”입니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의 경우 1992년에 처음 더미를 도입한 이후 지금까지 폐기한 더미는 없다고 하는데요.

연구원 관계자는 “더미는 특성상 일정 횟수 시험이 완료될 경우 부품 교체 및 교정시험을 통해서 계속 사용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또 자동차안전도평가(NCAP)나 자동차안전기준 개정으로 용도가 다한 더미는 전시용으로 쓴다고 하네요.

앞으로도 인간을 대신해 자동차 탑승자와 보행자 보호를 위한 각종 충돌시험에 나서게 될 더미의 성능과 기능이 어디까지 발전할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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