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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의 노동]④천장크레인 기사
자격·경험 쌓아 오랜 꿈 이루려 했지만
성별 이유로 취업 어렵고 직장 내 차별
새일센터 통해 마음 맞는 일터에 취업
"중장비 기사 꿈꾼다면 길 열려 있어요"

편집자주

전문적이지 않은 직업이 있을까요? 평범하고도 특별한 우리 주변의 직장·일·노동. 그에 담긴 가치, 기쁨과 슬픔을 전합니다.

전남 광양시의 한 화물운송 기업에서 천장크레인 기사로 일하는 김승주(29)씨가 크레인 조종실 내부에서 장비를 조종해 코일을 옮기고 있다. 김씨 제공


"중학교 때부터 장래희망 1순위 칸에 늘 '크레인 기사'를 적었거든요. 내가 여자라고 못할 게 있나? 할 수 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어요."

전남 광양시에서 천장크레인 기사로 일하는 김승주(29)씨는 이 직업을 택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천장크레인은 공장이나 화물 창고의 천장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대형 크레인을 말한다. 김씨는 광양시에 위치한 물류 운송 기업 주식회사 로덱스의 정규직으로, 크레인의 조종대를 조작해 제철·자동차 산업의 주 부품으로 쓰이는 대형 코일을 옮기는 업무를 맡고 있다.

지금의 일터에서 지난해 9월부터 7개월째 일하고 있다는 김씨는 "직업 만족도가 10점 만점에 10점"이라고 기쁘게 말했다. 하지만 이날에 이르기까지 그는 '남초 업계'에서 단지 어린 여성이라는 이유로 말 못할 고충을 겪었다.

"여자가 미용 일을 할 것이지"... 편견과 차별에 포기할 뻔한 꿈

전남 광양시에 위치한 물류 운송 기업 주식회사 로덱스에서 천장크레인 기사로 일하는 김승주씨의 모습. 김씨는 중학교 때부터 늘 장래희망 1순위에 '크레인 기사'를 적었다. 김씨 제공


지게차 기사로 일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김씨는 '나도 큰 기계를 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자랐다. 지금 '큰 기계'를 조종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그 꿈을 이룬 것이다.

천장크레인 운전은 2개조가 교대로 근무한다. 아침 7시에 출근하는 날엔 창고 문을 열고 코일 현황을 확인해 크레인으로 위치를 정돈해 둔다. 오전부터 코일을 싣기 위한 화물차 기사들이 오면 크레인으로 코일을 들어올려 화물차에 적재하는 일을 오후 5시까지 반복하고 퇴근한다. 오후 5시에 출근하는 날엔 마찬가지 일을 오후 10~11시까지 한다.

그는 고등학교를 실업계 기계과로 진학해 일찍이 중장비 운전에 필요한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성인이 되고는 현장 감각을 키우기 위해 크레인 운전자의 방향을 잡아주는 신호수부터 일을 배웠다. 자격과 실무 경험을 차근차근 쌓으면 당연히 기회가 올 거라 믿었다.

그러나 '남초'인 크레인 운전 업계는 여성인 김씨에게 냉혹하기만 했다. 우선 취업부터 어려웠다. 이력서를 본 업계 사람들은
"어린 여자라서 중년 아저씨들이 험하게 하는 말에 상처받을 것
같아 못 쓰겠다"
거나
"여자는 결혼하고 퇴사해버려 믿을 수가 없다"
며 하나같이 김씨를 꺼렸다. 경력을 쌓을 기회도 주지 않으면서 "경력이 없어 안 된다"는 말만 듣기 일쑤였다.

코일들이 정렬된 화물 창고 내부에 위치한 김승주씨의 천장 크레인 모습. 김씨는 이곳에서 크레인 기사로 일하게 되기까지 어린 여성이란 이유로 숱한 성차별적 발언을 들어야 했다. 김씨 제공


2년 전, 한 제조업체의 면접장에서도 면접관인 사장은 김씨가 여자란 이유만으로 난색을 표했다. 참다못한 김씨는 불쑥 "여자라고 못하는 게 어디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고 한다. 그 말에 뜻밖에도 사장이 "그럼 뽑아줄 테니 일해보자"고 입장을 바꾸면서, 김씨는 크레인 기사로 일하게 됐다.

하지만 어렵게 꿈을 이룬 김씨에게 돌아온 건 동료들의 숱한 성차별이었다.
"여자가 가정이나
꾸릴 것이지, 어디서 건방지게 남자들 일을 하느냐" "미용 일을 하지, 어차피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살 거면서 왜 굳이 남자들 일자리를 뺏느냐".
이런 믿을 수 없는 발언에 더해 성희롱까지 들었다.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던 김씨는 결국 그토록 원했던 일자리를 1년 8개월여 만에 그만둬야 했다.

새일센터 통해 다시 크레인 기사로...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어요"

김승주씨가 지금의 일터를 찾기까지 도움을 받은 전남 순천시의 순천 여성새로일하기센터(새일센터)의 모습. 센터 제공


방황하던 김씨에게 지인들은 여성새로일하기센터(새일센터)의 도움을 받을 것을 추천했다. 취업을 원하는 미취업·경력단절 여성에게 적절한 일자리를 찾도록 지원하는 여성가족부 산하 센터다. 김씨는 새일센터의 문을 두드렸고 "여성도 크레인 기사로 일할 수 있는 곳"이라며 지금의 일터를 소개받았다.

이곳에서 김씨는 더는 성차별적 발언을 듣지 않게 됐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다른 여성 기사들이 일하는 걸 보면서 미세한 차이도 예리하게 포착해 일을 해내는 면모가 강점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고된 업무 끝에 화물차 기사들이 찾아와 "아직 어린데도 차분하게 잘 해내는 모습이 존경스럽다"고 말할 때 직업적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동료들이 "간혹 이상한 사람들이 (성차별적 발언 등) 이상한 말을 해도 흘려들으라"며 격려해줄 때도 힘을 얻는다.

자신처럼 중장비 기사를 직업으로 택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에게 그는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으니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혼자서 길을 잘 모르겠다면 새일센터를 찾아 경력 쌓기나 면접 과정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고 전했다.

끝으로 크레인 기사라는 직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묻자 김씨는 답했다. "크레인 기사들이 있어야 물류 산업이 원활하게 굴러갈 테고, 또 이 산업이 잘돼야 사회가 편안함을 누릴 수 있으니까요. 이 산업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늘 필요해요. 당연히 그게 여성일 수 있고요."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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