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장기조직기증원 추모 공간에 유족 편지 1만2천여건
일상에서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선뜻 쓰지 않는 말들…소소한 일상 나눠
수증자들 "늘 감사하면서 살겠다", "큰 사랑 잊지 않겠다" 다짐


사랑의 장기기증 서약서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봄이 무르익는 5월은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이들에게는 유독 시린 계절이다.

세상은 5월에 '가정의 달'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이들은 온전했던 때로 가정을 되돌릴 수 없다.

유족들의 시간은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난 그날에 멈췄고, 가까스로 삶을 살아가더라도 부지불식간에 떠오르는 함께한 기억 때문에 제자리에 멈춰 가슴을 부여잡는다.

고인의 장기 기증을 선택한 유족들은 그의 일부나마 이 세상에서 잘살고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사무치는 그리움을 견뎌낸다.

4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이달 3일 현재 기증원 홈페이지의 '추모공간'에는 유족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들에게 쓴 편지 1만2천여건이 쌓여있다.

기증원은 장기 및 조직의 기증 활성화를 위해 그들의 숭고한 뜻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의 수정을 거쳐 편지 내용을 활용할 수 있게 공개했다.

가족들이 쓴 편지에는 온통 '사랑한다', '보고 싶다'는 말이 담겼다. 평범한 이들이 언제든 마주 보고 할 수 있는 말이면서도, 선뜻 잘 쓰지 않는 말들이다.

2013년 1월 31일에 쓰인 첫 번째 편지는 '고맙다, 좋은 일을 하고 떠나서. 그리고 정말 많이 사랑한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자신을 '엄마'라고 밝힌 글쓴이는 "어젯밤 조용히 내리는 빗소리에 섞여 네 발소리가 들리는 듯 해서 잠이 깨 한참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네가 올 수 없음에 허망해하며 날밤을 새우고 하루 종일 무엇에 쫓기듯 허둥대다가 이 글을 쓴다"며 "보고 싶다, 정말 보고 싶다. 고맙다. 좋은 일을 하고 떠나서. 그리고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남겼다.

5월이 되자 잔인한 봄을 한탄하는 이들도 많았다.

한 엄마는 "따듯한 날씨, 싱그러운 나뭇잎들, 눈 부신 햇살이 엄마 가슴을 또 아프게 한다"며 "푸른 오월에 바라보는 하얀 꽃은 슬프게만 보이는구나"라고 슬퍼했다.

또 다른 엄마도 "열심히 바삐 살던 직장인들은 긴 연휴 시작이라고 계획들을 세우고 하는구나. 너도 그랬을 텐데, 긴 연휴 동안 바쁘게 다녔을 것을"이라며 "바쁘니. 꿈에서라도 얼굴 좀 보자"라고 적었다.

한 딸은 아빠를 향해 "난 아빠가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시고부터 5월이 싫어졌어"라며 "아빠한테 못 해 드린 게 너무 많아서, 그래서 아빠한테 너무나 죄송해서 5월 너무나 싫어"라고 후회했다.

수증자들의 감사 손편지
[한국장기조직기증원 홈페이지 갈무리]


유족들이 닿지 못할 편지로나마 간절히 나누고 싶은 것은 특별한 게 아닌 소소한 일상이었다.

한 딸은 아빠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써 "두릅을 따는데 아빠 생각 많이 났어. 아빠도 두릅 잘 찾잖아. 집에 와서는 엄마가 칼국수 해줬지롱"이라는 등 미주알고주알 하루를 전했다.

한 아들은 5월을 앞두고 "과수원에 복숭아꽃, 사과꽃들이 가득 피어나기 시작했어요. 밤에 물 마시러 나가면 덥다고 거실에서 주무시던 엄마 모습이 떠올라서 아무도 없는 집에서 엄마를 불러봐요"라며 "오늘 밤에는 제 꿈에 나와주세요. 그리고 저를 보듬어주세요. 엄마의 아들은 아직도 어린아이일 뿐이네요"라고 썼다.

이들의 가슴 아픈 이별 덕분에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된 수증자들은 감사함을 표하며 기증자 몫까지 더 건강하게 살 것을 다짐했다.

올해 심장 이식을 받았다는 수증자 조 모 씨는 "늘 감사하면서 살겠습니다"라며 "어떤 말로도 이 고마움을 표현할 수 없어서 제가 살아가는 동안 열심히 노력하며 살겠습니다"라고 남겼다.

신장을 이식했다는 한 수증자도 "한사람이 아닌 온 가족의 삶을 다시 살게 해주신 그분의 한 없는 사랑과 희생정신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요"라며 "글로써 표현할 수 없는 그 큰 사랑을 평생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인체조직과 장기를 기증하기를 원하면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홈페이지(www.konos.go.kr)를 통해 온라인으로 등록할 수 있다.

보건소나 의료기관 등 장기 이식 등록기관을 직접 방문해 신청서를 써도 되고, 따로 작성한 신청서를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우편으로 보내도 된다.

한 번 등록했다고 해도 법적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취소할 수도 있다.

생전에 기증 의사를 문서로 작성했더라도 배우자나 직계 존·비속 등 선순위 유가족 1인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전에 기증의 뜻을 알리는 것이 좋다.

[장기조직기증희망등록증]


[email protected]

연합뉴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7859 아직도 이런 직장이 있다니, 갑질 서프라이즈 랭크뉴스 2025.05.04
47858 언니의 유서 속 마지막 한마디…"복수할거야" 동생의 분노 랭크뉴스 2025.05.04
47857 김문수·한덕수 ‘단일화’ 언제?…이재명 ‘사법리스크’ 재점화? 랭크뉴스 2025.05.04
47856 日 택시회사들 “앱미터기 배우러 왔다”… 韓 모빌리티 ‘러브콜’ 사연은 랭크뉴스 2025.05.04
47855 버핏, 은퇴선언‥"무역 무기되면 안 돼" 랭크뉴스 2025.05.04
47854 처음엔 시체 앉혔다…인간 대신 부러지는 '13억짜리 마네킹' 반전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랭크뉴스 2025.05.04
47853 [영상] ‘500㎏ 금속 덩어리’ 곧 지구에 떨어진다…위치는 오리무중 랭크뉴스 2025.05.04
47852 트럼프 취임 후 ‘41년 만에 최악 상승세’ 위기 맞은 뉴욕증시…분위기 반전 가능할까[경제뭔데] 랭크뉴스 2025.05.04
47851 [격변의 방산]③ 군사력 증강 中… 방산 공급망도 쥐락펴락 랭크뉴스 2025.05.04
47850 전국 사찰·교회 다 훑는 일정 짰다…민주당 '종교본부' 신설 랭크뉴스 2025.05.04
47849 ‘사기 혐의’로 징역형 집유 선고받은 민주당 시의원 제명 랭크뉴스 2025.05.04
47848 ‘감성 토스터기, 강남 냉장고’ 인기 옛말…프리미엄 가전 부진 랭크뉴스 2025.05.04
47847 민주, 비상의총…'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여부 논의할 듯 랭크뉴스 2025.05.04
47846 버핏 "연말에 물러나겠다" 깜짝 은퇴선언…60년 만에 버크셔 떠난다 랭크뉴스 2025.05.04
47845 젤렌스키, 사흘 휴전 거부… "러시아 연극, 참가 안 해" 랭크뉴스 2025.05.04
47844 워런 버핏, 은퇴 선언… “연말에 물러날것, 비보험 부문 부회장 CEO 추천” 랭크뉴스 2025.05.04
47843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연말에 은퇴할 것” 깜짝 선언 랭크뉴스 2025.05.04
47842 "4시간 줄 서더니 결국"…'이장우 호두과자' 기네스 매출 찍었다 랭크뉴스 2025.05.04
47841 전국, 낮 최고 17∼23도… 맑지만 강풍에 큰 일교차 랭크뉴스 2025.05.04
47840 ‘제2의 실손보험 될라’ 펫보험 평생보장 사라지고 부담 커진다 랭크뉴스 2025.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