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안보전략 TF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미 통상협의를 앞두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나 홀로 행보’를 향한 정부 안팎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선 한 대행의 흑역사로 꼽히는 25년 전 ‘마늘 협상’이 소환되고 있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안보전략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미국이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와 협의를 시작하게 된, 미국도 우리와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행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한 뒤, 한-미 간 협의의 방향성을 적극 제시해왔다. 이달 10일 미국이 각국에 상호관세를 매기기 위해 관세를 비롯해 조세 제도, 비관세 장벽 등을 두루 꼬투리 잡고 나선 것을 두고 “(국내에도) 개선이 필요한 품목이 많다. 이런 것들이 개선되면 우리 국민께도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다”고 언급한 데 이어, 14일엔 “한-미 간에 이른 시일 내에 구체적인 내용을 도출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할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지난 20일 공개된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선 한국의 산업·금융 발전이 미국의 도움 덕분이라며 미국의 관세에 “맞서 싸우지 않겠다”고도 말했다.
이런 한 대행의 행보엔 정부 내부에도 이견이 적지 않다. 이번 외신 인터뷰의 경우 한-미 경제·통상 협의의 당사자인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 등과도 사전 메시지·일정 조율 등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민감한 통상 협의를 코앞에 두고 ‘개인’ 생각을 국외 언론에 털어놨다는 얘기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본인의 생각이라는데 우리가 뭐라 하겠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직 통상당국 핵심 관계자는 “국정 책임자가 미국의 ‘은공’ 때문에 미국 쪽 요구에 맞서지 않고 수용하겠다고 말하는 건, 우리의 협상력을 상당히 약화시키는 것”이라며 “백악관 사람들이 매일 보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발언을 하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 대행의 무리수 탓에 2002년 ‘마늘 협상 파동’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염려도 나온다. 한 대행은 2000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재직 당시 중국과 마늘 협상을 벌이며 2003년부터 중국산 마늘 수입이 완전 자유화된다는 사실을 은폐했다는 이유로, 2002년 7월 청와대 경제수석에서 불명예 사퇴한 바 있다. 한 대행은 당시 국내 마늘 농가의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확보 필요성과 대중 수출 기업 피해 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자기 소신에 근거해 협상 내용을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낸 논평에서 한 대행의 ‘마늘 협상 흑역사’를 거론하며 “한 대행은 이미 실패한 협상가다. 책임질 수 없는 일은 하지 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