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월 12일 수요일 바티칸의 바오로 6세 홀에서 주간 일반 청중을 위해 도착하며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바티칸=AP 뉴시스
전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를 지난 12년간 이끌어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간) 타계했다. 향년 88세.
바티칸 교황청 궁무처장인 케빈 페렐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 아침 7시35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지난 2월초 기관지염을 앓은 교황은 모든 외부 행사를 취소하고 14일 로마 제멜리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이후 양쪽 폐에서 폐렴이 확인되는 등 병세가 악화되기도 했지만 지난달 23일 퇴원해 활동을 재개했다. 교황은 전날인 부활절 대축일에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 앞에서 부활절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지만 이날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이 전해졌다.
12년 재위...'청빈의 수도사' 프란치스코의 삶
베네딕토 16세(오른쪽) 전 교황이 2017년 6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추기경 서임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바티칸=AP 연합뉴스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의 5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난 교황의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Jorge Mario Bergoglio). 부에노스아이레스대에서 화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화학·문학교사로 잠시 일했지만 21세에 폐부전으로 사경을 헤매고 난 뒤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다. 1958년 학문과 선교, 사회 정의를 중시하는 가톨릭 수도회인 예수회에 입회한 그는 1969년 12월 13일 사제로 서품됐다.
1970~80년대 군사 독재 정권 치하의 아르헨티나에서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1973~1979)을 지내며 정치적 혼란과 인권 유린의 현실 속에서 탄압받는 이들을 돕기 위해 조용히 활동했다.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조 주교를 거쳐 1998년 대주교로 승격된 후에는 화려한 주교관 대신 작은 아파트에서 살며 빈민촌을 자주 찾아 신도들을 만났다. 2001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추기경에 임명됐다.
2013년 당시 교황이던 베네딕토 16세가 자진 사임하자 교황청은 77세의 추기경을 새로운 교황으로 추대했다. 비유럽권에서 교황이 선출된 것은 시리아 출신 그레오리오 3세(731년)이후 1282년 만에 처음이고, 미주 대륙 출신으로는 가톨릭 교회 2,000년 역사상 최초였다.
전임 교황에게 직접 교황직을 인수·인계받는 유례없는 절차를 거쳐 교황에 오른 그는 빈자를 위한 성인으로 알려진 13세기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를 즉위명(名)으로 선택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사제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첫 등장에서 교황의 권위를 상징하는 붉은 망토 대신 간소한 백색 제의를 입은 그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 후 재위 12년동안 소박한 행보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즉위 이래 역대 교황이 기거한 호화로운 사도궁 관저를 두고 교황청 사제들의 기숙사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 거주해 왔으며 교황 전용 방탄차를 타지 않고 이탈리아 국민차인 피아트를 애용해 왔다.
프란치스코(왼쪽 둘째) 교황이 추기경 시절이던 2008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지하철을 타고 촐근하는 모습. 부에노스아이레스=AP 연합뉴스
탈권위·개혁의 상징...역대 가장 진보적인 교황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마치고 제의실 앞에서 만난 어린이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의 막강한 권위를 내려놓은 소탈하고 파격적인 행보로 가톨릭 신자들 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교리적으로는 동성애, 낙태, 피임, 안락사 등을 '죄'로 규정하고 있는 가톨릭 교리를 뒤집지는 않았지만 교회의 오랜 관습에 변화를 시도하고 고난 받는 이들에 대한 포용적 태도를 보여 역대 교황 중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교황은 성 소수자(LGBTQ)에 대해 "내가 누구이기에 그들을 판단하겠습니까"라며 관대한 모습을 보였고 동성 커플에 대한 가톨릭 사제의 축복을 공식 승인했다. 기후 위기와 난민 문제에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며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경제사회적 불평등과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비판자였으며, 가톨릭교회 최초로 기후변화에 대한 전 지구적 긴급 대응을 촉구하는 회칙을 발표하는 등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쏟았다.
교회 개혁을 위한 행보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교황청의 재산 관행을 투명하게 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 사업을 확대했다. 교회의 폐쇄적인 분위기를 개선하고, 러시아정교회와 이슬람 성직자 등을 만나 종교간 화해를 모색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교황은 2014년 한 차례 우리나라를 방문했는데 일본군 위안부,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직접 위로하기도 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는 등 한반도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쏟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서거로 새 교황이 탄생하는 올해는 가톨릭 교회가 25년마다 맞이하는 '은총의 해' 희년이다. 세계적으로 신자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시대적 조류 속에 새로운 요구에 직면한 가톨릭교회가 희망과 감동의 언행으로 세계인의 영적 지도자로 추앙받았 프란치스코 타계 이후 어떠한 해결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연관기사
• "장례 예식은 간소하게".... 프란치스코 교황 첫 자서전 13일 출간(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0312360002378)