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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목 문화부장
한국영화 부진 속에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 ‘승부’는 바둑 영화가 아닌, 인생에 대한 영화다.

바둑 황제 조훈현(이병헌)의 뼈를 깎는 재기의 과정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많은 명대사 중 가장 인상적인 건, “네(이창호) 덕에 나도 많이 배운다. 나도 언제든 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이라는 조훈현의 대사다.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는 쿨함, 그리고 제자에게조차 배울 수 있다는 열린 마음. 이런 ‘패자의 품격’은 누가 더 못났나 비호감 경쟁을 하고, 깨끗한 승복을 하지 않는 정치권이 배워야 할 태도가 아닐까.

패자의 품격 보여준 ‘승부’
이병헌이 남긴 숱한 명대사
차기 대통령이 곱씹어봤으면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될 수 있는 승부의 세계에서 어디서 잘못했는지 짚어보는 복기는 반드시 필요하다. 선거에 패한 뒤 왜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는지 반성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 정치인의 말로가 어떤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연기의 신’이라 불리는 이병헌은 ‘승부’ 말고도 여러 영화에서 주옥같은 명대사를 많이 남겼다. 흥행한 영화의 명대사는 시대 정신과 공명하기에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차기 대통령이 반드시 곱씹어봤으면 하는 이병헌의 명대사를 몇 개 골랐다.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10·26 사태를 그린 영화 ‘남산의 부장들’(2020)에서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은 부마 항쟁 대응 방안을 논의하던 중, ‘박통’(이성민)에게 작심한 듯 이렇게 외친다. 야당과의 대립이 극에 달하고, 민심 또한 심상치 않은 당시, 대국적 정치가 절실했지만, 박통은 이를 거부하고 끝내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정적들을 정부 요직에 앉히고, 반대파를 설득하려 애썼던 링컨 대통령처럼 통합의 정치를 하기 위해선 야당은 물론 그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오직 각하의 심기만 살피며 “시위대를 탱크로 밀어버려야 한다”는 막말을 하는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 같은 아첨꾼은 곁에 둬선 안된다.

#“수신제국…치국…천하태평이라”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에서 아파트 주민 대표 영탁(이병헌)이 방범대 활동 중 민성(박서준)에게 이렇게 말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잘못 말한 것인데,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잔”(영화 ‘내부자들’)같은 재치 있는 애드리브다.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히 해야 천하를 평안하게 할 수 있는데, 우리 정치판에선 가족 리스크에서 자유로운 리더가 그리 많지 않다. 국가 지도자로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가족 등 주변 사람들에게 ‘박절’해야 한다. 논공행상 운운하며 한 자리 꿰차려는 가신들에게도 말이다.

#“이 동지는 어느 역사 위에 이름을 올리겠습니까?”

항일 투쟁을 다룬 영화 ‘밀정’(2016)에서 의열단 단장 정채산(이병헌)이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 이정출(송강호)을 회유하기 위해 던진 말이다. 폐부를 꿰뚫는 질문에 정출은 고뇌하고, 결국 민족과 역사의 편에 선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이라면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과감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후대에 어떻게 평가받을까’라는 관점에서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대통령은 임기 내내 그런 고뇌의 순간을 맞닥뜨려야 하는 가시방석 같은 자리다. “어차피 5년 하나 3년 하나” 같은 무책임한 발언을 하는 사람이 다시는 그 자리에 앉아선 안 된다.

#“그대들이 죽고 못 사는 사대의 예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열갑절 백갑절은 더 소중하오!”

천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의 명대사다. 진짜 임금보다 더 임금 같은 광대 하선(이병헌)은 명 황제에게 수많은 공물을 바치고, 금과의 전쟁에 2만 병사를 파병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주장에 이렇게 일갈한다. 사대의 명분보다는 중립 외교로 백성을 살리겠다는 건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다. 그런 애민 정신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하는 지도자의 자세다. 단, “빼앗고 훔치고 빌어먹을지언정 살려야겠다”는 백성(국민)의 범주에는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포함해야 한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국가세력, ‘계몽’의 대상으로 몰아선 안 된다.

“귀하가 구하려는 조선에는 누가 사는 거요? 백정은 살 수 있소? 노비는 살 수 있소?”(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정의? 대한민국에 아직도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있긴 한가?”(영화 ‘내부자들’) 등도 이병헌의 명대사다. 소외된 약자들도 보듬고 함께 가는 나라, 무너진 공정과 상식의 가치를 바로 세워 국민 누구나 ‘달달한’ 꿈을 꿀 수 있는 나라. 차기 대통령이 꼭 만들어주길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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