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때보다 더 힘들어요."
요즘 자영업자들의 하소연입니다. 장사가 되지 않는 것도 힘든데, 불경기 속 자영업자를 두 번 울리는 사기 행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무슨 내용일까요.
■"초밥 60인분 주문합니다" …'노쇼 사기'의 진짜 목적
'노쇼 사기'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노쇼(No Show)는 물건이나 음식을 주문한 뒤 손님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이죠. 국내에선 공공기관을 사칭해 소상공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기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경찰이 노쇼 사기 사건의 유사성을 발견한 건 지난해 2월입니다. 그 이후 점차 피해 신고가 늘더니 지난해 10월쯤 신고가 폭증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4월 초까지 경찰이 집계한 신고 건수만 전국적으로 386건에 달합니다.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사기범들의 진짜 목적입니다. 사기범들은 물건을 주문하며 신뢰 관계를 쌓은 뒤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방탄복 등 기관에 필요한 물품을 도소매 업체에서 싸게 구매해달라는 겁니다. 고객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운 자영업자의 심리를 이용한 겁니다.
결국 자영업자는 이들이 알려준 업체 계좌로 현금을 보내게 되는 건데요. 이른바 '물품 대납 사기' 입니다. 왜 이런 사기를 당하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사기범들은 각종 시나리오로 피해자들을 속입니다. 또 위조된 공문이나 명함을 사용해 안심시킵니다.
아래는 피해자가 녹음한 당시 전화 통화 내용(음성변조)입니다. 사기범들은 다양한 이유를 대며 용품 도매가격 조율을 부탁했고 그 끝엔 대납을 요구했습니다. 실제 경찰에 접수된 피해 신고 386건 가운데 단순 노쇼에서 피해가 그친 경우는 105건, 대리구매 피해까지 이어진 것은 281건이었습니다.
■"교도관입니다"…누구든 사칭하고 누구든 노린다
주목할 점은 범행 초기에 비해 최근 범죄 양상이 달라졌다는 겁니다. 사칭 기관과 피해 대상 모두 다양해졌습니다. 초기엔 군 간부를 사칭해 군부대 인근 식당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요즘엔 교도관 사칭 사기가 가장 기승을 부립니다. 광주광역시와 경기도, 청주 등 교도소 인근 소상공인들의 피해 사례가 특히 늘고 있습니다. 지난 23일엔 전북 고창과 김제에서 소방공무원까지 사칭한 사례가 나왔습니다.
범행 대상도 다양해졌습니다. 가장 많이 알려진 피해 업종은 요식업이지만 그릇과 수건 등 일반 공산품 판매업부터 농기계, 울타리 설치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습니다. 또, 집중적으로 한 지역에 피해 신고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순천교도소가 있는 전남 순천에서는 지난 23일 오후에만 가구점, 식료품점 등 업체 5곳이 '교도관' 사칭 범행 시도 전화를 받았습니다. 소문이 퍼지기 전에 한 지역에서 여러 업종을 최대한 많이 공략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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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보내면 회수 어려워…피해자 보호 사각지대
경찰은 사칭 사기 범죄가 해외에 있는 전문 조직의 소행으로 보고 지난해부터 전국의 사건을 강원경찰청에 모아서 집중 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당이 해외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사용해 흔적을 남기지 않는 탓에 추적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 피해자들은 자책과 후회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피해자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미흡한 금융 피해자 구제 정책입니다. 피해자가 돈을 송금한 계좌를 지급 정지하려고 해도, 금융기관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전화금융사기, 이른바 보이스피싱 등 피해자들은 지급정지 제도를 통해 범행에 쓰인 계좌를 동결하고, 추후 피해금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 법에서 재화의 공급이나 용역의 제공을 가장한 행위는 제외하도록 하고 있어 이번 사건처럼 물품 구매를 가장한 행위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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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 전화 한 번이 피해를 막을 수 있다…대책 마련해야
사기범들의 시나리오는 변주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어떤 업종이든 사기범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서라도 전화를 걸어올 수 있습니다.
마치 보이스피싱이 진화하듯 말입니다. 의심되는 주문은 꼭 해당 기관에 확인하고, 주변에도 알리는 게 피해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국가수사본부 경제범죄수사과 최종우 경감은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승낙하지 말고 주문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대신 주문하는 경우 금액을 선입금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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