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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트레이더 조스의 성공 공식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식료품 체인
독특한 PB 상품, 친근한 분위기 등에
직원 1인당 매출·소비자 충성도 '압도'

편집자주

내로라하는 기술 대기업이 태동한 '혁신의 상징' 실리콘밸리. 다양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지만 거주민 중 흑인 비율은 2%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화려한 이름에 가려진 실리콘밸리의 다양한 얼굴을 '찐밸리 이야기'에서 만나 보세요.
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에머리빌의 한 트레이더 조스 매장에서 한 소비자가 미니백을 구입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지난 11일 오전 7시 30분(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에머리빌의 트레이더 조스(Trader joe's) 매장. 개점까지 30분이 남은 시각이었지만 매장 앞에는 이미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몇 시에 나왔느냐'는 물음에 맨 앞에 서 있던 모녀는 "1시간 전쯤 왔다"고 말했다. 30번째쯤 뒤에 자리 잡은 기자 뒤로도 부지런히 사람들이 합류했다. 8시가 다 됐을 쯤엔 대기자가 90여 명까지 불어났다. "여기 있는 분들은 다 살 수 있으니까 걱정마세요. 천천히 순서대로 들어오세요." 8시 정각, 점원이 매장 문을 열며 외친 말에 많은 이들이 안도하며 웃었다.

이날 이들을 '오픈런'하게 만든 건
트레이더 조스가 8일 한정 출시한 2.99달러(약 4,300원)
짜리 미니 캔버스 토트백
이었다. 지난해 2월 처음 출시됐다가 틱톡 등에서 바이럴되며 품절 대란을 낳았던 이른바 '트조 미니백'의 후속 제품이다. 이번 신제품은 봄 느낌을 물씬 풍기는 분홍, 하늘, 민트, 연보라 등 네 가지 색상으로 출시됐다.

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에머리빌의 한 트레이더 조스 매장 앞에 2.99달러짜리 미니백을 구매하려는 이들이 줄지어 서서 개점을 기다리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지난해 폭발적 인기를 경험한 트레이더 조스 측은 올해는 출시 일정을 미리 공지하고 출시일에 맞춰 매장 근무 인원을 늘리는 등 만반의 대비를 했다고 한다. 대부분 매장은 인당 4개까지만 살 수 있도록 제한을 뒀다. 그리고 출시 당일, 예상대로 미니백을 사려는 사람들이 트레이더 조스 매장에 집결하며 대부분 매장에서 개점 1시간 내에 준비된 물량이 소진됐다. 이베이 등 중고품 거래 플랫폼에는 개당 최고 70달러에 판매한다는 글이 물밀듯 올라왔다. 세계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과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오픈런 인증 사진, 구매에 성공했다는 인증글과 함께 '어느 지점에 가면 미니백을 구할 수 있느냐'는 질문 글이 쏟아졌다.

기자가 오픈런에 가세한 11일에는 막바지 재고를 확보한 일부 매장에서만 미니백을 구할 수 있었다. 이날 간발의 차로 기자 앞에 선 루이스·베로니카 레예스 부부는 "두 개는 우리가 쓰고, 나머지는 조카들 선물로 줄 것"이라고 했다. "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모두가 갖고 싶어 하고 이번이
아니면 영원히 살 수 없는 물건이라서
"라고 이들은 덧붙였다. 인근 대학에 다니는 저우밍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되팔기만 해도 이득이라서 사러 왔다"고 말했다. 매장 직원 해나는 "매일 사러 오는 손님도 있다"며 "3년째 근무하고 있는데 이런 인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에머리빌의 한 트레이더 조스 매장에서 직원 해나가 한 소비자에게 미니백을 건네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트조 미니백은 저렴하고 귀엽지만 소재, 디자인이 특별하다거나 실용성이 뛰어난 제품은 아니다. A4용지보다 작은 크기는 장바구니로 쓰기에는 너무 작고 도시락 가방 정도로 적당하다. 시중의 다른 캔버스백들과 다른 부분이자, 미국인들을 이른 아침부터 줄 세우는 이 가방의 비결은 하나. 가방 위에 적힌 '트레이더 조스'라는 글자다.
미니백 열풍은 트레이더 조스 브랜드에 대한
미국인들의 높은 충성도를 보여주는 사건
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트레이더 조스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식료품점 중 하나다. 매장 수는 월마트(약 4,700개)나 프레드 마이어 등을 운영하는 크로거그룹(약 2,700개)보다 현저히 적은 약 560개뿐인데 단위 면적당, 직원 1인당 매출은 가장 높다. 다른 브랜드들과 차별화되는 트레이더 조스만의 독특함 덕이다.

8일 출시돼 미국 전역에서 품절 대란을 일으킨 트레이더 조스의 캔버스 미니백. 트레이더 조스 홈페이지


트레이더 조스는 미국에만 있다. 이 때문에
미국 방문객 사이에서 반드시 찾아야 할 관광 명소
로도 꼽힌다. 작가 줄리 아버백은 '트레이더 조스의 예술'이라는 저서에서 트레이더 조스를 이렇게 정의했다. "트레이더 조스는 미국 식료품점계의 디즈니랜드다. 화려한 제품 포장, 매장 곳곳의 수작업 일러스트, 시식 코너,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모든 것이 고객의 오감을 자극한다."

식료품 업계의 공식을 거스르다



트레이더 조스는 1958년 조 쿨롬이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문을 연 '프론토 마켓'이라는 편의점이 시초다. LA 인근 먼로비아에 본사를 두고 있고, 그래서 LA 일대에 가장 많은 매장을 두고 있다. 실리콘밸리 일대에는 LA 다음으로 가장 많은 매장이 있다. 전체 매장의 30% 이상이 캘리포니아에 포진해 있다. 이 때문에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트레이더 조스를 그냥 슈퍼마켓이 아닌 지역 문화의 일부로 인식한다.

2023년 출시돼 미국 전역에서 품절 대란을 일으킨 3.99달러짜리 한국산 냉동 김밥. 손 글씨로 적은 듯한 가격표가 눈에 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설립자 쿨롬은 당시 미국의 소매 경험이 일부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너무 획일화돼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에
다양한 취향을 가진 소비자들을 위해 세계 각국의 식재료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파는 것을 목표로 첫 매장을 열었다
. 매장 외관은 1960년 전후 미국에서 유행하던 남태평양 스타일을 반영해 꾸몄다. 이를 통해 단순히 식료품을 파는 것을 넘어 이국적인 '경험'을 주는 공간이 되고자 했다. 1967년 당시 유명했던 남태평양 레스토랑(트레이더 빅스)의 이름을 본떠 지금의 이름으로 브랜드명을 바꿨고, 본격적인 체인화를 시작하며 전국으로 뻗어 나갔다.

트레이더 조스는 식료품업계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광고를 하지 않고 △세일이나 쿠폰이
없으며 △멤버십 프로그램도 운영하지 않는다. 할인이 없는 대신 대부분 제품이 저렴한 편이다.
다른 식료품점이 많게는 4만 개 이상의 제품을 두고 파는 것과 달리, △트레이더 조스의 제품 수는 4,000개 정도다. 수많은 상품 중 자체적으로 엄선한 제품만 비치해 소비자의 고민을 줄여준다. 아울러 △어느 매장에서건 흔히 볼 수 있는 셀프 계산대도 이곳엔 없다.

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한 트레이더 조스 매장에서 한 소비자가 미니백을 구입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단순 상품이 아닌 '경험'을 판다



트레이더 조스의 정체성이자 인기 비결 중 하나는 자체 브랜드(PB) 상품이다. 트레이더 조스 매장은 대부분 이곳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PB 상품은 중간 거래상을 거치지 않고 생산자와 직접 계약하고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이라 품질 대비 가격을 저렴하게 유지할 수 있다. 2023년 트레이더 조스가 출시해 전국적 품절 대란을 불렀던 3.99달러짜리 한국산 냉동 김밥이 대표적인 예다. 높은 PB 상품 비율은 인기 없는 제품은 빠르게 제거하고 신제품을 채워 넣는 방식의 탄력적인 매장 운영을 가능케 한다. 이전 방문 때 구입한 제품이 다음 번에는 없는 경우가 트레이더 조스에서는 흔하다.

트레이더 조스 PB 상품들은 제품 이름과 포장이 독특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베이글 등에 뿌려 먹는 시즈닝의 이름은 '베이글을 제외한 모든 것'(Everything but the bagel sesame)이고, 한국의 쌀과자와 맛이 거의 똑같은 과자의 이름은 '달콤짭짤 감칠맛 바삭과자'(Sweet and Salty Umami Crunchies)다.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런 제품들은 소비자의 호기심과
구매욕을 자극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경험하는 즐거움을 준다
. 트레이더 조스 신제품만 전문적으로 리뷰하는 영상 크리에이터들이 적잖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에머리빌의 한 트레이더 조스 매장에 자체 브랜드 상품들이 진열돼 있다. 상품 이름과 포장이 독특하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말로만 하지 않는 '고객 만족 최우선'



지역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매장 인테리어와 손 글씨 메뉴판도 '동네 단골집'과 같은 친숙함을 느끼게 하는 트레이더 조스만의 정체성으로 꼽힌다.

트레이더 조스는 직원 교육 때도 친근함을 중시한다고 한다. 소비자가 특정 상품 위치를 물어볼 경우 단순히 위치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해당 상품이 있는 곳까지 함께 가주는 식의 응대가 권장된다. 지난해까지 실리콘밸리 트레이더 조스에서 1년여 근무했던 정김경숙 한미사이언스 부사장은 "
1.99달러짜리 상품을 찾는 고객을 위해서 그 제품이 창고에 있는지 확인하는 데 20분을
썼다고 하면 트레이더 조스에서는 칭찬을 한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했다고 나무라지 않는다"고 한국일보에 말했다. 그는 "트레이더 조스가 특별한 건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성과 평가 기준이 일치한다는 것"이라며 "그 결과 직원들은 고객 만족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 쿨롬 설립자는 "
트레이더 조스에서 일하는 것만으로 중산층 정도의 벌이는 돼야 한다
"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트레이더 조스는 일반적인 마트 직원보다 급여가 많을 뿐 아니라 의료보험, 휴가 등 복지가 좋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고급 인력들을 트레이더 조스로 불러모으는 요인이 된다.
포브스가 최근 미국 내 근로자 21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트레이더 조스는 가장 선호하는 직장 2위에 꼽혔다
. 특히 고소득자가 많은 캘리포니아에서 1위에 꼽혔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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