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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위 법관들의 과거 '노동자 해고 판결' 논란
800원·2400원 횡령했다고 해고…법원 "정당"
"노조 가입 후 '표적 감사'…비 노조원과 차별"
판결 이후 공사장 전전…생계 위협 받기도
10여 년 전 800원 횡령으로 해고된 버스기사 사연이 알려지면서 "법제도가 노동자에게만 유독 가혹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성남종합버스터미널에서 승객들이 버스에 오르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 연관이 없음. 연합뉴스


10여 년 전 버스기사 두 명이 직장에서 해고됐다. 각각 800원과 2,4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에서다. 자판기 커피 몇 잔 뽑아 먹을 돈 때문에 '횡령범'이란 꼬리표가 붙게 된 두 사람은 직장은 물론 건강과 명예까지 잃었다. 노조는 두 사람이 노조 활동을 해 회사의 '표적'이 됐다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두 노동자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판사 중 한 명은 대법관(오석준 대법관)이 됐고, 다른 한 명은 헌법재판관 후보자(함상훈 부장판사)로 지명됐다. 본보는 두 노동자의 해고 과정과 이후의 삶을 들여다봤다.

잔돈 800원 안 냈다고 7년 다닌 회사에서 '해고'



소액 횡령으로 해고된 버스기사들은 이후 생계에 위협을 받았다. 서울시내 한 버스 종점에 시내버스들이 모여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 연관이 없음. 연합뉴스


전북 지역 A 운송회사에서 7년째 일하던 버스 기사 김모씨는 2010년 9월, 남원에서 전주로 가는 버스를 몰았다. 운행 전 승객들로부터 차비 6,400원을 받았는데 김씨는 6,000원만 회사에 납부했다. 김씨는 같은 달 28일에도 곡성, 남원을 거쳐 전주로 가는 버스를 운행하며 현금 6,400원을 받고는 6,000원을 납부했다. 사측은 이를 문제 삼아 김씨를 해고했다.

김씨는 현금 800원을 덜 낸 것에는 고의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당시엔 승객이 현금을 내면 버스기사 개인 돈으로 거스름돈을 주기도 해 잔돈을 회사에 납부하지 않는 관행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사측은 그런 관행이 없었다고 맞섰다. 당시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였던 오석준 대법관은 정당한 해고라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2014년 1월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회사에서 버스 운전대를 잡던 이모씨가 승객 4명에게서 받은 버스 요금 중 2,400원을 회사에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 당했다.
이씨는 횡령이 아닌 업무상 착오라고 주장했지만 회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법원에 해고무효 확인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했지만 2심 재판부는 타당한 해고라며 판단을 뒤집었다. 당시 재판장은 함 부장판사였다.

횡령범 딱지 붙고 생계 위협…"노조 탄압 목적" 주장

11일 윤석열퇴진 전북운동본부가 전북도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함상훈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함 후보자는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민사1부 재판장 시절 2,400원을 횡령한 버스 기사를 해고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연합뉴스


해고 이후 두 버스기사의 삶은 궁지에 몰렸다. 김씨는 재취업이 안돼 한동안 공사장을 떠돌며 가족 다섯 명을 부양했다. 최근에는 화물기사로 일하고 있는데 차 안에서 살다시피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씨는 해고 당시 신장투석을 받고 있었다. 투병 중 갑작스러운 해고까지 당해 생활이 크게 곤궁해졌다고 한다. 공영옥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북본부 조직국장은 "버스기사들이 당시 기억을 따올리는 것조차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노조는 두 버스기사의 해고가 '노조 탄압' 목적이었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 모두 해고 당시 민주노총 소속이었다. 김씨가 기업노조에서 민주노총으로 옮기자 사측이 버스 내부 폐쇄회로(CC)TV 등을 뒤져 거스름돈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은 영상을 찾아냈다는 게 노조 설명이다.

이씨도 민주노총 조합원인 까닭에 사측의 탄압을 받았다는 입장이다. 당시 잔돈을 미납한 버스기사가 더 있었지만 이들은 1개월 감봉이나 정직 등의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분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기사들은 민주노총 소속이 아니었다.

판결문을 보면 사측은 당시 소액 횡령도 노사 신뢰를 깨트리는 중대한 행위라고 반박했다. 해당 운수사 관계자는 입장을 묻는 본보 질의에 "오래전 일이라 당시 일했던 직원들이 모두 퇴사해 상황을 설명해주기 어렵다"고 답했다.

"접대 검사는 면죄부… 노동자에게만 가혹한 법"

오석준 대법관은 2011년 버스기사의 800원 횡령 해고는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2022년 8월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대법관 후보자였던 오석준 대법관이 발언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노동계는 고위 법관들이 유독 노동자에게만 가혹하다고 비판한다. 설령 두 버스기사의 횡령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800원, 2,400원 착복이 직장에서 쫓겨날 정도의 중대범죄는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법관들의 '이중 잣대'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800원 횡령 사건'을 판결한 오 대법관은 2013년 변호인으로부터 85만원 상당의 접대를 받은 혐의로 면직 처분된 검사에 대해선 "수위가 가혹하다"며 징계 취소 판결을 내렸다. 또 △연구용역 자금 2억7,000만 원을 횡령한 대학교수 해임 △교장 승진을 청탁하며 교육청 관계자에게 뇌물을 준 교감에 대한 파면 조치 등이 부당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한 사실이 2022년 대법관 인사 청문회 당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전호일 민주노총 대변인은 "회삿돈 수백억 원을 횡령한 기업인은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접대 검사에겐 한없이 관대한 것이 우리 법 제도의 현실"이라며 "800원, 2400원을 횡령했다며 노동자를 사회적 살인인 해고까지 해야 했는지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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