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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3년 12월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춘재 | 논설위원

윤석열 내란 사건 1심 재판장인 지귀연 판사는 올해 안에 1심을 끝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지난 21일 열린 2차 공판에서 그는 한달에 3~4회꼴로 12월22일까지 이어지는 공판 일정을 잡았다. 결심 뒤 선고까지는 보통 한달 정도 걸리기 때문에 1심 재판은 빨라야 내년 1월 말에 끝난다. 증인신문이 길어져 2월 법관 정기인사 때까지 심리가 끝나지 않으면 선고는 더 늦어질 것이다.

1996년 3월11일 시작된 12·12 및 5·18 사건 1심 재판은 그해 8월26일 끝났다. ‘전두환 사형, 노태우 징역 22년6개월’이 선고되기까지 불과 169일이 걸렸다. 재판부가 변호인단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주 2회 공판을 열어 재판에 속도를 낸 덕분이었다(1심 덕분에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13개월밖에 안 걸렸다). 16년 동안 기다린 ‘성공한 쿠데타’에 대한 단죄를 하루빨리 보고 싶었던 시민들의 열망에 적극 호응한 것이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재판도 마찬가지다. 1심 재판이 2017년 5월23일 시작돼 320일 만인 2018년 4월6일 끝났다(징역 24년 선고). 재판은 1년 가까이 걸렸지만, 주 4회 공판을 진행한 강행군이었다. 증인이 무려 138명이나 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 1심 재판도 136일 만에 징역 15년 선고로 끝났다.

법원이 전직 대통령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한 것은 정치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재판이 길어질수록 법리적 쟁점보다 정치적 갈등 같은 재판 외적인 요소가 더 부각된다. 재판이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면 변호인들은 극렬 지지자들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전두환과 박근혜의 변호인들은 재판 말미에 전원 사임계를 제출했다. ‘재판부가 유죄 예단을 하고 있다’고 생떼를 썼다. 유죄 판결을 정치적 탄압의 결과로 포장하려는 전략이었다.

재판부에 대한 신뢰만 있다면 재판이 길어져도 시민들이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상식적인 판사라면 아무리 피고인 쪽에서 생떼를 써도 법리에 충실한 판결이 나올 테니까. 하지만 윤석열 재판을 주재하는 지 판사는 이미 희한한 ‘법 기술’로 변호인의 주장에 호응한 전력이 있다. 윤석열 변호인단의 생떼에 또 어떤 ‘궤변’으로 화답할지 모를 일이다. 윤석열을 구속취소 결정으로 풀어줘 구속기간(6개월) 안에 1심 재판을 마쳐야 하는 부담도 없다. 그래서 시민들은 불안하다. 지나친 기우일까.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무려 4년 넘게 1심 재판을 끌더니 47개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가 선고됐다. 사건 초기 분노한 여론에 호응하는 듯했던 재판 분위기는 중간에 재판부가 교체되면서 확 바뀌었다.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는 여론도 한몫했다. 재판부는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행정권자는 일선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으니, 애초 남용할 직권도 없다’는 알쏭달쏭한 논리로 무죄 판결했다. 대국민 신뢰 따윈 신경도 안 썼다.

지 판사가 지핀 불신의 불똥은 최고재판소로 옮겨붙고 있다. 대법원은 지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서 전례 없는 속도전을 벌인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 때 강조한 ‘6·3·3 원칙’을 솔선수범하는 취지란다. 12·3 내란 때는 쥐 죽은 듯 조용했던 최고재판소가, 내란을 막아낸 시민들이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로 꼽는 정치인의 대선 출마에 영향을 줄 사건에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지 판사에게 크게 놀란 시민들은 대법원장의 돌출행동에 또다시 마음을 놓지 못한다. 그가 취임 때 강조한 게 어디 6·3·3뿐이었나. 검찰의 무분별한 압수수색에 제동을 걸겠다며 ‘압수영장 사전(대면)심리’ 도입을 주장하더니, 검찰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친 뒤 지금은 일언반구도 없다.

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을 1심 6개월, 항소심과 상고심은 각각 3개월 안에 하라는 공직선거법 조항(270조)은 반칙으로 당선된 자의 공직 수행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를 낙선자에게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며 항소심에서 무죄가 난 사건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건 시민들의 눈에는 그저 ‘법 기술’로 보일 뿐이다. 내란 수습 과정에서 법원의 기회주의적 속성을 적나라하게 목격한 시민들이다. 정작 빨리 보고 싶은 ‘친위 쿠데타’ 단죄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최고재판소가 시민의 참정권을 방해한다면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왜 시민의 굳건한 신뢰와 지지를 받는지 대법원장은 숙고해야 한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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