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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경의 에듀 서치]
이배용(맨 왼쪽)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10월 8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업무 보고를 하고 있다. 국교위는 정권 변화에 따라 오락가락하지 않는 교육 정책을 만들기 위해 출범했지만 이미 존재감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병주 기자

내달 시안 발표 앞뒀던 ‘10년 대계’
새 정부 출범에 일정 예측 어려워져
고급 인재 부족한데 대졸 많은 한국
인재전략 재설정 골든타임 놓칠라

정권의 향배에 따라 혹은 교육 수장의 성향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교육 정책을 바로잡는다며 출범한 기구가 있습니다.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입니다. 워낙 존재감 없는 조직이다 보니 교육계 안에서만 가끔 언급될 뿐, 교육부 장관이 누군지 알아도 국교위원장이 누군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합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민감한 업무를 수행하는 곳입니다. 교육부로부터 국가 교육의 설계도 격인 국가교육과정 수립 업무와 이와 연동하는 대입 제도의 방향을 결정할 권한을 포함해 학제와 교원 정책 등 굵직한 업무들을 가져왔습니다. 미래세대에 큰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기구입니다.

국교위 업무의 꽃은 10년 단위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발전계획) 수립일 겁니다. 국가 교육의 비전을 설정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초·중등 교육과정과 고입, 대입 등 인재양성 전 과정이 담겨 있는 묵직한 계획입니다. 백년대계까진 아니어도 적어도 10년은 정치권의 외풍 없이 미래세대를 키우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은 정부에 이를 따를 의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단순 참고하고 넘기는 그저 그런 자료가 아닙니다.

국교위는 다음 달 발전계획 시안을 발표할 예정이었습니다. 2027년 3월 새 학기를 시작으로 2036년까지 10년 치 계획입니다. 시안은 의견수렴을 거쳐 국교위 1기 위원의 임기가 종료되는 오는 9월 하순 확정되는 방안이 유력했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서술형 문항이 도입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관건은 채점의 공정성 정도입니다. 수능을 여러 차례 보거나 자격 고사화하거나 수시와 정시를 통합한다는 등 여러 관측이 나옵니다. 하지만 정치 상황으로 인해 허공에 떠버렸습니다. 교육계에선 벌써 ‘계획은 그냥 계획일 뿐’이란 말이 나옵니다.

다음 달이면 대선의 한복판입니다. 대선 캠프마다 인재양성 관련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을 테죠. 그리고 6월 초 새 정권이 출범합니다. 당선자 캠프에서 생산된 인재양성 공약 다수는 국정과제란 지위를 얻어 실행됩니다. 공약 설계에 참여했던 인물들은 인재양성 관련 중책을 맡을 공산이 큽니다.

국교위 처지가 딱하게 됐습니다. 예정대로 5월에 발전계획 시안을 낸다면 당선자 캠프와 코드를 맞춰 확정안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새 정부가 전 정부에서 구성된 국교위의 발전계획을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새 정부와 발전계획을 다시 짜는 방안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1기 위원 임기가 9월 하순 종료되기 때문에 ‘빈손’이 됩니다.

국정과제를 반영해 9월까지 시안을 만들고 내년 3월까지 확정안을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떤 방향이든 국교위의 존재 의의는 희미해지는 겁니다.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하지 않는 교육 정책을 위한 기구로 출범했으니까요. ‘대선 공약=국정과제=발전계획’ 구도에서 국교위의 존재 의미는 없다고 봐야 하겠죠. 국교위는 2022년 9월 출범했습니다. 지난 2년 7개월, 잃어버린 시간인 셈입니다.

국교위에 무게감이 있었다면 달랐을 겁니다. 국민적인 지지를 받는 기구였다면 대선 캠프들이 오히려 앞다퉈 국교위의 방향에 맞추려고 했겠죠. 하지만 국교위는 애초 그리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정파적 이해에 따라 위원을 정치권이 나눠 먹었습니다. 정치와 교육을 분리한다는 취지로 만들었는데 가장 정치적인 기구가 됐습니다.

위원 구성을 볼까요. 정원은 21명입니다. 대통령이 5명을 지명하는데 교육부 차관이 당연직이므로 실제로는 6명입니다. 국회 몫은 9명입니다. 여야가 나눠 먹습니다. 교원 단체에서 2명 들어옵니다. 교원 단체들끼리 아귀다툼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4년제 대학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전문대 협의체인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가 1명씩입니다. 시도교육감협의회와 시도지사협의회에서도 들어옵니다.

현원은 19명입니다. 면면을 보면 정파성이 뚜렷합니다. 실명을 거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여야가 대동소이합니다. 보수성향 대학생 활동가와 변호사, 혁신학교 활동가, 진보성향 노조 출신 등이 포진해 있죠. 물과 기름 같은 조합입니다. 국교위원들이 지난해 “국교위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설익은 정책이 유출돼 혼란을 일으킨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역사, 교육, 행정, 정치 전공자 등 ‘문과 일색’이란 점도 문제지만 ‘공급자 중심’이란 점도 간과하기 어렵습니다. 교수나 교사, 교육 행정가 등 인재를 공급해온 사람들만 포진해 있습니다. 인재를 채용하고 이들과 빠르게 변하는 산업 현장에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배제돼 있습니다. 산업과 노동현장을 멀찌감치 두고 교육 분야 사람들이 모여 만든 인재 정책이 정권을 초월한 생명력을 갖는 건 어려울 겁니다.

인공지능(AI)이 직업 세계의 변동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미 AI로 대체되는 영역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고령사회가 눈앞입니다. 다수의 노인을 소수의 젊은이가 부양해야 합니다. 고부가가치 인재를 많이 키우는 것 말고 답은 없습니다. 한국의 인재 구조를 보면 고급 인재는 부족한데 대졸 인력은 넘쳐납니다. 고급 인재는 해외로 유출되고 대졸자는 취업난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전문대·고졸 인재 등 현장 인력은 적은 기형적 구조입니다. 인재전략을 서둘러 재설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골든타임이 지나고 있습니다. 이미 2년 넘게 허비했습니다. 그 시작점은 국교위 ‘리셋’일 겁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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